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깍' 침을 삼켰을 때 '찌릿'하고 목이 아프면, 계절이 바뀐다는 신호
저녁 양치를 하고 소파에 턱 앉았을 때, 그때부터 슬쩍 의심이 들긴 했다.
아직은 여름 잠옷을 입고 자야 했으니까. 발 끝에 선풍기 바람이 닿도록 예약을 걸어두고 잠들어야 했으니까. 확신하지 못했을 뿐.
아침이 되어 물 한잔을 벌컥벌컥 마신 뒤, 혹시나-하며 '꼴깍' 침을 삼켰을 때 '찌릿'한 목 안쪽의 통증과 함께 빙긋 웃음이 났다.
"음-! 가을이 올 건가 보군(가을 옷을 빨리 주문해야겠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병명이며 증상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편도염. 빨리 병원에 가지 않으면 근육통과 함께 오한이 들 수도 있고, 하얗게 해어진 부위가 더 심해지면 좋지 않은 점액에 뒤덮여 음식 삼키는 것도 고통스러워질 거다.
증상을 아주 잘 설명한 나의 덕분에(?) 진료는 1분 만에 끝났다.
"몸살기도 좀 있으셨겠어요"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딱히... 뭐 계절 바뀔 때마다 찾아오는 친구라..."라고 어리둥절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돌아온 의사 선생님의 대답이, 으아 정말 마음에 들어버렸다-!
예민한데 긍정적이시네요 :)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여기서 tmi, 아주 어릴 적부터 비염을 포함한 각종 기관지염을 앓아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 '후각이 예민하다'를 많이 떠올 리 실 것 같아서 허허)
후각이 둔감해서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이득 보며 살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향기보다는 불쾌한 냄새를 마주칠 확률이 더 높으므로. 통각도 둔감해서 아파도 웬만하면 꾹 참고 자연 치유되길 기다린다. 아, 엽떡도 잘 먹는다!
그런 내가 보통 이상으로 예민한 부분이 있다면, 계절의 변화.
앞머리를 흐트러트리는 바람의 습도가 달라짐을 느끼고, 하늘이 몇 뼘 정도 더 올라갔는지를 느끼고
출퇴근 길 밟는 풀의 초록이 얼마나 짙어진지를 느끼고, 잠옷 아래로 닿는 이불의 바스락거리는 습도를 느낀다. 매일, 매 시간, 매 걸음걸음마다.
사랑하는 마음의 변화, 권태기의 여러 가지 증상 중 '이건 정말 빼박이잖아!(심한 욕)'하는 것처럼
계절의 변화를 온몸의 세포로 느끼는 나에게서 가장 확실한 증상은, 바로 편도염.
어찌나 부지런하게, 한 번을 잊지 않고, 또 어찌나 정확하게 느끼는지 계절이 변할 때마다. 일 년에 3~4번씩 찾아오는 애증의 친구이다.
병원에서 4일 분의 약을 처방받았다.
소염제가 있으니 지나친 음주는 지양하라고 했으나 이 말은 듣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아침저녁으로 염증을 삭히는 가글도 받았다. 물 조금으로 희석시켜 1분씩 꼭 했다. 이건 잘 지켰다. (뿌듯)
그리고 오늘 점심, 회사에서 마지막 약을 챙겨 먹었다.
'꼴깍' 침을 삼켰을 때 '찌릿'하고 목이 아프지 않은, 오늘의 퇴근길.
벌써 9월의 중순, 오늘은 가을이 조금 더 많이 보였다.
로지피피의 낭만의 계절을 들으며, 뚜벅뚜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본 것 같은 멋진 나무와 자전거 길도, 누구의 어머님께서 새벽에 열심히 작업하셨을 어여쁜 꽃들도, 부쩍 높아진 하늘 아래로 떨어지는 해도, 찰칵찰칵.
그저 무던하지 못하고 예민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작은 염증과 큰 몸살을 번갈아 앓지만
이 다정한 변화들을 발견하고, 아낄 수 있는 긍정적인 눈을 가졌다는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어쨌든, 조퇴나 병가 없이 4일 치 약 봉지만으로 올해 가을맞이를 무사히 끝냈다.
2019년의 계절들이 오고 가는 길에서, 늦여름에게 '올해는 너 나쁘지 않았어. 잘 가-' 손을 흔들고
가을에게 '올해는 조금 더 길게 머물러 줘! 난 가을 옷이 제일 좋단 말이야. 롱 패딩은 싫어-'하는
응석을 부린 지난 4일.
아무튼, 잘 부탁한다. 정말!
안녕,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낭만의 계절.
안녕, 가을 :)
낭만의 계절/로지 피피(RossyPP)
차가운 가슴을 녹여줄 뜨거운 커피 한 잔
얼어붙은 얼굴을 활짝 피게 할 마티니
해가 지는 종로에 옷깃을 세우고
걷고 있네 우리들은
추운 겨울 낭만이 있다네
추운 겨울 사랑이 있다네
뜨거운 겨울 환자도 있다네
그래도 겨울 겨울 낭만의 계절
인후염 편도염 수족냉증
열감기 우울증 모두 나의 친구
그래도 겨울 겨울 낭만의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