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미 마이 아일랜드 : 9일 차 이야기
중부에만 있다 보니 볼이 복어처럼 차오른 남편을 위해 나와 혜영씨는 미리 북부에 가기로 했다.
나름 단단히 준비를 하고(공항에 미리 가서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가는 버스 정보를 받아냈다) 아침 6시부터 일어나 7시 19분 얀바루 버스를 타기 위해 동선까지 다 짜놓았는데, 골든위크의 위엄을 무시했던 건지 북부로 우리를 데려다 줄 버스는 이미 만석이어서 탈 수가 없었다. 공항에서부터 출발한 그 버스는 거기에서부터 이미 만석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실망한 남편은 "아무래도 안 가야 하는 운명인가 봐. 그냥 여기에 있자"라고 하는데, 그 실망하는 눈빛을 보고 어찌 가만히 있을까.
일단 육교를 건너 반대편 정류장으로 가 공항으로 갈 참이었다.
공항에서 만석으로 출발하는 거라면, 우리도 공항으로 가자! 가 나의 목표였는데 어쩌다 보니 나하 버스 터미널에 가는 버스가 오고 있었다.
버스 터미널이라면 북부로 가는 버스가 많을 거라는 예상 아래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바로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역시, 다행스럽게도, 나하 버스터미널에서 117번 버스를 타고 우리는 츄라우미까지 갈 수 있었다.
중부에는 비가 이따금씩 내리고 흐린 하늘이었는데, 2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북부는 쾌청했다.
그래서 남편은 날이 흐려지기 전에 바다를 만끽하고 수족관에 들어가자는 의견을 냈다.
똑쟁이 남편의 플랜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날이 흐려지지 않더라도 한참 더운 1시 이후로는 실내에 들어가는 게 맞다고 판단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동물 애호가나 그런 동물 인권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아쿠아리움이 불편하다.
돌고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걸 기대하면서도 돌고래쇼는 보고 싶지 않다.
언젠가 돌고래를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함께 제주도 아쿠아리움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돌고래 쇼를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나서 친구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민망했다.
돌고래는 웬만한 교감 없이는 절대 쇼 같은 걸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면서도, 뭔가 묘기를 부릴 때마다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이 나에게는 너무 잔인하고 슬펐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앉아있는 나 자신도 싫고, 그렇다고 친구를 포함한 다른 많은 사람들을 나쁘게 몰아가는 것처럼 눈물이 나는 나 자신이 제일 미웠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아쿠아리움에 입장하는 시간을 늦추고 자연 그대로의 바다를 보며 있는 시간을 택한 것이다.
각자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 모두들.
엄마와 나는 필름이 궁금하다.
웨딩촬영 때부터 찍어온 섬에서의 사진을 남기고 아쿠아리움으로 들어갔다.
유리관 바깥에서 지켜보는 우리들은 경이로움을 느낀다.
유리관 안쪽에 있는 저 아이들은 과연 어떨까.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에 가면 쉬이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신기하지만, 꼭 그만큼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 그나마 환경 조성이 잘 되어 있는 곳에 가면 죄책감이 덜하고.
츄라우미는 어땠냐 하면, 생각보다 마음이 참 불편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수족관이라나. 그런데 그렇게 작아도 되는 거야? 이렇게 큰 고래상어가 두 마리나 되는데, 복수 사육을 자랑할게 아니라 수조를 좀 키워줘라ㅠㅠ
일주일 전, 이시가키 섬에서 보았던 글래스 보트 아래의 세계가 떠올랐다.
비록 고래상어나 쥐가오리는 보지 못했지만, 수많은 해초와 산호, 그리고 그 사이를 자유로이 날아다니던 이름 모를 많은 종류의 물고기들. 그때 만난 세계와 오늘 내가 마주한 세계는 같은 세계일까?
갇혀있는 삶은 어떨까. 나는 자꾸만 영화 <도리를 찾아서>가 생각났다.
"여기에 있으면 사냥하지 않아도 알아서 먹이도 주고, 관리도 해주고, 목숨의 위협도 받지 않는데!"라며 더 이상 자연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편한 환경의 아쿠아리움을 선호하는 해양생물들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떻게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도리'와 같은 물고기들. 전자의 경우도 겨우 인간의 생각 따위지만, 저런 생각을 하며 이런 곳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나를, 그리고 이런 곳이 아니면 절대로 마주할 수 없는 바닷속 신세계를 위로해본다. 굳이 수조에 갇힌 고래상어나 쥐가오리, 물고기가 아니어도 우리는 '갇혀있는 삶'이 어떤 것인 줄 너무나도 잘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