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미 마이 아일랜드 : 8일 차 이야기
이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사실 남편이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날엔 숙소에만 있으면서 책을 읽거나,
이렇게 집 앞에 바로 있는 괜찮은 카페에서 혜영씨가 좋아하는 빗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보냈을 테지만
남편은 얼마 안 남은 연차를 쓰고 4박 5일 동안 여행 온 여행자이다.
그래서 이렇게 택시를 타고 급하게 근처(?) 남부로 내려갔음
어제 방문했던 이페코페 빵집 아저씨가 가보라고 추천해준 식당으로 가는 길
이렇게나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되어있는 수풀들이 가득하다.
역시 아열대 기후의 지역인가 싶은 식물들이 잔뜩.
엄마와 나란히 사진을 찍고 있다. 아직 내 손에도 길들여지지 않은 새 카메라 TC1은 작동법이 가장 쉽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맡겨졌고, 나는 1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며 손에 아주 잘 익은 FM2를 고심 끝에 데리고 나왔다. 이 두 카메라는 화각이 매우 달라서 같은 것을 두고 찍어도 아주 다른 화면을 보여주는데, 신기하게도 서로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도 같은 것을 자꾸 겹치게 찍고 있는 거다.
그걸 먼저 캐치한 엄마가 "야, 자꾸 네가 찍으니까 필름 아까워서 나는 못 찍겠다. 그냥 네가 다 찍어라"하는 거다. 사람들 눈이 다 비슷하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소하고 소박한 것들이라 나는 그게 너무 웃기고 재밌어서 "엄마랑 나랑 렌즈 반경이 달라. 괜찮아. 신경 쓰지 말고 찍고 싶은 거 다 찍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일까..... 혜영 씨는 하루에 평균 두 롤씩 찍어내고 계신다.
준비해온 필름이 너무 금방 떨어질까 봐 나도 모르게 쩨쩨하게 필름을 갈아주며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부담감이나 의무감으로는 찍고 있는 거 아니지? 정말 찍고 싶은 게 있을 때만 찍어도 괜찮아. 필름이니까"라고 했다. 혜영씨는 "전혀 아닌데?? 그런 걱정 하지마. 사진 찍는 거 너무 재밌다! 필름도 빨리 보고 싶고.. 이탈리아 가기 전까지 나도 카메라를 사서 사진 좀 배워서 가야겠어"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역시 엄마 딸인가 보다. 그리하여 혜영씨는 오늘도 하루 두 롤을 소화해내셨다.
너무 남편이 우리 사진만 찍어주기에 미안해서 "오빠도 서봐"하고 사진을 찍어주는데, 강심장인 그 남자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두세 걸음 뒷걸음질을 하면서 "우와!"이러는 것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가지고 있던 카메라를 막 켜서 나무 위를 찍기 시작. 나와 혜영씨는 "뭔데, 뭔데"하면서 다가갔다. 이렇게나 안정적인 자세로 나무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고양이씨.
어제 미나토가와 스테이트 사이드 타운에 갔을 때, 가방에 쓰여있던 타이포에 완전 꽂혀서 산 가방.
뭐야, 이거. 완전 나를 위한 가방 아니야?? 싶어서 냉큼 샀다.
(남편은 극구 반대했지만)
하지만 엄마의 적극 찬성과 찬스로 가방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
고마워요, 혜영씨. 당신은 역시 나의 대천사..
사실 오늘의 목적지는 이 곳. 나미노우에 궁 근처였다.
구글에서 본 해변 위 절벽의 신사가 자리 잡은 모습이 우리 모두를 사로잡았기에 과감하게 왔는데.
할 말은 많지만 하지는 않겠다.
대신, 이렇게 근처에 나미노우에 비치가 있으니 근처에 있어서 방문의사가 있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이렇게 오키나와스러운 곳을 지나 밥을 먹으러 간다.
이토록 귀여운 자판기를 넘어가면 나오는
어제 갔던 이페코페 빵집 아저씨가 추천해준 식당 Piperch Kitchen을 찾았다.
커리, 아이사 라이스, 오믈렛 라이스를 시켰다. 그런데 나중에 구글 리뷰를 보니 함바그 스테이크 맛집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시킨 것도 너무 맛있었는걸. 오키나와에 와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게 거의 없다시피 했었는데, 이 날 우리 셋 다 접시를 싹 다 비웠다.
그냥 돌아가기 아쉬운 마음에 모노레일을 타고 슈리성까지 와버렸다.
사실, 혜영과 나 둘이었다면 절대 오지 않았을 오늘의 일정..
슈리성 자체보다 그 주변 성곽을 따라 걷는 일이라던가, 뒤편의 작은 식물원 같은 산책길이 우리를 더 흔들어놓았다.
이런 뷰도 볼 수 있고요.
(또 등장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의 엔딩 장면에 나온 것만 같은 돌길도 나타난다.
이 길을 내려가다 보면 원래 가려던 음악다방이 나오는데...
아쉽게도 쉬는 날...
종일 비 온다고 했는데 비가 안 오길래 그냥 집으로 또 돌아가기가 아쉬워 집 앞 비치로 향했다.
어쩐지 키키 키린 할머니가 살고 계실 것만 같은 그런 맨션.. (아니, 그 할머니는 고급주택에 사셨을 것 같아...)
나 분명히 여유롭게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려고 여기 왔는데 하루하루 매일이 고되다...
처음엔 방문시간이 짧은 섬이니까 그랬고, 지금은 남편이 휴가 내서 왔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체류기간의 1/4이 지나가버렸는데 왠지 이 여정의 끝까지 나는 이렇게 피곤할 것만 같아......
빼기의 여행을 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