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것을 바라보는 여러 개의 시선

#05

by 강흐름

어제 과음을 했더니 반나절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소주 몇 잔을 시작으로 갑자기 나타난 고등어구이를 보며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고

결국 맥주 여러 병을 비우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스무 살엔 무슨 정신과 체력으로 매일같이 술을 마셨던 걸까.
슬프게도 어느덧 내 간과 정신은 회복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느려졌다.
정신을 깰 겸 방 정리도 해보고 라면으로 해장도 해봤지만 별 효과가 없다.
출근해야 할 회사가 없다는 게 어찌나 다행스럽던지.
끓어오르는 속을 이끌고 오늘도 이 한가함 속에 온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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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출근도 완료.
신기하게도 매일 같은 길을 가고 있지만 매일 다른 기분이다.
하늘색도 다르고, 등대 색도 다르고, 바다색도 달라 보인다.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온도에 따라 다른 곳을 거닐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엔 언제나 한결같은 빨간 등대가 그 끝에 있다.
늘 함께 걷는 꼬마 아가씨 덕에 바닷길을 걷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바라보는 게

새하얗게 순수해지는 것만 같다.
바람이 나를 안는다거나, 바닷물 좀 보라며 눈이 동그래지는 아이를 보며.
땅바닥에 흩어진 돌멩이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밧줄 조각에, 고여있는 물 웅덩이 하나에도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너무나 싱그럽다.
예쁘다며 꽃을 꺾으려는 걸 막으려 설득하는 건 꽤나 애를 먹었지만.
오늘 저녁은 이 동네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양념갈비를 먹게 됐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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