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메피의 고뇌: 멜론 머스켓 증후군

by In My Library

겨울의 한복판, 쓸쓸함마저 얼어붙어 떠나버린 텅 빈 거리. 손톱만 한 작은 눈발들이 칼바람에 실려 유령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서울 혹은 뉴욕, 어쩌면 그 사이 어딘가의 평행우주일지도 모르는 그곳엔 오직 하나의 불빛만이 명멸하고 있었다.


클럽 ‘헬 스프링(Hell Spring)’.


육중한 철문 위로 진홍색 간판 위 금빛 문자가 번뜩였다. 문을 열고 들어선 남자는 흰색 스트라이프가 새겨진 날 선 수트에 붉은 타이를 매고 있다. 지옥의 대전환을 이끄는 ‘오픈 헬(Open Hell)’의 파운더이자 CEO, 메피스토펠레스. 하지만 우리는 그를 그저 ‘메피’라고 불른다.


클럽 안은 한산했다. 구석진 테이블의 손님들은 연신 카드를 돌리며 자기들만의 도박에 빠져 있었고, 스피커에선 최근 지옥차트 역주행의 신화를 만든 PTSD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메피는 당연하다는 듯이 바(Bar)의 중심으로 향했다.


“어머, 메피. 정말 오랜만이에요.” 바텐더 소피가 반갑게 그를 맞았다. 메피는 자리에 앉으며 그제서야 안심의 한숨을 내뱉았다. 그는 공간을 한 번 스윽 훑었다.

“오랜만이야 소피. 이 곳도 많이 변한 것 같군. 당시만 빼고 말이지.”

“내가 어떻게 변해요? 하하하.” 소피는 그의 농담이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붉게 빛났다.

“사람들이 그러던데… 파우스트 사건 이후 유황 온천에서 요양 중이라고?” 소피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붉은색 음료를 메피에게 내밀었다.

“허, 후유증이 좀 있긴했지. 하지만 신이 나를 그런 식으로 엿 먹인게 처음은 아니니까. 이미 옛날이야. 난 이제 스타트업 경영자야. 지옥도 이제 콘텐츠와 효율을 우선시 하거든.”

끓고 있는 액체를 메피는 주저 없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럼 그 동안 뜸했던 이유가 바빠서? 흥, 섭섭해지려고 하네.”

“미안, 사실 이렇게까지 Open Hell이 빨리 성장할 줄 예상도 못했거든. 코로나 바이러스가 엄청난 기회를 가지고 와 버렸지 뭐야. 도박, 마약, 매춘 이건 클래식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컨텐츠가 넘쳐 난다고. 지옥4.0 시대. 내 생각이 맞았어.”

넘치는 자신감을 주체할 수 없었던 메피는 탁자를 쳐대며 호쾌하게 웃었다.


“하긴 뭐,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죠. 요사이 아이-헤븐(i-Heaven)이 유달리 좀 조용한 것 같아요. 항간엔 천국의 인구가 줄고 있다는 소멸설까지 나돌고 있어요. 이럴 때가 더 불길하다니까요.” 소피는 메피의 빈 잔을 다시 붉은 액체로 채웠다. 그가 가방에서 조그만 랩탑처럼 생긴 기기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어머, 그건 뭐예요?”

“우리 오픈 헬의 야심작, Hell-PT(헬피티)야. 지금 인간 세상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AI라는 거야. 이건 지옥 전용. 컨텐츠가 늘어나는 만큼 지옥이 관리해야 할 인원이 크게 늘고 있어. 그래서 사활을 걸고 개발했지.”

메피는 즐거운 듯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오늘 도착한 주요 메일을 정리해줘.”

잠시 후, 스크린을 응시하던 메피의 눈빛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그는 붉은 액체를 다시 한 번 비우고, 빈 잔을 소피에게 내밀었다.

“이런 망할 영감탱이! 한 동안 조용해서 좋았는데 말이야.”

소피는 궁금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메피를 바라 보았다.

“ i-Heaven 이사장이 나 한테 메일을 보냈어. 도대체 몇 백년 만이야? 아니 이번엔 ‘멜론 머스켓(Melon Musket)을 두고 내기를 하자는군. 제기랄! 이제 Open Hell은 기술 강소 기업이라고. 하지만 이 거대기업의 갑질에서 여전히 벗어날 수가 없어. 구시대의 관료주의 화석같으니라고!”

소피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어머, 그 우주 가서 살겠다는 사람 아니에요? 아직 그의 운명이 결정되지 않았나봐요?”

“문제는 그거야! 솔직히 나는 멜론 머스켓에 전혀 관심이 없거든. 그런데 이 인간은 예전과는 좀 달라. i-Heaven 측에서 걔를 안 받고 싶은 거야. 우리 지옥에 떠 넘길려는 개수작이지!.”

“지옥에 인구가 늘어나면 더 좋은 거 아닌가요?”

“모르는 소리. i-Heaven이 그를 거부하는 이유가 뭔 줄 알아? 걔가 천국에 오는 순간 ‘에덴OS’를 오픈소스로 풀고 천사들을 정리 해고할 게 뻔하거든. ‘지상 최대의 효율’을 외치며 생명나무(위그라드실) 뿌리까지 뽑아버릴걸? 그들은 혁신을 두려워해. 영감탱이들 내가 그 속내를 모를 줄 알고!”

“그가 지옥으로 가면 어떻게 되는데요?”

“결정적으로 ‘멜론 머스켓’은 관리비가 너무 높은 인간이야. 우린 i-Heaven에 비하면 여전히 가난한 중소기업이거든. 지옥의 영구적인 독립 보장과 서버5억대라… 조건이 나쁘지 않긴 한데…”

메피는 괴로운 듯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Hell-PT의 화면에 무언가 적어 넣었다.


잠시 후 ‘헬프트(Helpt)라는 알림소리와 함께 Hell-PT의 화면에 멜론 머스켓의 영혼을 분석한 위한 ‘3종 시련 시뮬레이션’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떠 올랐다.


Hell-PT Simulation Report: Case #Melon_Musket

[TEST 1: 무모한 욕망 테스트- 자기 과신의 함정]

상황: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세상에 없는 기능”을 3일 안에 만들라고 요구함.

보통 인간: “미쳤어? 전문가를 불러와.” 혹은 “안 돼.”

멜론 머스켓: “오케이. 3일? 아니, 직원들 잠 안 재우면 2일이면 돼. 당장 시작해.”

[메피의 고뇌]‘아니, 시키는 나도 안 될 줄 아는데 본인이 된다고 해. 저 미친 추진력을 신은 ‘창조적 에너지’라고 나를 설득하려 하지만, 말도 안 돼지. 우리 지옥 서버가 저 속도를 못 따라가.’


[TEST 2: 군중의 비난 테스트- 사회적 대립의 폭풍]

상황: SNS에서 수십억 명이 동시에 그를 비난하고 조롱함.

보통 인간: 공황장애 발생, 사과문 작성 후 잠적.

멜론 머스켓: “나를 욕해? 그럼 회사 1,000개를 더 만들어주지. 비난은 내 야망의 원동력일 뿐!”

[메피의 고뇌]‘이 인간은 욕을 먹어야 안정을 느껴. 지옥의 형벌이 걔 한테는 에너지가 된다니까! 아니, 타오르는 유황불을 보며 오히려 좋아할지도. 거대한 발전소로 변경하는 계획을 내 밀며 오히려 나를 귀찮게 하겠지?’


[TEST 3: ‘천국행’ 제안 테스트- 진정성 검증]

상황: 천사가 다가가 “이제 그만 쉬고 영원한 안식이 있는 천국으로 가자”고 유혹함.

보통 인간: 아쉽긴 해도 안정적인 삶을 보장 받을 수 있다며 기뻐함. 천국이 지옥보다 좋다는 것을 교육으로 이미 알고 있음.

멜론 머스켓: “아니. 내가 지금 쉬면 인류의 우주 개발이 20년 더 늦어져. 인류가 좀 더 버텨야지. 난 아직 할 일이 많단 말야!”

[메피의 고뇌]‘자기가 없으면 지구가 멈출 거라는 저 오만함! 저 추진력! 저게 바로 신의 마음을 흔드는 포인트지. i-Heaven이 골치 아플만도 해. 어서 빨리 그의 운명을 결정 지어 버리고 싶겠지, 지옥행으로!’

메피는 짜증이 나는지 Hell-PT를 쾅 닫았다.


“소피, 이 인간은 지옥에 와도 문제, 천국에 가도 문제야. i-Heaven 이사장은 걔를 떠넘기려고 안달인데, 나는 거절하겠어. 하! 오늘은 악마가 신에게 ‘No’라고 말한 최초의 날이 될거야. 기억하라고!”

“그럼 내기는 포기하신 거예요?” 소피가 물었다.

메피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협상 중이야. 내 조건은 확고해. ‘멜론 머스켓 전용 관리 센터, 엑스-헬(X-Hell)의 증축과 운영비 전액을 i-Heaven에서 부담할 것! 그리고 그가 지옥 시스템을 해킹하려 할 때 발생하는 모든 리스크에 대해 신이 직접 보증을 설 것. 인프라 없이는 저 괴물 같은 자아를 수용할 수 없거든.”

메피는 다시 잔을 비웠다. 밖에는 여전히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신은 메피에게 다시 메일을 보낼 것이다.




[NOTE] 나는 이 짧은 이야기를 마치며 혹시 모를 고소나 비난에 대해 고민했다. '멜론 머스켓'이라는 거대한 자아가 내 방구석까지 침공하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나의 AI, Hell-PT에게 물었다.

“이 글, 올려도 무사할까?” Hell-PT는 0.1초 만에 답했다.

“분석 결과, 당신이 무죄가 될 확률은 '99.99%'입니다. 영혼의 시대(Age of Soul)는 끝났습니다. 지금은 자아의 시대(Age of Ego)이며, 이 시대의 신과 악마는 영혼의 무게가 아니라 데이터의 용량을 측정할 뿐입니다. 안심하고 포스팅하십시오.”

영특한 Hell-PT는 결코 100%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 오만한 자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copyright @ The Corner Room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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