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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미 Dec 08. 2021

퇴사자들의 순례길

제주, 혼자 떠난 여행


지겨웠다.

눈감고도 다닐  있는 출근길과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 어제와 별반 다를  없는 반복적인 업무와 회의. 퇴근  마시는 시원한 맥주한잔으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 싫었다.


큰 행복을 원했다.

소소한 행복따위도 이젠 질려버렸다.


매일 모니터 앞에서 생각했다.

퇴사하면 이 지긋지긋한 일상을 떠나야겠다. 라고


벼르고 벼른 사직서를 작성할 , 퇴직사유에 작성할  있는 온갖 이유들이 떠올랐지만 '건강악화'라는 평범한 거짓말을 쓰고 퇴사하는 마지막 날까지 일에 치이다 겨우겨우 짐을 챙겼다.


시원 섭섭했다.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했던 전남친과 이별하듯 그렇게 다시 없을 20대 열정을 첫 회사에 남겨둔 채 퇴사했다.


불필요한 감정과 소비에 지쳐있었고 여유가 필요했다. 누군가와 여행을 같이 가기도 싫었다. 그냥 혼자있고 싶었다.




제주도를 좋아해서 계절마다 다니곤 했다.

봄에는 꽃을

여름에는 바다를

가을에는 오름을

겨울에는 한라산을 다니며 제주를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행을 결심한 후

렌터카, 숙소만 예약하고 일정은 계획하지 않았다. 항공권도 편도로 예매하고 돌아오는 표는 예매하지 않았다.


몽골 여행 이후 꺼내지 않았던 24인치 캐리어를 꺼내 2주치 짐을 쌌다. 원래는 한달 계획이었지만 추석 연휴를 고려해 보름정도만 머물기로 했다.


그리고 책 3권과 일기장, 아이패드를 챙겼다.


혼자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7년전 유럽여행 당시 친구와 만나기로한 체코까지 혼자   외에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 있게  것은 처음이었다.


불안한 마음과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숙소는  군데를 예약했는데 전부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예약했다. 바다를 보는 것도, 노는 것도 좋아해서 질릴때까지 바다만 보고 오자는 생각이었다.


계획없이  여행이었기 때문에 렌트카에 올라타자  곳이 없었다. 제주도는   와봤기 때문에 웬만한 관광명소는  가봤고 어느정도 지리도 알고 있었다.


곽지해수욕장.

일단 점심을 먹으러 가까운 애월 곽지해수욕장으로 출발했다. 도착해서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으니 문득 10  고등학교 학원 선생님이 생각났다. 선생님은 3년전 제주로 이사를 왔다.


간간히 명절과 생일에만 안부를 주고 받은지 10년이었다.


"선생님 저 제주도왔어요."


10분뒤 선생님이 해수욕장에 도착했고 우리는 물회를 먹으러갔다. 학창 시절 방황하는 나에게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알려주신 분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심한 청개구리였던 나는 공부를 하려고 자리를 잡아도 누가 공부하자고 하면 꺼내던 책을 다시 집어넣고 노래방에 가던 학생이었다.


그런 내게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었다. 똑같은 수학 문제를 10번이고 20번이고 물어도 화내지 않고 20 설명해주신 분이었다.


오늘은 공부하기 싫다고 하면 10시에 우리를 데리고 월미도에가서 회오리 감자를 사주셨고 부모님 몰래 만나는 남자친구와의 연애도 남모르게 응원해주셨다.


그렇게 나에게 공부는 해야하는 숙제가 아닌 밥먹는 것처럼 당연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 293등이었던 등수는 3학년때 7등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아빠보다 나이가  많았던 선생님은 내가 열아홉에서 스물아홉이  시간만큼 세월과 함께 변한 모습이셨다. 8년만에 만난 사이지만 어제  사이처럼 어색하지 않았다.


제자의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흔쾌히 나와주신 선생님과 반갑게 안부를 물으며 함께 점심을 먹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다시 혼자였다.




제주도에서 다른건 안해도 꼭 하고싶은 것이 2개 있었다.


매일 노을보기

서핑타기


노을보기에는 시간이 일렀으므로 신창해안도로에 있는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노을을 기다리기로 했다. 퇴사한지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걸 느낄  있었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너도 나도 쏟아내는 회사 고충들을 누가 더 힘든지 대결하지 않고 온전히 들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장 미친놈아니야? 점심이라도 맛있는거 먹어.'


혼자 여행하다보면 쓸데없는 생각들이 많아지는데

나는 알수 없는 불안감에 계속 휩싸였다.


제주를 온전히 느낄 수도 여행을 즐길수 도 없었다.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

아무것도 안한다는 불안.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까지.


계획없는 퇴사에 대한 대가같았다.


'앞으로 뭐해먹고 살아야 되나.'


잠도 제대로 못잤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 호텔과 펜션위주로 예약했는데 두번째 숙소였던 펜션 앞 뒤로 무덤이 있는걸 본 후 괜히 무서워진 마음에 3일 내내 뒤척였다.


4일째 되는 날엔 사먹는 음식도 전부 질려버렸다.

요리에 취미도 재미도 붙이지 못했던 성격탓에 조리가 가능한 펜션에 묵으면서도 한번도 요리를 안했다.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 요리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이었다. 하지만 깨닫기만 했을  여행내내 요리를 하거나 시도하진 않았다.




다녔던 여행지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장소는 몽골이다. 유럽, 미국, 태국, 일본 등 다양한 나라를 다녔지만 온전히 그 곳에 집중할 수 있었던 여행지는 몽골 뿐이었다.


오래된 건축 양식과 가치 있는 미술품들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매번 알 수 없는 초조함이 들었다. 내 여행 일정은 다음주 까진데 과연 이 곳에 있는 문화 유산을 다 보고 갈 수 있을 것인가! 퀘스트를 받은 유저의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몽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다의 지평선이 아닌 대지의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졌다. 할 일이라곤 그 너머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 몰려오는 비구름을  피하기 위해 넓은 초원을 말을 타고 달렸지만 결국 비구름이 말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깨닫는일.


돗자리를 깔고 누워 끝없이 쏟아지는 별과 은하수를 바라보며 지구의 자전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 가이드가 해주는 밥을 먹고 졸리면 낮잠을 자고 푸른 자연을 즐기는 일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오롯이 그 장소에 집중 할 수 있었다. 그 매력에 빠져 이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여행을 좋아한다. 관광지 맛집 앞에서 줄을 서고 사진을 찍는 여행보다 일정이 없어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유유자적한 여행을 더 좋아한다.


즉흥적이고 계획 없이 자주 가는 대표적인 장소가 제주도였다. 1년에 3번이상 갈 정도로 좋아했는데 특유의 아기자기한 돌담과 높은 건물없이 탁 트인 풍경이 좋았다.


시간이 남거나 휴가 일정이 생기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소였다. 그래서 퇴사 후 여행지도 고민없이 제주도로 떠나온 것이었다.


그런 제주에서 느끼는 불안함이라니.

거기다 빨리 불안함을 떨쳐내고 즐기자는 강박까지 더해지기 시작했다.


환장 대잔치




제주오기  제일 잘했다고 생각한 일이 운전을 다시 배운 일이었다. 이십대 초반에 친구들과 제주도에 와서 뚜벅이로 다니며 자전거를 타고 다닌 여행도 즐거웠지만 혼자 운전하며 다니는 여행은  다른 재미가 있었다.


뭔가 더 여유롭고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에 잔뜩 취해 많이도 다녔다. 제한속도 60이 50으로 변경된 사실이 내부 네비게이션에 업데이트 되지않았다는 사실을 3일차에 깨달았다. 정말 열심히 달렸는데 과속 카메라도 열심히 찍혔겠지..


서울에 돌아온 후 10만원짜리 과태료 통지서를 받았다. 세상에서 제일 아까운 돈이 과태료임을 몸소 깨닫고 나서야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바다에 반사되는 햇빛이 눈부실   일어나 혼자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셨다. 낮잠을 자고 근처 서점에 들러 괜찮은 책을 사고 읽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만큼 책도 금방 읽었고 제주에 올때는 3권이었던 책이 서울에 갈때는 6권이 되었다.


그러다 우도에서 재밌는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우도 비양도에서 한 커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알고보니 커플이 아니라 따로 온 여행객들이었고 내가 부탁하기 전에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 셋은 혼자 여행왔다는 공통점으로 시간가는  모르고 얘기했고 아쉬움에 근처 카페에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마저도 아쉬워 저녁도 먹고 술도 마셨다. 둘은 스물 다섯이었다. 좋아보였고 부러웠다.


나는 스물 아홉이 되서야 낸 용기를 4년이나 일찍 내다니. 각자 하는 일은 달랐지만 먹고 떠들다 보니 금방 새벽이 되었고 너무 늦어버린 탓에 결국 각자 예약한 숙소에 가지 못하고 내가 예약한 펜션에서 하루를 보냈다. 잠들기 전 우리는 성산일출봉으로 일출을 보러가기로 약속했다.


일출은 무슨. 자고 일어나니 오전 10시였고 뒤늦게 아침을 먹었다. 해는 머리 꼭대기에 있었지만 성산일출봉에 올라갔다. 셋이 같이 온 여행처럼 그렇게 하루종일 놀고 이 신기한 인연을 마무리 한 채 각자 다음 여행지로 흩어졌다.


이 후 우연찮게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다. 코로나 영향으로 해외여행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혼자 제주여행을 온 사람들이 꽤 많았으며 그 대다수가 퇴사자들이었다.


각양각색의 이유로 퇴사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야기의 내용은 우울한데(주로 불안정한 미래와 같은) 사람들 표정은 즐거워보였다. 앞으로 뭐하고 살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웃으면서 하곤 했다.


여행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준 숙제가 하나 있었는데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일이었다.


해볼까? 해보자!와 같은.


어차피 혼자서 시간도 많았고 보채는 이도 없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을 하나씩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 중 하나는 스쿠버다이빙이었다.


프리다이빙은 해봤지만 스쿠버다이빙은 해본적이 없어서 궁금했다. 모슬포항 근처 호텔에 있을때 스쿠버다이빙을 하려면 중문까지 나가야해서 고민을 하다 어차피 남는게 시간인데 다녀오자! 라는 마음으로 예약을 했다.


예상한 것과 다르게 나에게는 지루한 액티비티였다. 프리다이빙과 달리 산소통이 있어 바다속을 오래동안 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산소통이 여간 거추장스러운게 아니었다. 스킨스쿠버를 하고 나니 프리다이빙에 대한 욕심이 더 강해졌다. 서울에가면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알수 없는 불안감에서 벗어난 것은 제주에 온지 6일만이었다.


함덕해수욕장.

무려 이 곳에서 6박을 예약했다. 이유는 없었다. 돌아다니는 것도 점점 귀찮아지고 현지인처럼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바다가 제일 예쁘다고 소문난 해수욕장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곳에서 평온함을 되찾았다.


해수욕장은 생각보다 번화가였고 관광지여서 밤마다 관광객들이 하는 불꽃놀이와 떠드는 소리에 조용하진 않았지만 백색소음처럼 알 수 없는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었고 잠도 잘잤다.


여기서 패들보드도 타고 서핑도 탔다. 3년 전 처음 서핑을 탄 이후 매년 두세번은 꼭 서핑을 타러간다. 서핑을 타다 지쳐 보드에 누워있으면 바다의 주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


서울에서 잔뜩 가져온 고민과 걱정거리들을 파도에 휩쓸리도록 보내고 오면 그만이다. 사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보드를 가지고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고 파도를 잡아 타다보면 잡생각은 나지도 않는다.


어쩌다 한 번 잡게 된 파도에 가슴이 벅차고 신이난다. 하염없이 파도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지만 끝없이 펼쳐진 바다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내 파도를 기다리는 시간도 마냥 지루하지 않다.


함덕해수욕장은 서핑을 타기에는 파도가 잔잔해서 패들보드를 타기로 했다. 바다가 맑고 투명해서 패들보드를 타고 다니기 좋았다. 밀물과 썰물이 심한 곳이었기 때문에 밀려가지 않도록 노를 계속 저어야 했다.


바다에 흩뿌린 유리조각처럼 햇빛은 작게깨져 눈부셨고 파도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나는 혼자였고 빨리 가자고 서두르는 사람도 없었다. 온전히 바다를 즐길 수 있었다.


혼자 왔다고 하니까 사장님이 제트스키도 태워주셨다. 과격한 드리프트(?)에 세번이나 바다에 내팽개쳐졌지만 재밌었다.


서핑은 이호테우 해변에서 탔는데 WSB FARM이라는 서핑웹캠 어플로 파도가 좋은 해수욕장을 확인해보니 이호테우 해변이 파도가 제일 좋았다. 바로 차를 몰고 1시간 걸려 도착한 이호테우 해변에는 이미 많은 서퍼들이 파도를 잡아 타고 있었다.


나도 바로 서퍼복으로 갈아입고 파도에 뛰어들었는데 미역이 너무 많았다. 물 속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미역이 온몸에 주렁주렁 달려 나왔다. 리드줄에 미역이 하도 걸려 보드가 무거워 끌려오지도 않았다. 밤마다 해변에서 파티를 벌인 흔적인지 생활쓰레기들도  많이 떠다녔다.


그래도 파도는 좋아서 이 날 처음으로 혼자서 그린웨이브를 잡아 탔다. 힘들어서 '그만타고 나갈까?'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파도가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패들링을 하게됐다. 팔에 힘이빠져 패들링이 약해지고 파도를 놓치기 시작할 때 쯤, 마지막이라고 다짐한 서른 여섯번째 패들링을 했을때 마침내 그린웨이브를 잡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신나게 서핑을 타고 나오니 해질무렵이었다. 제주와서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두가지를 동시에 누린 순간이었다.


서핑과 노을.


이 후 언제 불안했냐는 듯 나는 빠르게 제주 생활에 적응을 했고 늘 그렇듯 적응할때 쯤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회사생활을 하며 잊고 살고 있었던 내 모습이 있었는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 하는 걸 좋아했었다. 무언가를 배우고 끊임없이 도전하는걸 좋아했었다.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고 잘 노는 사람이었다.


첫 날 제주도에서 쓴 일기에는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마지막날 일기장에는 행복하다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내 모습과 함께 이륙하는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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