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기로 한다
"우리 딸은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참 많아서 좋겠다."라고 엄마는 늘 말했다.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은 딸이 무럭무럭 자라 엄마 눈에만 번듯한 직장인이 된 지 딱 3년 차, 그 딸이 퇴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엄마는 말했다.
"제이야,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어."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 저 좋은 일만 하고 산다는 사람 있는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어.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억지로 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냥 딱 그렇게 사는 거야"
퇴사하기 세 달 전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무엇을 위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다른 대륙을 겁 없이 뛰어다닐 때에도, 네 뼘짜리 책상에서 20시간을 보내던 학교에서도, 대학에서도 난 늘 내가 어디에 있는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건 무엇을 위함인지를 마음 깊숙이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쫓아다녔고, 그 덕에 행복해서 주먹으로 가슴을 쿵쿵 치는 날이 많았다.
퇴사하기 한 달 전쯤에는 넌 뭘 좋아하냐는 직장 상사의 질문에 바보 같은 답변을 했다. 좋아하는 것이라, 난 좋아하는 게 참 많지. 그런데 여기에서는 따뜻한 바닐라 라테 한 잔과 점심으로 먹는 마라탕 빼고는 하루 종일 좋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 순간, 이 물건이, 이 행동이 너무 좋아서 손가락 끝 마디마디가 찌릿한 적이 언제였던가, 마음이 정말이지 정말 정말 많이 서글펐다. 그래서 퇴사를 했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 속 같은 이탈리아 어느 도시로 가서 한 달을 보내야지. 자전거와 바다 수영, 밤낮 없는 와인, 우연처럼 운명처럼 만날 사람들,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것들 속에서 긍정과 낙관을 충전해와야지.'라는 나의 계획 없는 계획은 코로나 19로 불가능해졌다. 코로나 시대, 서울 한 켠의 작은 공간에 사는, 27살의 여자에게 별다른 뾰족한 수는 없었다.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할 수밖에.
새로운 직장을 다닌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지금,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경력을 인정받으며 이직한다는 건 그간 돈을 받으며 해왔던 일을 앞으로도 돈을 벌기 위해 해야 한다는 뜻이고, 그건 어느 정도의 지루함과 지겨움을 감내해야 한다는 거다.
주변인들보다 많은 곳을 여행하고, 많은 책을 읽고, 지구의 온갖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나는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 공부를 했고 그리하여 직장인이 되었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거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억지로 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라는 엄마의 말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 내가 '참 어른'이 되고 있다는 것일지, 내가 절대 되기 싫었던 '그냥 어른'이 되고 있다는 것일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쓰기로 한다.
언젠가 혹은 조만간의 내가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질문을 다시 또 스스로 하게 되었을 때의 답변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는 절대, 잊지 않기 위해서. '넌 이런 걸 좋아하는 애야.'라는 걸 그 누구도 말해주지도, 세상은 딱히 궁금해하지도 않는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아버린 나는, 어쨌든 엉망진창 얼렁뚱땅 내 세상의 주인인 나는 나에게 계속 알려주어야 하니까. 그냥 그러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