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진로 고민
새로운 직업세계에는 자신의 특출한 전문성을 드러내어
자기 스스로가 위대한 상표가 될 수 있다
경영학자 Tom Peters
2002년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Next Society에서 이 삼십 년 후의 다음 사회는 지식사회일 것으로 예측했다. 이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이를 더욱 선명하게 직면하게 했다. 이제 누구도 이 의견에 이견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것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경제전문가들은 이 변화에 대해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말하지만, 코로나가 이 문제를 수면에 올리기 전까지 대부분 사람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는 개인보다는 조직이 중요한 사회였다. 그 시절 역시 이 삼십 대들에게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었다. 일단 어디라도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전공이나 적성은 두 번째였다. 조직이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첫 사회생활도 스스로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어디라도 들어가고 보자는 심정으로 시작됐다.
늦깎이 진로 고민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디자인업계로 바로 취업하지는 못했다. 잠깐 거쳐 가는 사회생활이라고 시작했던 아동 미술을 4년이나 가르쳤다. 강사를 구하는 수요가 비교적 많아서 직장을 구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이직률이 높고, 박봉에다가 가르치는 업무 외에도 해야 할 잔무가 많았다. 아이들과 퍼포먼스 미술 활동을 하는 것이 더없이 즐겁기도 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익숙함에서 오는 매너리즘에 생기를 잃어갔다. 특히나 결혼하면 바로 그만둬버리는 선배 강사들의 삶을 보면 나의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인생의 로드맵을 제시해주는 선배도 롤모델도 없었지만 실패하더라도 더 늦기 전에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선택하는 순간에도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점수에 맞춰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절이라 늦깎이 진로 고민이 쉽지 않았다. 단순히 직장을 바꾸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업종을 찾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력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당시 젊은 세대들에게는 하이텔이나 천리안 등의 PC통신에서 정보를 찾고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유행이었기 때문에 나 역시 그곳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주로 관심사인 취업/교육 게시판을 많이 드나들었는데 우연히 웹디자이너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어떤 여성분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새로운 분야에서 전문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음이 이끄니 나도 모르게 웹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낮에는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한 시간 반 거리의 강남에 위치한 그래픽 디자인 학원에 다니며 기술을 익혔다. 월급의 반 이상을 학원비에 털어 넣어야 했지만, 오히려 마음은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