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어제의 내가 '나 혼자 사는' 모습을 방송했다면 어땠을까.
나 혼자 산지 2년 차, 나 역시,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애청자이다.
토요일 아침 햇살을 이제는 더 이상 무시할 수가 없을 때 손을 겨우 겨우 뻗어, 밤 사이 온 메신저를 확인하고
괜스레 억울한 기분에 더 자보려고 폰을 던져놓고 다시 눈을 감지만 더 이상 잠에 다시 들 수는 없을 때
뭉그적 뭉그적 일어나 물을 한 컵 마시고 화장실을 한 번 다녀와,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오면
그때부터 지난밤의 <나 혼자 산다> 클립을 본다.
<나 혼자 산다> 클립을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항상 배가 고프다. (박나래 씨의 요리 또는 화사 씨의 먹방, 혹은 세 얼간이 님들 덕분에 너무 많이 웃어서가 아닐까) 어쨌든 그리하여, 토요일 아침, 침대로부터 나를 '비로소' 벗어나게 만드는 건 지난밤의 <나 혼자 산다>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토요일 아침에도 역시 토요일 모닝 루틴대로 한 번의 재취침 시도를 실패하고, 물 한 컵과, 화장실 한 번을 클리어한 뒤, 다시 침대에 누워 <나 혼자 산다> 클립을 보던 와중에 한 댓글이 눈에 띄었다.
"다들 재밌게 혼자 사는 거 아니고, 이렇게 나른~하게 혼자 살기도 하잖아요."
이번 에피소드에 출연한 연예인의 혼자 사는 방식이 시청자들을 모두 만족시키지는 못했나 보다.
그래, 모두가 박나래 씨처럼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하지는 않으니까. 모두가 기안 84 님처럼 덜 마른빨래를 그냥 입지는 않으니까. 모두가 그렇게 살지 않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보고 싶어 하는, 기대하는 콘텐츠가 있을 수 있겠지.라고 이해해보려는 찰나.
지난밤, 그러니까 금요일의 '나 혼자 사는' 내가 나 혼자 보낸 퇴근 후의 저녁이 생각났다.
금요일 아침의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약속이 없는 금요일은 오랜만이니까. 퇴근 후 간단하게 요거트와 깎아 둔 사과를 해치우고 운동을 가야지.
운동을 다녀와서는 이번 주 내내 읽어야지 다짐하고는 한 장도 펼치지 못한 그 책을 읽고 잠들면 되겠다!'
그러나 웬걸...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손발을 간단하게 씻고 냉장고를 여니 바로 먹기 좋게 깎아 둔 사과가 전혀 먹고 싶지 않은 거다. 저대로 오래 보관할 수는 없으니 오늘 저녁 먹지 않으면 아마 버려야 함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냉장고 문을 닫고 그대로 소파에 앉았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서울로 돌아온 내가 이번 주 내내 얼마나 고생했는지 스스로 상기시키며 나에게 더 맛있고 더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먹여주고 싶었다. #자취요리를 검색하니 제일 먼저 보인 건 나무 플레이트에 예쁘게 플레이팅 된 한 접시의 파스타.
손질된 새우나 신선한 버섯 같은 건 '당연히' 없다. 아쉬운 대로 다진 마늘을 달달 볶다가 작게 자른 비엔나소시지를 투척- 라면과 함께 언제나 찬장에 있는 파스타 면과 소스를 양껏 들이붓고, 이번 주 고생한 만큼의 치즈를 올리면 끝! 나도 인스타그램 속 #자취요리처럼 멋 좀 내보려고 사둔 파슬리 가루까지 뿌리고 나니 더할 나위 없었다.
랜덤으로 튼 브이로그에서 혼자 파스타를 해 먹는 유튜버와 함께, 2인분의 파스타를 클리어한 뒤. 계획했던 다음 코스로 넘어가자. 유명한 마케팅 교수 님이 쓰신 책... 두 장을 읽다가 덮었다.
다시 한번, 추석 연휴가 지나고 서울로 돌아온 내가 이번 주 내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상기시키며. 일주일 내내 머리 터지게 마케팅했는데 또 일 이야기를 읽자고? 이건 나에게 크게 잘못하는 거다.라는 생각으로 영화나 보기로 했다.
언젠가 추천받은 기억이 있는 <스탠바이 웬디>를 다운로드하고, 노트북을 들고 소파로 이동했다. 앉아서 보다가 누워서 보다가, 파스타가 짰는지 목이 말라 (정말 그 이유였다) 캔 맥주를 한 캔 깠다. 맥주를 홀짝이며 영화를 보다가, 혼자 울다가, 다시 누웠다가, 굉장히 요상한 자세로 노트북과 함께 소파에 누워있는 채로 영화가 끝났다.
자- 지금 시간은 밤 11시. 양 조절 실패로 2인분이나 해치운 파스타에다가 캔 맥주 한 캔까지 들이부어 아직도 배가 빵빵하다. 영화도 좋았다. 아- 정말 좋은 금요일이었다. 아- 대만족!! 하며 그대로 침대로 뛰어들어 취침.
그러고 토요일 아침, 나의 토요일 모닝 루틴을 끝내고 <나 혼자 산다>를 보게 된 것이다.
만약 금요일의 내가 '나 혼자 사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방송했다면 어땠을까. '뭐야, 쟤 혼자 밥 해 먹네. 밥 먹으면서 밥 해 먹는 브이로그 보냐? 뭐야? 어디 안 나가고 또 앉아서 영화 보네. 아까 그만큼 먹고 또 맥주 마시네. 아니 영화만 보지 말고 뭐 재미있는걸 좀 해봐. 응? 이대로 잔다고?' 라며 화를 내는 시청자가 있을 것 같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나의 '나 혼자 산' 어느 금요일 저녁이었으며, 난 매우 매우 만족 했기 때문에.
친구들을 잔뜩 불러 모아 배달 어플을 3개나 이용하여 돼지 파티를 벌이는 금요일 저녁도, 무조건 웨이팅 해야 한다는 핫플레이스에서 말 그대로 핫하게 보내는 금요일 저녁도, 아무 사운드 없이 식탁-소파-침대로 이어지는 나른한 금요일 저녁도. 모두 나의 금요일이며, 내가 가장 행복한 '나 혼자 사는' 방식이다.
나는 나 혼자 산다. 하루는 배꼽 빠지게 재미있는 <나 혼자 산다>를 찍으며, 또 다른 하루는 눈물 나게 감동적인 <나 혼자 산다>를 찍으며, 어떤 하루는 나른하게 평화로운 <나 혼자 산다>를 찍으며.
어쩌면 나는 그러려고 나 혼자 사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더 행복하기 위해서.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달콤한 나의 도시 / 좋아서 하는 밴드
새로운 하루가 시작돼
난 준비됐어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거야
스치는 사람들 속
작게만 느껴져도
오 난 이 도시에서
나를 찾아야 해
난 여전히 서투르지만
기댈 곳은 너뿐이지만
무심코 펼친 너의 하루에
나의 이야기가 있어
달콤한 나의 도시
아껴온 모든 것이 가득해
나 믿고 있는 걸
우린 같은 꿈을 꾸고 있잖아
내게로 와
달콤한 나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