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커피를 잘 마시지도, 잘 알지도 못했던 내가
어느덧 하루에 한잔 정도는 커피를 맛있게 마실 줄 알게 됐다.
게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커피를 마시러 오는 손님들과 커피에 대해 몇 마디 대화도 나누고 있었다.
언니가 자리를 비우고 혼자 가게를 보고 있던 어느 날 저녁,
한 여자분이 조금은 급한 걸음으로 가게로 들어오셨다.
"커피 한 잔만 주세요. 근데 가게에 커피 향이 안 나네요?"
장마철인 데다 흐리디 흐린 제주 날씨에 온 동네가 쥐 죽은 듯 조용했던 날이었다.
당연히 커피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게 팔렸고, 커피 향이 머물러 있을 리는 없었다.
민망한 웃음을 짓는 나에게 그녀는 하루 종일 커피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며
진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아마도 이 근처의 카페들이 흐린 날씨를 핑계로 문을 열지 않았거나 일찍 닫았나 보다.
카운터에 계속 서있던 그녀는 커피를 내리려는 나에게 맛있게 부탁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순간 긴장이 됐다.
그 탓에 아무렇지 않게 내리려던 커피에 평소보다 좀 더 정성이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혼자 한 잔씩 커피를 내려 드신다며, 이 카페 커피 향도 좋다며, 진하게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하실 때쯤 커피가 다 내려졌다.
최대한 차분하게 커피를 건네드린 나는 곧이어 들려오는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고마워요, 좋은 분 만나서 맛있는 커피 먹을 수 있게 됐네요."
이 습기 찬 날씨에 소중히 뜨거운 커피잔을 쥐고 문을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맛있는 커피를 요청하는 말에 긴장했다가,
고맙다는 말에 곧바로 긴장이 풀린다.
마치 눈을 질끈 감고 한약을 넘기고 마지막에 달콤한 사탕 하나가 입에 들어온 기분이었달까.
p.s. 오늘은 커피보다 망고와 고구마라떼가 끌린다. 오미자 에이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