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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사람 Dec 31. 2023

두둥, 두 번째 독감이 찾아왔습니다

한 잔의 뱅쇼처럼 작은 위안이 되어줄게

독감을 우습게 본 탓일까?

내내 쌩쌩하던 둘째가 어지럽고,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는 말에 싸한 느낌이 들었다.

이마를 짚어보니 뜨끈뜨끈하다.

부리나케 일요일에 진료를 보는 병원을 찾아가니, 연말 특수는 이곳이었다. 맛집 웨이팅은 엄두도 못 낼 긴 기다림에 말 한마디 못 꺼냈다.


오전 접수마감


오후 진료시작 한 시간 전인 12시 30분부터 번호표를 준단다. 다시 심기일전해서 12시 20분부터 찾아가니 벌써 선두그룹은 놓쳤다. 번호표 받는 줄조차 한참이었다. 14번의 번호표를 받고 집에 돌아왔다. 점심으로 죽을 차려주고 시계를 보고는 죽을 마셔버리고 다시 병원행.


A형 독감입니다


둘째는 덥다 춥다 어지럽다를 반복하더니 역시나 독감.

역시나 예감은 맞았다.

큰 애 독감 6일 차에 이어 독감판정이라니 어째 감염병예방수칙 위반 딱지를 연속으로 받은 기분이다.


에궁.

아픈 둘째가 안쓰럽다. 아프다고 징징대는 아기 같은, 큰 애랑 다르게 의젓하게 고통을 견디는 모습에, 다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일이면 열두 살. 훌쩍 커버린 아이의 모습에 괜히 미안해진다.


오늘은 독감 발병 50%에 육박하는 가족들을 위해 이것저것 만들었다. 감기 똑 떨어지라고 뱅쇼도 끓이고. 매생이 굴국도 끓였다. 엄마만 건강하군.

으슬으슬 추울 때 처음 먹고 놀랐던 뱅쇼, 집에서 끓여보니 맛이 얼추 비슷하다. 어째 사먹는 것보다 비싼 것 같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기분이 드는 건 기분 탓일거다.


아이들이 번갈아 잘 때에는 번갈아 챙겼다. 큰 아이는 짬나는 대로 이것저것 해보고(아프니까 최대한 쉽게 쉽게), 작은 아이는 요청사항에 쏜살같이 대령했다, 좀 나아지면 숙제 챙기기도 잊지 않았다.


작은 아이 잘 때 게임 한 판. 거실은 환자들 차지다.

우리에게

어찌 매일 좋은 일만 있을까.

어찌 매일 힘내기만 할 수 있을까.

좋지도 않고, 힘들기도 할 새털같이 많은 날들에,

한숨의 잠, 한 잔의 뱅쇼, 한 그릇의 죽처럼

곁에 있어주고, 힘이 되어주면 되겠지.


그렇게 스스로 도닥이면서 2023년의 마지막 날을

덮는다.

아프고 힘들기도 했지만 또 행복했고 따뜻했던 2023년, 잘 가.

2024년, 어서 와. 우리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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