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인간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마담이 무심하게 말했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자상하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처럼 좋은 사람이었어요."
이 소설은 저자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주인공 요조는 그의 삶을 닮은 부분이 많다.
'나'라는 인물이 요조라는 주인공의 사진과 3개의 수기를 읽는 것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요조가 인간사회에 녹아들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마지막에는 죽는 날만을 기다리는 씁쓸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 각자의 실격된 부분
요조는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동화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뒤에서는 서로 욕하고 앞에서는 친하게 지내는 듯한 인간사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그래서 보통의 사회에 동화되고자 '익살'이라는 자신만의 방어막을 만들기 시작한다.
소설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과장된 부분도 있겠지만 사회생활에 개인으로서 사회와 맞지 않는 부분에서 맞춰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라 생각하며, 나에게도 요조의 면모가 있다고 느꼈다.
나의 경우는 감정의 스팩트럼이 넓은 편이 아나라 덤덤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가끔 타인과의 대화에서 감정적으로 공감 못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무의식적으로 리액션을 크게 하는 경향이 있다. '큰 리액션'은 나에게 요조의 '익살'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 사회가 인정하는 개인은 누구인가
"그나저나 네 난봉도 이쯤에서 끝내야지. 더 이상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이 아니야. 네가 용납하지 않는 거겠지.'
어느 날 요조를 찾아온 고등학교 친구 호리키는 요조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사회적 통념 속에서 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0대에는 공부, 20대에는 취업, 30대 이후로는 결혼과 가정 등 우리는 개인이면서도 사회의 규칙을 착실히 지켜나가면서 살고자 한다. 요즘에는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삶의 단계를 정석으로 밟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추세이지만, 아직까지 그 단계를 밟아가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사회적 정석을 밟고 싶지 않다고 말할 때, 그것을 당연스럽게 이해해주기보다는 그걸 하지 않기 위한 많은 이유들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정석을 추구하는 하는 사람을 고리타분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고 변화를 꿈꾸는 사람을 마냥 진취적이라고 옹호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호리키가 말하는 세상이란 '진짜' 세상이 아닌 호리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앞의 두 경우도 각자의 세상이 말하는 기준에서 다른 사람들을 보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알 수 없고, 거시적인 세상은 그저 다양하게 변화하고 형성되고 흘러갈 뿐이다.
# 실격된 인간이란
성인이 된 후, 피폐하고 방탕한 생활로 삶을 전전하게 된 요조는 술과 마약에 의존해서 살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때 요조는 자신을 실격자라고 생각하며, 삶의 의지 없이 죽을 날을 기다린다.
요조가 자신을 실격자라고 하는 이유는 단순히 정신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주체성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사회와 개인, 둘 다를 버릴 수 없는 현실에서 삶의 모든 부분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란 어려운 일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이유로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옳은 길이란 무엇인지.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좋은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고민하며 삶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 '나'라는 개인을 사회에서 잃어버리지 않는 것. 이것은 우리들의 반복되는 숙제이다. 우리가 워라벨을 지향하고, 자기 계발을 계속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한 많은 방법들 중 한두 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요조는 자신이 살아온 생애 중에 느낀 진리란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이라고 말했다. 그저 지나가는 것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않고 자신의 인간다움을 붙잡고 흘러가는 것이 결국 '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느낀다.
우리 모두는 요조다. 부정하고 싶어도 많던 적던 요조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개인과 개인이 뭉쳐져 있는 사회에서 익살과 같이 자신을 속이는 방식보다 본질적으로 개인이 개인 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각자의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