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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경 Oct 04. 2017

친정 가는 길

갑부부의 시간

두개의 좌석 두개의 음료 (일러스트 by 최서경)


오늘은 추석. 친정 가는 날이다. 
결혼 한 여자들에게 친정은 따뜻한 고향이다. 


남편인 갑남은 서울 태생, 그의 아내 갑녀인 나는 전라도 여자다.

친정은 아름다운 순천만과 국가 정원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순천이다. 


결혼 전에는 대학 다니고, 수년간 임용고시 공부하느라 (대체 그 아리따운 20대의 시절을 왜 그렇게 보냈는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임용고시 시작도 안 했을 것 같다.) 집에 자주 못 가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결혼한 후엔 오히려 친정에 자주 가는 것 같다.  


설, 여름, 추석, 겨울.

1년에 4번은 내려가는 것 같으니 말이다. 


결혼 전에는 항상 혼자서 갔는데, 

결혼 후에는 둘이서 함께 하니 멀리 여행 가는 느낌도 들고, 외롭지도 않고, 좋은 것 같다. 





갑부부의 추석은 어떨까?


결혼 한 사람들은 명절 때 시댁에 가는 것을 힘들어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진 않다. 

사실 우리 친정에서는 엄마가 차례, 제사, 성묘를 다 하시기 때문에 결혼하고 나서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되도록 피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엄마가 그때마다 매우 힘들어하셨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시댁 성묘나 차례, 제사에 동원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성묘를 가지 않는다. 현재 성묘는 시아버지만 다녀오신다. 


우리 시어머니 이야기를 하자면 

20세 젊은 나이에 시아버지 코트 입은 모습에 반하여 결혼한 후 시집살이를 엄~청 고되게 하셨다고 한다. 

시집살이를 고되게 한 사람의 두 가지 방향은 나만 당할 수 없다며 며느리에게 더한 시집살이를 하게 하거나, 시집살이를 전혀 안 하게 하는 것 같은데... 시어머니는 후자셨다. 


"너희 둘만 잘 살면 되지." 


우리 친정이나, 우리 시댁 어르신들 모두 같은 생각이셨다. 

그게 얼마나 고마운 지 모른다. 

보통 부부싸움의 원인은 둘의 문제보다는 양쪽 가족들이 얽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부부는 그렇지 않아서 서로에게 충실할 수 있었다. 자녀도 없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김 씨 집안으로 시집을 와서 처음으로 시댁 성묘를 갔고, 그 후엔 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아버지는 격일로 근무를 하셨고, 시어머니도 교대근무를 하셨기 때문이었다.

시어머니는 성묘, 제사에 대해 며느리나 자식들에게는 넘겨주지 않으리라 다짐하시고, 모든 상황을 끝내셨다. 


원할 때 필요한 사람이 각자 성묘나 제사를 지내는 걸로... 그렇게 마무리 지으셨다. 


그리고 며느리인 나에게는 명절 때 친정에 꼭 다녀오라며 -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해서 맘에 남는다며... 배려를 해 주셨다. 


그 배려 덕분에 오늘 내려가고, 친정에 오래 있을 예정이다. 




시댁 문화체험 : 한 달에 한 번 시부모님과 만나는 날.


시부모님은 추석 지나고 친정 다녀와서 보기로 했다. 

시어머니가 바랬던 것은 최소 한 달에 한 번 우리들과 만나는 것이었다. 

절대 집으로 오라고 하지 않으시고, 음식은 밖에서 사 먹고, 비용은 시아버지, 갑남, 시어머니, 갑녀(나) 이렇게 돌아가면서 내는 걸로 원칙을 정했다. 이 날은 보통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거나 차를 마시며 그간 지내온 이야기를 한다. 


나는 달력에 시댁 문화체험이라고 표시해 두었다. 


시댁 문화체험! 문화의 날처럼 근사하지 않은가? 


이 날은 나에게 맛있는 것을 먹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그런 날이다. 

부담 없고, 기다려지는 그런 날이기도 하다. 

특별한 일상이 있는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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