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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사람 Oct 26. 2023

사춘기 자폐 아이의 폭풍 성장이 마냥 반갑지 않다

걱정하다가도, 입맛 다시는 너에게 밥 한 그릇을 더. 네 몫만큼 자라라.

몇 달 전만 해도,

아직 멀었구나 싶었는데

오늘 산책길에 내 어깨를 추월해 웃돌기 시작했다.


하룻밤 사이에 컸나 싶은 폭풍성장이다.

한 눈 판 사이에,

금세 따라 잡혔다.


둘째에게는 쑥쑥 크라고 우유든 뭐든 성장에 좋다는 걸 먹이면서도,

아이는 큰 덩치가 되면 나중에 더 감당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작은 키를 내심 바랐다.


조금 덜 크면

사람들이 조금 덜 두려워하지 않을까?

무슨 행동이든 그나마 덜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거구가 된 아이가 양팔을 접은 채 날갯짓을 하고, 제자리에서 뛰고,

어디 가자고 잡아끌면 누구든 멈칫할지도 모른다.

그게 선의냐 악의냐는 중요치 않을 것이다.

아이의 행동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아 거칠 테고, 당하는 사람은 당황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가 어렸을 땐,

말을 못 해도 행동이 미숙해도

조금씩 이해해 줬다. 또 응원했다.


우리 애도 늦었다며,

귀엽다며,

아이를 응원했다.

어리니까,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나 역시 그랬다.

조금 기다리면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하고 또 바랐다.


아이가 점점 클수록

아이의 발달은 또래와 더 벌어졌고,

사람들 속에 묻힐 수도 숨길 수도 없게 되었다.

아이에게 친절하게 다가온 사람들이

천천히 다정하게 말을 건네도 대답을 듣기는커녕 쳐다보지도 않자 머쓱해했다.

내가 대신 대답을 하면서도 괜히 죄송했다.

유난스러운 행동에 당황하며 놀라는 사람들의 시선도 따가웠다.

놀라면서도 겁내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이질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잘 자라고 있는 게,

비단 우리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아이가 커질수록

안 좋은 점이 더 두드러져 보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저마다 갖고 있었다.

비슷한 또래의 자폐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통화를 했다.

아이의 더딘 발달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체의 폭풍성장을 걱정했고,

왕성한 식욕에 한걱정을 토로했다.


통화를 마치고,

"어? 벌써 밥때가 되었네?" 하며,

뭐 입맛 당길 게 없나 냉장고를 뒤적거리다가,

고기도 굽고, 나물도 무치고, 국도 끓였다.


식탁 가득 차려놓고,

아이가 게눈 감추듯 다 먹은 밥그릇에 밥을 더 퍼주고

고기를 쓱 밥 위에 올려줬다.


머리 따로

행동 따로다.


쑥쑥 자란다고 걱정하고는

배곯을까 또 걱정하는 내 모습이 참 우습고 짠하다.


그래.

네가 크는 게 걱정이겠냐.

여태껏 안 자란다고 늦되다고만 걱정했지.

크는 걸 갖고 걱정한 적이 없었지.

네 몫만큼 맘껏 자라라.

크면 큰 대로, 안 자라면 안 자란 대로 그렇게 살면 되지.


내일은 뭐를 차려야 맛나게 잘 먹을까?

한참 푸념하고는 또 밥상 고민을 해본다.





소풍 도시락. 김밥을 못 먹으니 종류가 잡다하다. 이렇게 먹고도 부족해서 선생님 도시락까지 넘보는 아이의 식욕을 채워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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