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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사람 Nov 27. 2023

한 고비를 지날 때마다 레벨 업, 우리의 일상은 젠가다

사춘기 자폐 아이를 키우며 위기에 버티는 지혜

자폐 아이와 살아가는 일상은

지극히 평범하다.


매일 특별하다면,

그 특별함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으니까.


처음에는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 같았고,

하루하루가 자갈밭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14년 차가 된 지금은

나에게 그 특별함 마저도 익숙하다.


이쯤이면 아이는 텐트럼(감정폭발)을 일으킬 것이고,

이쯤이면 문제행동이 다시 나올 것이고,

이쯤이면 퇴보를 보이기도 할 것이라는

약간의 예측과 분석의 능력이 생겼다.

이게 바로 경험치일까?


무릎이 쑤시면 비가 올 것 같다는 어르신 말씀 같이

나에게도 혜안이 생긴 건지,

전조행동을 보며 이후 일어날 아이의 행동을 예상할 수 있었다.


위기가 생길 때마다 여지없이 좌절했다.

두더지 잡기처럼 끝없는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이걸 해결해도 저 문제,

저 문제를 해결해도 또 다른 문제.

돌고 도는 문제의 반복과 감정의 기복은 부모인 나조차 지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아이와 함께 버텨낸 시간은

두더지 게임이 아니라 젠가 게임이었다.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또 위기를 거치며

또 다른 문제를 만나기는 했지만,

분명 나아가고 있었다.

하나씩 줄어들고 있었고 점점 더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는 괴로워서 막막해서

도 아래도 볼 수  없었지만

 계단씩 딛고 올라가고 있었다.


물론 계단의 저편의 모습이 어떨지는 미지수다.

멈춰있다고 생각한 시간이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는  걸 돌이켜보면 앞으로 위기를 마주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아이와 함께 마주할 위기에 싸워 이기지 못하더라도

그 위기에 도망가지 않을 자신이 조금씩 생긴다.


와라, 위기.

온몸으로 맞아줄게.

그리고 담아두지 않고 흘러 보내줄게.


동물원에 가자고 조르던 아이는 갑자기 화를 냈다. 먼저 가라는 내 말에 아이는 씩씩거리며 걸어갔다. 한참 걷고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웃었다. 때론 시간만이 약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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