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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사람 Oct 28. 2023

일상이 규칙적이되 단조롭지 않게

사춘기 자폐 아이에게 안정과 변화 모두 필요해

남편은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또 보는 걸 즐긴다.

익숙한 장소에 익숙한 길로 가는 걸 좋아한다.

나는 봤던 영화는 다시 안 본다.

기왕이면 새로운 곳, 갔던 곳이면 선택지가 있다면 새 길로 가본다.


남편은 안정적이고 신중하고 온화하다.

나는 적극적이고 도전과 모험을 즐긴다.

같이 지내며 나는 남편스럽게, 남편은 나스럽게

조금씩 변하긴 지만 기질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자폐 아이에게는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


규칙적인 일상은 아이에게 예측가능성을 주고, 안심하게 한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들을 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반면에 아이는 대부분의 일상을 수동적으로 살아간다. 더군다나 일정한 루틴에서 벗어나는 건 자폐 아이들에게 매우 도전적인 일이다.


아이는  매년 쓰는 특수학급 배치가 바뀌어도 불안해했다. 작은 학교라 새 학년이라고 해도 교실 옆칸 이동, 새 담임선생님 말고는 죄다 같은데도 아이는 새 학년마다 피가 나도록 손톱 주변을 뜯고 또 뜯었다.


규칙적인 일상은 내가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알려주고, 아이가 보다 능동적으로 살아가게 돕는다.


하지만 규칙적인 일상만 가득하다면 불규칙성에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일상에 변화를 더 해야 한다.


아이에게 영향을 덜 주는 사소한 변화부터 천천히 시작한다.

집안 곳곳에 못 보던 걸 둔다든가.

새로운 맛난 간식을 준다든가.

아주 짧게라도 낯선 영상을 틀어준다든가.

잠자는 위치나 수면환경, 음식, 옷 등 자신의 생존을 위협(?) 받는 것이 아닌 것부터 천천히 한다.

아이가 거부감이 클수록 더 천천히 사소하게 한다.

아이가 잘 받아들이면,

부모와 하는 활동 중에 이벤트도 넣고, 번개여행도 시도해 본다. 매일 타던 교통수단이 아닌 것도 해보고, 새로운 의식주에도 도전해 본다.


아이 안에 있는 규칙을 깨기 위해 부단히 낯선 곳을 데리고 다녔다.

한 곳 한 곳이 도장 깨기처럼 힘들었지만, 장소와 활동에 대한 긴장감이 낮아진 아이는 여행을 즐길 줄 알고 원한다.


오롯이 아이가 느끼는 것이 전부이기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작은 변화가

아이에게는 중대한 어려움을 줄 수 있다.


빠듯한 일상 속

사춘기 아이의 변화를 마주한 나에게도

일상의 안정과 변화의 적응이 필요하다.


가을이 왔다. 한 해가 성큼 간다니 마음이 또 조급해진다. 조바심 내지 말고 평정심을 갖고 초심으로 다시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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