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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미 Dec 06. 2021

원하던 일을 하는데 왜 힘들지?

그토록 바라던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행한 이유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듯 했다.


눈빛으로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르겠다.

난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왜 내가 죽을 죄를 지은 죄인처럼 기가 죽어 있어야 되는지 모르겠다.


간절했다.

퇴사가 정말 간절했다. 사무실 공기에 짓눌려 질식 할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답답해서 밖에 나가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시고 들어오곤 했다.


첫 회사였다.

다들 좋은 회사, 높은 연봉을 따져가며 취업준비를 할 때,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8시간을 해야하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면 회사에 앉아있는게 고역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공과는 아무 상관없는 직무를 준비했고 회사 규모가 작고 연봉이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입사했다.


정말 좋았다.

아침에 오는게 좋았고 야근을 해도 재미있었다. 자진해서 주말까지 반납하며 일했다. 하루에 8시간을 앉아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주어진 업무 외의 일까지 도맡아서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정받는게 좋았고 예쁨 받는게 좋았다. 탕비실 정리부터 변기 뚫는 일까지 자진해서 처리했고 그렇게 나는 싹싹한 신입사원이 됐다.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막내였고 사원이었지만 예쁨 받는 싹싹한 신입사원이 아니라 만만한 그냥 보통의 사원이 되어있었다. 영화 속 대사처럼 내가 건넨 호의를 권리로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거절하면 변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열심히 일했다. 역량을 인정 받아 성과도 내고 메인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문제라면 열심히 일한 게 문제였다. 어느 날 팀장님이 말했다.


"예전에는 120% 일했으면서, 요즘은 왜 100%만 일해?


이 말을 듣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싫었다.

아침이 오는게 싫었고 회사에 앉아있는게 고역이었다. 날 아끼던 대리님은 이젠 따가운 눈총을 보내왔고, 내가 존경하던 팀장님은 나를 방치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득 차 있었던 자존감은 바닥을 기었고 실수가 잦아졌다.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예전만큼 열심히 하지 않아서 모두에게 피해를 끼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심히 하려고 노력할수록 엉망이 되어가는 상황을 보면서 자신감도 사라졌고 동시에 말수도 사라졌다.


퇴근 후에는 내팽개쳐진 자존감을 다시 끌어올리려 노력했다. 책도 읽고 운동도 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침이 되어 핸드폰 알람이 울리는 순간 모든게 사라졌다.


하지만 퇴사할 수 없었다.

정부 지원 정책인 청년 내일채움공제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한창 애사심에 벅차 어쩔 줄 몰라 했을 시절, 나의 내일을 채워준다는 희망 가득찬 말에 무려 3년짜리로 신청했다. 중소기업의 근속년수를 늘리기 위해 2년은 1600만원, 3년은 30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3년 전, 모두가 말렸을 때 그들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8개월 이었다. 3000만원을 받으려면 8개월을 버텨야 했다. 근속년수를 늘리기 위한 정부의 정책은 대성공이다.


사람이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지면 피해의식이 생긴다. 말투가 날카로워지고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다.

사무실에서 온갖 촉각을 곤두세우고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내 욕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스트레스가 심장 위로 차곡차곡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책상 위에는 타이레놀과 위통약이 늘어가고 냉장고에는 양배추즙이 가득 들어찼다.


모니터 옆에는 인공 눈물이 뚜껑이 채 닫히지 못하고 말라간다. 커피는 근 손실온다며 코 웃음 치던 내가 아침에 커피를 안 마시면 한시간도 집중을 못했다. 초점 없는 눈동자로 지난 해 다녀왔던 몽골의 지평선에서 맞이하던 일출과 당산 대교에서 마주치는 일출을 겹쳐보며 출근한다.


점심시간에는 동료들과 의미없는 대화를 나누고 저번 주에 먹었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오후에는 다른 부서에서 요청한 업무들을 마무리하고 퇴근한다.


다들 이렇게 산다고 자위하며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일상의 지겨움 끝에 서서 항상 퇴사를 고민한다. 기대하는 일과 계획이 없기에 하루하루가 지겹다. 지겨움의 크기만큼 스트레스가 쌓였다.


미움 받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했다.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그 누구도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정확히 꿰뚫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에게 용기를 주겠다는 책이 나오자 열광하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내 상황을 해결해 줄 것 같은 책 제목이 눈에 띄면 닥치는 대로 사다 읽었다. 수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속 시원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여행, 도예, 클라이밍, 전시, 서핑, 책, 운동, 명상, 그림, 일기 등 나의 자존감 지킴이 프로젝트는 계속됐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나의 우울한 시기는 어이없게 끝이 났는데, 바로 대리님의 퇴사였다.


타인에 의해 내 상황과 컨디션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은 썩 기분좋은 사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퇴사할 수 도 없는 상황에서 그의 퇴사는 나에게 숨쉴 공간을 만들어 주었고 나는 그 사실을 기쁘게 인정했다.


나는 다시 밝아졌다. 내 우울의 가장 큰 이유는 나를 구겨놓던 그의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어느정도 맞았다.


그러나 숨 쉴 틈도 잠시, 자주 반복되는 팀 내 입사와 퇴사 속에서 퇴사자들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나는 어느새 대리, 과장업무까지 도맡아 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두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분명 좋아하는 일이었는데, 회사는 재미있던 일도 한순간에 하기 싫어지는 곳이었다.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인수인계와 떠난 사람들에 대한 추가업무로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하루에 몇번이고 발생하는 돌발상황에 대처할 인력이 없다보니 수습하고 나면 업무시간이 끝나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8월이 되었고 내일채움공제 계약 종료일이 되었다.


사실 더이상 퇴사할 이유는 없었다. 사무실 공기를 짓누르는 것 같은 분위기는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사라졌고 3년간의 나의 노력과 성과가 인정받기 시작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퇴사하면서 나는 직급은 사원이었지만 팀 내 최장 근속년수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중요한 업무나 회의에 참석하는 일이 잦아졌고 내 의견에 영향력이 생기자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퇴사를 고민한다는 내 말에 10명중 10명은 말렸다.

나는 내년 진급대상자 1순위였다.


그동안의 인사 고과가 좋았기 때문에 6개월 동안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자동으로 직급과 연봉이 오르는데 왜 퇴사를 고민하냐는 것이었다.

'나가더라도 직급은 달고 나가야지.'

'이직할때 제일 중요한건 직급과 연봉이다.'


고민했다.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 것인지.

다른 일을 시작한다면 너무 늦은건 아닌지.

당장 그만두면 뭘 해야할 것인지.

하고싶은 것은 있는지.

어떤 선택이든 후회하진 않을 것인지.


하지만 분명한건 6개월 후에 받게되는 직급과 연봉을 포기한다해도 아깝지는 않았다.

6개월이면 다른 걸 해도 그 이상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 회사에 있는 내가 아까웠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회사는 트렌디함을 추구했지만 변화를 싫어했다. 직원들은 쉽고 편한 업무를 원했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나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매출은 떨어지고 압박은 심해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나와 함께 성장하던 회사는 이제 없었다.

브랜드 아이덴디티와 트렌드를 추구하던 회사는 이젠 매출만 추구하게 되었고

고객보다 대표님 눈치를 보는 회사가 되어버렸다.


나는 더 크고 싶었다.

경력을 살려서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것도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일을 계속 해 나갈 자신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진급을 4개월 앞두고 3년 3개월의 경력을 가지고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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