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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사람 Dec 30. 2023

홈카페로 무료함을 달래 볼까?

부디, 궂은 날씨에는 집돌이가 되어주렴

3박 4일 끝에 돌아온 집은 마루만 바꿨을 뿐인데 새 집 같았다. 아이들보다 먼저 가서 뽀얀 먼지를 쓸고 닦으니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듯했다.

짐을 다시 채우니 원래 집이 되었지만,

벌어진 틈 없이 가지런한 마룻바닥이 낯설면서도 좋았다.


이제 스타킹 신으신 분들도 저희 집에 놀러오셔도 됩니다.


거실의 바닥과 벽지만 바뀌었을 뿐, 살림살이가 그대로 차지하니 달라진 게 없어서일까?

잠시 기운이 돌아서일까?

계속 나가자고 졸랐다.

밖에는 비도 오고 스산한 데다가 짐 나르기와 청소에 진이 빠져, 나갈 힘도, 나갈 곳도 없었다.


뭘 할까 하다가 카페를 흉내 냈다.

메뉴판을 적어보고, 메뉴판을 들고 아빠와 동생한테서 주문을 받았다.


무슨 차 드시겠어요?

주문과 동시에 손가락으로 짚어달라는 나의 요청에 남편과 둘째는 또박또박 말하며 손으로 짚어주었다. 아이는 주문을 들을 때마다 안 잊으려는 듯 따라 말했다. 그리고 기억했다.


생강차, 유자차, 유자차


요리는 소꿉놀이보다 더 재밌고 실감난다. 일단, 먹을 수 있다.

아이가 물을 끓이고, 차를 타는 것을 신나게 하는 아이를 보니 진작할 걸 하는 후회가 든다.

아이가 깨뜨릴까 옆에서 잔뜩 긴장한 것을 아는지, 아이는 의외로 얌전히 차를 타서 식탁에 놓고, 가르쳐준 대로 손님들을 불렀다.


차 준비됐어요. 얼른 오세요.


손님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놓치지 않고 깍듯이 하며, 차를 마셨다. 아이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마셨다.


주도적인 삶을 살 때 노년기의 수명이 더 길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자기 결정권이 신체적인 건강까지 영향을 준다는 게 인상 깊었다. 아이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스스로 해내는 것들, 스스로 선택하는 것들이 많아졌을 때 아이의 삶은 더 행복할 것이다.


이제 우리 집 디저트 담당은 너다!

이번 겨울 과제 1번으로 정했다. 독립적으로 차 준비하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놓치지 않고 기회를 줘야겠다.

독립할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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