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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ug 19. 2021

웰컴 투 항암월드 21화

실화 소설

  덧붙여 깨달은 또 하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양은… 저들과 달랐다.


  나는 저 사람들처럼 착하게 살아오진 않았어.

  그렇다고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세상을 배우면서부터, 비겁하게는 살지 말자고 다짐했던 양이었다. 어쩌면 그로 인해 누군가에겐 건방지고 못된 인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옳다고 믿었던 길이 정말 옳았을까? 최선이라고 골랐던 길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양은 이제 확신할 수 없었다.


  때로는 후회할 줄 알면서도 돌아설 수 없는 갈림길을 만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양은 호수의 심장을 산산조각 낸 죄만으로도 어쩌면 이런 벌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양은 호수의 번호를 찾았다.


  어느새 병실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저녁이었다.


  “호수야.”


  한참을 고민하던 양은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조금 기다리자 답이 왔다.


  “왜?”


  “나.”


  “응?”


  “백혈병이래.”


  잠시 침묵하던 호수에게서 말이 쏟아졌다.


  “뭐?”


  “…….”


  “네가 왜!”


  “…….”


  “진짜야?”


  “…….”


  “너한테 왜 그런 일이 생겨? 말도 안 돼!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양은 그제야 대답했다.


  “너한테 잘못해서 벌을 받나 봐, 나. 내가 너한텐 심장이라고 했었는데… 그렇게 아프게 하고 돌아서서… 미안해.”


  “넌 나한테 그런 말 안 해도 돼. 미안하다는 말 안 해도 돼, 넌.”


  “그러면 내가 더 미안하잖아… 정말 미안해.”


  “다 괜찮아, 난. 너니까.”


  그래, 호수는 이런 사람이었지… 양은 눈물이 핑 돌았다. 호수는 양에게 약속된 운명이었다. 세하가 다가오기 전까지는.


  “더 늦기 전에… 꼭 직접 말하고 싶었어. 넌 좋은 사람이니까 나보다 착한 여자 만날 거야. 행복해야 해.”


  호수는 말이 없었다. 양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호수를 떠나지 않을 사람이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호수가 SNS로 신문 기사를 하나 보내왔다. 백혈병 치료 분야에서 권위자라는 의사의 인터뷰였다.


  “이 사람한테 간 거지? 찾아보니 이 병원이 백혈병 치료를 잘한다.”


  “아니… 난 지금 대한대병원이야. 이미 항암 치료로 들어가서 바꾸기가 어려워.”


  “의사가 누구야?”


  “안심해 교수님. 혈액종양내과 전문의야.”


  “안심해… 환자에 따라 맞춤 치료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사구나.”


  “아, 그래? 찾아봐 줘서 고마워.”


  “항암 치료라… 많이 심각한 거야?”


  “말기… 너무 늦게 왔나 봐.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양아, 손 쓸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좀… 어려운가 봐. 6개월 안에 골수 이식을 해야 살 수 있다는데… 거기까지 갈 수 있을지도 잘 모른대.”


  “어떤 의사가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해! 넌 반드시 살 거야. 치료가 힘들어도 이를 악 물고 견뎌 내. 알았지?”


  “…….”


  “내 골수를 줄게. 넌 아무 걱정하지 마.”


  “뭐? 그런 소리 마. 내가 어떻게 너한테 골수를 받아… 그럴 수는 없어!”


  “난 건강하니까 괜찮아. 골수 좀 많이 빼서 너 줘도. 그러니 치료 잘 받고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아니야. 그러지 마! 우리 오빠가 주기로 했어. 마음만으로도 정말… 정말 너무 고마워.”


  “내가 안 괜찮아.”


  그 말을 끝으로 호수는 말이 없었다.






  양이 잠시 멍하게 앉았는데 대양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 이 시간에 왜 전화했…?”


  “호수한테 말했다며? 왜 그랬어!”


  병을 알고 나서 처음으로 대양은 양에게 화를 냈다.


  “그 사람… 내가 죽은 줄도 모르고 혹시라도 날 기다릴까 봐. 그래서, 그래서 이젠 정말 마음을 정리하라고… 말한 거야. 사랑했던 사람이잖아. 헤어지면서 미안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해서… 냉정할수록 서로를 위한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데 너무 못되게 굴어서. 마지막 인사도 하고 싶었어.”


  “…그래도 이건 네가 잘못한 거다. 그냥 모른 채로 살게 뒀어야지. 자기가 골수를 주겠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 지금 당장 골수 검사를 받겠다고 나한테 전화가 왔다. 골수가 아니라 피 검사로 확인이 가능하고, 내가 이미 검사를 받았으니 일단 기다려 보라고 겨우 말렸다.”


  언제나 양의 편이지만 그렇기에 솔직하게 말하는 대양이었다.






  3년 전, 호수와 헤어진 양에게 자신은 그래도 계속 호수와 형과 동생 사이로 지낼 거라던 대양이었다. 


  “네가 서운해도 어쩔 수 없다!”


  양에게 화가 나서 그러나 진심으로 대양은 말했다.


  대양만큼은 아니었지만 양의 선택에 다른 사람들도 모두 충격을 받았다. 세하에 대한 양의 흔들림을 느꼈던 절친 중 누구도 양이 정말로 호수와 헤어지리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듣고도 믿지 못했고, 그래서 세하를 미워했다.


  그때, 함께하던 호수보다 혼자일 세하에게 더 마음이 쓰이던 그 순간부터, 내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양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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