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한 순간을 비워내는 것
저는 특정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기독교와는 나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주변인들 중 신실한 기독교인이 많았던 탓일까요.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그리 좋아하나. 그들을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교회도 따라가고, 성경도 읽어보고 하면서 기독교에 대해 꾸준히 알아오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꽤 오랫동안 가슴 속에 담아왔던 기독교 용어가 있는데요. 바로 '중보기도'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자, 교회에 나가는 주요 이유이기도 해요.
중보기도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대학 때였습니다. 처음 보는 말이 눈에 띄어서 의미를 물으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뜻한다고 하더군요. 그 때는 그저 참 좋은 말이다- 하고 지나갔었는데, 시간이 지나 사랑에 대한 사색을 충분히 거치면서 중보기도가 제게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제가 스스로 정의하는 중보기도의 의미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스스로를 비워내는 한 순간' 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는데요.
아주 오래 전, 얕게 잠든 제 머리맡에 가벼이 손을 대고 조용히 기도를 읖조리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귓가에서 나지막이 속삭이는 목소리에 눈을 떴을 때, 자신의 눈을 감고 제 머리를 조심스레 몇 번씩 쓰다듬던 손길을 기억해요. 그것이 자주 악몽을 꾸는 저를 위해 편안한 잠을 빌어주는 기도였는지, 단단한 듯 하지만 사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약한 제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빌어주는 기도였는지... 신을 믿지 않는 저로서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내용의 기도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속으로는 '으악, 웃기다. 왠지 오글거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흘긋 올려다 본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 보여서, 그 순간이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라는 짐작은 어렴풋이 할 수 있었어요.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는데, 이상하게도 별 것 아닌 그 장면이 살면서 가슴 속 한 장의 압화押花처럼 남아 힘들 때마다 저를 이 삶 속에 단단히 붙들어 매 주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나이를 더 먹고, 나 아닌 타인을 여유롭게 받아줄 수 있을 만큼 성숙해졌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나도 그 때 그 사람처럼 누군가를 위한 한 순간을 위해, 스스로를 완전히 비워낼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 삶의 한 순간을 온전히 바치는 게 중보기도의 의미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그 때부터 저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갈등이 있을 때, 그들이 버거워 할 때 내 욕심이나 나 자신을 지워내고 상대방을 더 생각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온 것 같습니다. 나름 말뿐인 사랑이 아니려고 애쓰고 있달까요.
사람들이 왜 간절하게 중보기도를 하게 되는지도 참 궁금했는데요. 최근 이에 대해서도 나름의 의미를 정립했습니다. 제가 중보기도를 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지만, 내가 그 변화를 이끌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지도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살아가면서 종종 제가 사랑하거나 아끼는 사람들이 저에게 비수가 되는 말을 서슴없이 내리꽂는 순간들을 경험합니다. 대부분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하거나, 강한 방어기제로 인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일 때죠. 가능하면 저도 대화로 풀어 보고 싶지만, 상대방이 너무 단단해서 아무 말도 먹히지 않을 것 같을 땐 상당한 무력감과 안타까움을 느끼곤 합니다. 예전에는 저도 날카롭게 받아쳤던 것 같은데, 제가 단단해진 덕분인지 그런 말들이 저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는 못하기에 그저 지켜보고 져 줍니다.
하루는 상대방이 남기는 생채기를 묵묵히 받아내고 있다가, 문득 저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을 못 이겨서든 일부러든, 거친 말을 쏟아내는 저 사람 마음도 좋지만은 않을 거잖아요. 나는 저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더 편안하고, 따뜻한 말을 많이 하고, 좋은 감정 상태에 많이 머물렀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를 바꾸기는 어려워 보일 때. 혹시 신이 있다면 믿을테니 하나님이라도 저 사람 마음을 보살피고 좋은 쪽으로 이끌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사람 삶에 다시 이런 상황이 와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부드럽게 대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요. 그게 자연스레 제 중보기도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신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교의 사람이 이런 정의를 내리며 살아가는 것이 조금 웃기기도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통해 저 나름의 사랑의 가치관이 정립되고 실천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