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복잡한 인생에서 무작정 도망친다는 것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 워킹홀리데이

by 리본

2018년 12월 17일.

히드로 공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마음은 딱 반반이었다. 불안함 반, 신나서 춤추고 싶은 마음이 나머지 절반.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대단한 목표의식이 있어 새로운 개척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님을. 분명 도망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외국어에 대한 욕심과 해외생활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현실에서의 나는 당장 하고 싶은 것이 없고 이뤄야 할 목표 또한 없어 방황하던 멍청한 청춘에 불과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모든 것에 쉽게 싫증을 느끼곤 했다. 유행이 지난 요즘 말로 금사빠-금사식. 이 단어만큼 나를 잘 설명하는 것은 없다. 무엇이든 쉽게 흥미를 느끼고 좋아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게 취미든, 연예인이든, 스포츠든. 이런 내 성향은 다양한 방면에 얕은 지식을 갖도록 해주었지만, 진짜 나를 찾는 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무엇을 정말로 좋아하는지, 무엇이 진짜로 하고 싶은지, 내가 되고자 하는 이상향은 어떠한 모습인지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뭐 하나에 푹 빠져보고 싶다.'는 것이 매 년 소원 중 하나로 꼽히기도 부지기수였다. 문제는 이십 대 후반, 지금의 나도 크게 다르진 않다는 것이다.


유창한 외국어와 해외출장이라는, 누구에게나 멋져 보이는 모습을 원해 어릴 때부터 외교관, 통역사 또는 무역업계 종사자를 꿈꿔왔고(친구들 모두 경찰관, 소방관, 선생님을 말할 때 외교관을 외친 지적 허영심은 초등학생 때부터 남달랐다), 그 결과 쉼 없이 바뀌던 진로에 대한 고민 끝에 무역을 전공했다. 학부생활 중에는 장학 혜택을 받아 중국으로 1년간 연수도 다녀왔다. 하지만 그렇게 원하던 '해외 출장을 다니며 바이어와 영어로 소통하는' 약 1년의 짧은 직장 생활 동안 나는 늘 주어진 일을 겨우 해나가며 책임을 회피하는 하잘 것 없는 인간이었다.


달에 한 번 꼴로 진행되는 해외 전시일정과 그 사이사이에 병행해야 하는 수많은 사무 업무들, 그리고 전혀 모르는 분야인 제품 기획까지 신입사원으로서 너무나 당연하지만 끊임없이 버텨내야 하는 삶에 결국 지쳤던 탓일까, 다니던 직장이 운영난에 빠진 틈을 타 자연스럽게 퇴사를 했다. 명목상의 이유는 워킹홀리데이를 통한 경험 쌓기였다. 사실 거기서도 도망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국으로 떠나기 전 잠시 공항에서 일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 기회를 발판 삼아 새롭게 태어나자고.


2018년 12월 17일.

고대하던 히드로 공항에 발을 디뎠다. 그 낯선 분위기, 풍경, 사람들에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치열하고 답답한 한국사회에서 도망쳤으니 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그곳에 가서도 익숙함과 편안함을 찾고 있었다. 경험을 목적이라 말했지만 돈을 좇고 있었고, 더 나은 영어실력을 목표라 말했지만 사람들을 멀리하며 혼자이길 자처했다. 결국 나는 아무런 성장도 못하는 흔한 워홀러가 되고 말았다.


물론 핑계는 존재했다. 영국은 유난히 나에게 차가운 도시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불편했고, 길거리에선 인종차별이 빈번했으며 심지어는 소매치기까지 당했다. 이런 일들이 나에게 연속적으로 일어나면서 나는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긴 여행으로 왔을 때나 행복했던 도시야.'라며 이 상황에 대한 자조적 비난을 멈출 수 없었다. 이 굴레를 끊어내려 찾았던 좋은 면접 기회도 소매치기 사건과 맞물려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모든 게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결국 영국에 도착한 지 만 8개월 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영국을 떠나고 시간이 지나면, 어쩌면 여기서의 기억들도 미화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년 이상 지난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때는 나에게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내 삶이 왜 괴로웠는가에 대한 나의 결론은 '명확하지 않은 목표와 나의 무모함이 낳은 결과'라는 것이다. 그저 환경을 바꾸면 내 삶이 조금은 달라질 거라 속단했던 그 무모함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점은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목표 없이 무작정 떠나는 길은 고생, 그리고 실패가 다가오기 쉽다는 것을.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것을. 애써 무시했던 결과였다. 겸허히 받아들이고 영국을 떠났으나 아직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조금 더 정확히 목표를 조준하고 야무지게 헤쳐나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앞으로의 삶은 조금 더 괜찮을거야 위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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