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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ug 17. 2021

웰컴 투 항암월드 19화

실화 소설

  드르륵.

  용녀의 커튼이 걷혔다.


 간병인 김 여사와 잠깐씩 이야기를 나눌 때 말고는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용녀였기에 모두가 놀랐다. 화장실도 늘 소리 없이 다녔기에 양은 용녀의 얼굴을 보는 것도 이날이 처음이었다.

 

  “이모, 너무 오랜만에 얼굴을 보여 주는 거 아니에요? 후후.”


  사랑이 말했다. 사랑은 이모로, 언니로, 함께 병실을 쓰는 환자들을 다정하게 대했다.


  “내가 좀 그랬지? 에이, 아파서 퉁퉁 부은 얼굴을 자주 봐서 뭐해? 가끔 봐야 반갑잖아. 안 그래? 크.”


  “그래서 그런가, 얼굴 보니 좋은디?”


  원희가 헤벌쭉 웃었다.


  “6호 동생, 동생이라고 불러도 되지? 이번에 가족들한테 행복한 기운을 잔뜩 받고 왔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기운 내. 멀리 있어도 남편과 아이들이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겠어… 나도 1차 때는 관해가 안 돼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2차에는 관해가 왔어. 화장실에 다녀올 때 말고는 밥도 안 먹고 영양제를 꽂은 채로 잠만 자는데도, 크. 그러니 나보다 젊은 동생은 분명히 나을 거야.”


  “고마워요, 언…니.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닥쳤는지… 왜 내게만 이런 불행이 쏟아지는지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돌아 버릴 것 같았는데, 오늘 털어놓고 나니 힘이 많이 나요.”


  “그래그래. 사연 없는 무덤이 어디 있나, 가서 물어봐. 내가 여기서 만난 사람 중에 안 억울한 사람이 없어.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는데,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되겠나? 그러니 누군들 안 그렇겠어? 내가 이런 일을 당할 만큼 나쁘게 살진 않았는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하필이면 나한테 생겼을까? 하고 말이야.”


  “맞아요!”


  복수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나는 매년 건강 검진을 꼬박꼬박 했고, 이제까지 별다른 이상이 발견된 적도 없을 정도니 당연히 건강하다고 생각했어. 근데 착각이었던 거지. 젊은 시절에 가진 거 하나 없는 남편한테 반해서 인권 변호사가 되고 싶단 꿈을 이뤄 주려고 식당일에, 파출부에, 바느질에 안 해본 일 없이 밤낮으로 뒷바라지를 하다 보니, 남편이 사법 고시에 떨어지고 떨어지던 끝에 법원 서기가 돼서 살림이 나아졌는데도 하던 버릇이 남아 집에서 편하게 쉴 수가 없더라고. 줄줄이 딸린 시동생에 셋이나 되는 애들을 키우려니 공무원의 수입으로는 여전히 빠듯하기도 했고. 그래도 내가 같이 뛴 덕에 우리 남편이 바라던 떳떳한 공무원이 될 수 있었지. 우리 집의 가보는 남편이 은퇴할 때 받은 ‘청렴한 공무원’ 상이야. 그래도 계절마다 꽃놀이, 단풍놀이도 다니고, 지역 축제도 찾아다니고 재미나게 살았어. 그런데 작년에 갑자기 한여름에 감기가 오더니 한 달이 넘도록 안 떨어지는 거야. 그냥 몸이 좀 약해졌나 하고 홍삼도 챙겨 먹고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도 사다 먹다 보니 어물쩍 넘어갔어. 근데 겨울이 되니까 약을 먹고 동네 병원에 가서 주사도 맞고 치료를 받는 데도 좀 덜한가 싶으면 다시 심해지고를 반복하다가 두 달이 넘도록 감기가 안 떨어지는 거야. 이미 병이 와 있었던 거지.”


  “이모도 우리 엄마처럼 급성골수백혈병이죠?”


  “응. 급성골수백혈병 안에도 종류가 많으니까. 나는 전골수성이라서 이식을 안 하고 항암 치료만 해도 된다는 M3인데, 항암도 어디 쉬운 일인가? 초기에는 오히려 M3가 급성골수백혈병 중에서 제일 위험하대. 그래도 5호 언니나 나나, 우리는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 보고 살만큼 살았어. 아직 앞날이 창창한 6호 동생이나 3호 아가씨, 4호 아가씨가 잘 나아야지.”


  “이긍. 내 옆에 20대 아가도 갑자기 쓰러져서 왔다는디, 안쓰러워 죽겄어, 아주.”


  “그러게 참, 4호는 무슨 백혈병이래요? 아버지가 간병하는 거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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