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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ug 24. 2021

웰컴 투 항암월드 24화

실화 소설

  이날 오후, 배선실에 다녀온 금희가 말했다.


  “간병인들이 한턱내라고 어제부터 난리야. 응급실에서 사흘 만에, 2인실도 안 거치고 바로 6인실로 오는 건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이야. 다른 보호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응급실에서만 일주일 가까이 기다린 사람도 있긴 하더라. 여기 와서 6인실에 자리가 날 때까지 또 2주일도 넘게 기다린 사람들도 많다네? 1인실이나 2인실에 들어와서 기다리는 사람부터 4인실이나 6인실로 갈 자격을 주니까 비싸도 미리 들어와 있을 수밖에 없대. 6인실은 의료 보험이 돼서 하루에 병실비가 만 원 정돈데, 2인실은 10만 원이 넘고, 1인실은 40만 원 가까이 하니까 우리가 운이 좋았어.”


  행운이라는 말.
  운이 좋았단 말.

  

  동네 내과에서부터 여러 번 들은 표현이었다.


  “그러게, 행운인가? 엄마, 내 신용카드를 드릴 테니까 식사라도 한번 내요.”


  “괜찮아. 돈은 나한테도 충분히 있어. 그보다, 나는 그 사람들이 별로 마음에 안 드네? 간병인들이 환자 옆에는 안 있고 노상 자기들끼리 모여서 웃고 떠들고 밥 먹고 하더라. 환자가 밥을 안 먹으면 어떻게든 먹이려고 애를 쓰는 게 아니라 기다렸다는 듯이 그 밥을 가지고 나와서 자기가 먹어. 환자들이 밥을 거의 남기니까, 대부분은 아예 자기 밥을 안 준비하고 그냥 그걸 먹는 거야. 그러니 환자들이 밥을 안 먹을수록 자기들의 입장에서는 더 반갑지. 보호자라면 그러겠어?”


  “에? 환자들은 면역력이 약해서 폐렴이나 장염처럼 전염병에 걸린 사람도 있는데, 환자가 남긴 밥을 먹는다고?”


  “그래! 심지어 반쯤 남은 국까지 다 마시더라고. 나는 비위가 약해서 옆에서 보는 데도 싫더라. 다른 보호자들 중에도 자기 환자가 남긴 밥을 먹는 사람도 있긴 하더라만, 그건 가족이니까. 근데 그것도 경쟁이 심하대. 가끔 노숙자들이 와서 간병인들이 나중에 먹으려고 챙겨둔 밥을 몰래 훔쳐 먹고 간다더라.”


  “환자가 남긴 밥을 먹으려고 노숙자들이 여기 11층의 배선실까지 올라온다고?”


  “그래. 그래서 바로바로 다 먹어야 된대. 24시간 근무긴 하지만 주말에는 쉬고 평소엔 환자 옆에서 누워 자거나 TV를 보거나 배선실에 왔다갔다 수다를 떨면서 한 달에 2백만 원씩 받아. 보호자들은 한 달에 몇백만 원씩 나오는 병원비에다 간병비까지 버느라 허리가 휜다는데… 우린 간병인을 안 쓰길 잘했다 싶더라! 하는 행동들을 보고 나니까 이제는 더욱 양이 너를 간병인한테 맡길 수가 없어. 힘들어도 내가 끝까지 돌볼 거야.”


  “아… 엄마, 그래도 계속 조른다면서… 괜히 불편하잖아. 그냥 밥 한번 사세요. 그분들도 하루 종일 환자 옆에만 있으면 얼마나 답답하겠어. 가족도 아닌데. 게다가 누구든 형편이 좋으면 세균이 득실거리는 병원에 틀어박혀 아픈 사람 옆에서 시중들거나 굳이 남이 남긴 밥을 먹겠어?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간병인들도 이해는 가. 남인데 가족처럼, 보호자처럼 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 사람에 따라서도 다 다르고. 조용녀 아줌마를 돌보는 분은 거의 자리를 안 비우시잖아.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시고. 좋은 분도 계셔.”


  “듣고 보니, 1호 간병인은 배선실에서 한 번도 못 봤네? 그래, 겪어 보니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 어쨌든 고생하는 사람들이 족발 좀 사달라는데, 한 번 시키지 뭐. 생각난 김에 지금 바로 갔다 올게. 마침 오후니까 출출하겠네.”


  “잘 생각했어. 다녀와요.”


  혼자 남은 양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조용해서 자는 줄 알았던 2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 커튼에 대고 얘기하는지 소리가 울렸다.


  “동생, 그날 기억나나?”


  “언제 말이우?”


  “왜 그날 말이야. 이 병실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던 날!”


  “으. 그날 정말 무서웠수, 언니. 난 벌벌 떨었잖수.”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도 난리였지만, 사람이 죽었는데 새벽이라 못 옮긴다고 시체를 옆에 두고 하룻밤을 자라는 게 말이 되나? 하이고. 내가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오금이 저린다니까?”


  “간호사, 지들이 송장 옆에서 자 보라지. 의사들도 다들 도망칠 걸?”


  “아무렴. 아무리 대기자가 줄줄이 기다리던 6인실이라도 그 자리에 들어올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없지.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면 오늘 병자가 죽어 나간 자리로 올 사람은 없네. 그런 소식은 병동 안에 곧바로 퍼지거든. 그러니 어쩌겠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3호를 응급실에서 데려다 채운 거지. 그것도 모르고 행운이랍시고 한턱을 내러 간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쯧쯧. 내가 보기엔 이 병실에서 3호가 제일 중환자라니까?”


  사람이 죽어 나간 자리에 들어온 중환자.

  이건 누가 봐도 양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내가 오던 그날에 사람이 죽었다는 거지? 지금 내가 앉아 있는 바로 이 침대에서.


  흠칫, 양의 몸이 떨렸다.

  의료진이 달려오고 숨이 넘어가고 가족들이 달라붙어 울면서 아무리 불러도 말없이 누워 있는 시체가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건 분명한 적의였다. 양을 괴롭히려는.

  이유가 무엇이든 이 싸움에서 져서는 안 됐다.


  양은 냉정하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그래서 뭐? 달라지는 건 없어. 솔직히 이 병동에서 사람이 안 죽어 나간 자리가 어디 있겠어? 단지 그게, 내가 오던 그날이었을 뿐이야. 양은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자 하나의 고민이 남았다. 그런 사실을 다 알면서도 운이 좋았으니 한턱내라고 금희를 들볶은 간병인들을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 일단은 할 수 있는 일부터 처리하자. 커튼에 귀를 대고 이쪽의 반응을 기다리는 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방법은 침묵이었다. 양은 눈을 박고 무섭도록 책에 집중했다.






  1시간쯤 지나자 금희가 돌아왔다.


  “내길 잘했어. 글쎄, 족발이 오니까 배선실에서 먹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나눠 줘야 하니 얼마 못 먹는다고, 비상계단으로 가자는 거야. 간병인 서너 명이서 거기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서 걸신들린 듯이 먹는데, 안 됐더라. 나더러도 먹으라고 권하는데 많이 먹으라 하고 나는 그냥 몇 점, 맛만 봤어.”


  그래, 이미 끝난 일이야. 양은 혼자만 알고 묻기로 했다.


  “잘했어. 다시 또 조르지는 않겠지. 그래도 그분들하고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을 거 같아.”


  “응? 왜?”


  “그냥. 안 그래도 힘든 보호자한테 밥을 사라고 조른다는 게 좀 그래.”


  “그러네. 알았어. 적당히 거리를 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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