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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하 Jan 01. 2023

#2

의식의 흐름 기록 : 존버

# 퇴사 > 두려움 > 그럼에도 불구하고 > 다시 쓰기 > 준비 > 한걸음 > 남기기 > 헝거 스톤


11월 내내 야근을 할수록 허리가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부터 퇴사를 고민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퇴사하고 다음 회사를 갈 수 있을까? 하는 게 고민거리였고 더 좋은 회사? 아니면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없을까 봐? 백수로 굶어 죽을까 봐? 걱정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퇴사의 이유와 고민이 더해졌다.

지금 다니는 회사 전 회사에서도, 그 전전회사에서도 늘 프리랜서를 꿈꿔왔다. 

나는 일할 때 마디가 있는 걸 좋아한다. 한 프로젝트를 하고 다음 프로젝트를 하는 식으로. 그런데 인하우스 편집디자이너는 그러긴 어렵다. 마디는 없다.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이 내 스타일에 참 맞지 않다. 사실 제일 스트레스이다. 

이전에 곡을 쓸 때에도 한 곡이 마무리되고 음원이 발표되며 마디를 만들고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그런 뭐랄까.. 아무튼 '마디'라는 단어 말고 다른 단어를 찾으면 정정하는 걸로. 그래서 전에 잠시 웹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작업했을 때 꽤나 마음에 들었다. 다만 화장실의 열악함으로 줄행랑쳤지만.. 남녀가 1평 정도의 화장실을.. 함께 쓴다는 게 너무 끔찍했다. 중간에 큰 게 와서 시간을 보내려 하면 똑똑-... 와 나처럼 외부에서 큰 거 오면 당황하는 인간은 반드시 면접 볼 때 화장실을 꼭 들러봐야 한다. 이거 필수임. 


돌아와서, 지금의 두려움은 프리랜서로 일을 따내지 못하고 굶어 죽을까 봐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나 같은 사람들은 늘 그런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제난에 퇴사를 하겠다는 건 또다시 시작된 발작일 수도 있다. 내가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망이 이따금씩 깨어나 발작을 일으키는 거일 수도. 

내가 가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을 전시하기엔 이르다. 조급하게 전시했다가 내가 스스로 짓밟을 것 같다. 전에 그랬으니까. 내가 스스로 내 열망을 짓밟았다.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

음악에서 디자인으로 전향하여 일해온 내 모습을 돌아보았을 때, 너무 후회되는 게 있다. 좀 더 끝까지.. 진짜로 존버하지 않은 것. (사실 뭐.. 음악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었지만.. 이건 나중에 썰을 풀어보는 걸로.) 회사에서 존버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존버하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 그래서 다시 해보고 싶은 것 같다. 그래서 발작이라고 하는 거다. 

나의 장점은, 나는 어디에서든지 정말 최선을 다한다. 그 회사의 서비스나 제품을 사랑하고 그 회사의 발전을 염원한다. 그래서 이 장점을 살려서 이제는 내 이름을 걸고 최선을 다하고 내게 일을 맡겨주는 곳의 서비스나 제품을 사랑하고 그 회사의 발전을 염원해보려고 한다. 궁극에는 이 모든 방향과 노력이 내 열망이 원하는 곳으로 나를 이끌어 가주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오색물고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전에 쓸 때에 빨리 전개하느라 정신없었던 것 같아서.

나에게 오색물고기, M87은 나의 시작부터 존재한 나의 무의식의 공간이다. 그래서 다시 쓰면서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물론 출퇴근하며 중간중간 써 내려가고 있어서 더디지만, 오색물고기 매거진에 다시 붙여낼 예정이다.


지금 나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이다. 퇴사 후에 굶을 시간을 위한 적금도 무엇도 전무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 늘 그랬다. 모든 게 다 완벽하게 준비된 채로 산을 오르기 바랐으나 내 태생부터가 금수저가 아닌데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하다. 모든 사람이 삶을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다. 산을 오르고 쉬어가며 아이템을 얻어가는 것. 

게임도 처음부터 현질하고 시작하던 치트키를 치고 시작하던 출발점이 다른 사람들은 그냥 디폴트로 접속하는 사람보다 당연히 빠르고 쎌 수밖에.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눈에 더 잘 띌 수밖에. 사는 것도 비슷하지 않겠나. 그래서 존버정신으로 시간을 들여 계속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나는 이 한걸음 한걸음도 주춤거리며 주저했었다.


최근에 극심한 가뭄으로 헝거스톤이 발견되었다고 뉴스에서 봤다. 가뭄으로 인해 수면이 낮아지면 돌에 새겨진 "이걸 보면 울어라"가 보인다고. 

나는 물고기라서 물에 살아야 하는데, 물이 말랐다. 그래서 헝거스톤 아니, 브레스스톤이 발견되었는데, "이걸 보면 그곳에서 벗어나라"를 내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곳에서 벗어나려 한다. 무엇보다 한번 벗어나야만 허리디스크가 좋아질 것이다.  


의식의 흐름이 늘 잘 연결될 거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겠다. 내가 합리적인 사고를 거쳐 합당한 방법과 결과를 기대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놉. 나는 합리적인 사고를 거쳐놓고는 결국 내가 욕망하는 결과를 기대하고 급발진할 때가 꽤나 있다. 

내 의식의 다양한 방향성을 다 감당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아무리 튀어나가도 내가 속한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걸릴 테니 적당히 튀어나가 뛰어놀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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