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표정을 위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이게 될 10편의 글을 네 달에 걸쳐 연재합니다.
글을 쓰기 전에 의식처럼 거치는 작업이 하나 있다. 바로 유튜브에 들어가 적절한 분위기의 플레이리스트를 고르는 일이다. 로파이 힙합 비트, 또는 잔잔한 재즈나 팝을 틀어놓기도 한다. 매일의 기분에 따라 선택하는 재생목록은 달라지지만 그게 어떤 음악이 됐든 마치 맞춤 정장처럼 적절한 작업 환경을 마련해준다. 이것은 그 리스트가 그만큼 어떠한 상황이나 분위기 등을 기준으로 하여 디테일한 컨셉과 분류 방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플레이리스트 전문 유튜브 채널들은 그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의 안목 자체가 콘텐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한 상황이나 감정, 분위기 등을 주제로 삼아 다양한 목록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런 식의 ‘큐레이션’은 사실 음악 분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 아니다. 음악 시장을 관통했던 최근의 변화들, 이를테면 소비자에게 주어진 선택지의 한계가 사라지고 그것들이 점점 더 빠르게 생산, 소비되는 움직임은 사실 동시대 많은 분야들이 공통으로 겪어야 했던 흐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류 속에서 정제된 양질의 콘텐츠를 모아 소비자 입맛에 맞게 제공하는 ‘큐레이션’이나 ‘구독’ 같은 서비스 방식이 분야를 막론하고 급부상했다. 덩달아 무수한 담론들이 이 현상을 ‘취향’이나 ‘공감’ 같은 키워드와 엮어 전반적 시대상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한 번 더 짚고 넘어가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 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음악 시장 안으로 시선을 좁혀볼 것이다. 그중에서도,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여 존재감이 커지기 시작한 ‘섬네일’은 그 나름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떼어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섬네일은 컴퓨터 환경에서 다양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축소한 이미지를 뜻하는데 그것이 엄지손톱(thumbnail)만 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물론 이것은 기사, 홍보, 판촉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용되는 단어이지만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전문으로 내세우는 채널들이 섬네일을 다루는 방식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나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플레이리스트를 찾는 대부분의 청자들은 어떠한 상황에 어울리는 곡을 찾기 위해, 또는 특정 분위기를 바탕으로 한 막연한 취향에 기대어 리스트를 선정한다. 때문에, 플레이리스트의 섬네일은 그 리스트에 담긴 곡들이 전반적으로 풍기고 있는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업에 적합한 로파이 음악에 자글자글한 화질의 80, 90년대 애니메이션을 활용한다든지, 가을에 어울리는 감성적인 팝송을 위해 해 질 녘의 가을 하늘을 품은, 따뜻하면서도 아련한 풍경 사진을 걸어두는 식이다. 몽글몽글한 사랑 노래에는 풋풋한 하이틴 영화의 한 장면을 사용하기도 하고 단순히 어떤 곡들이 풍기고 있는 뉘앙스에 집중하여 섬네일을 특정 색으로 가득 채우기도 한다.
이것은 영상을 게시하려면 무조건 만들어야 하니까 만들 수밖에 없는 의무적인 과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 플레이리스트 영상의 댓글 중에서 ‘섬네일이 좋아서 들어오게 되었다’라는 식의 반응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섬네일은 실제로 시청자 유입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센스있는 곡 선정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채널들은 섬네일 또한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종합적인 효과를 노린다. 섬네일은 그렇게, 안에 담긴 수록곡에 대한 전반적인 분위기를 대표하면서도 시각적인 매력을 통해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그런데 어딘가 익숙한 구조가 눈에 밟힌다. 잠시 앞의 문장에서 몇 가지 단어를 바꾸어보자. ‘섬네일’을 ‘앨범 커버’로, ‘시청자’를 ‘청자’로 바꾸어도 전혀 이질감 없는 문장이 완성된다. 그렇다. 섬네일에 대한 설명은 이 책에서 ‘앨범 커버’를 묘사할 때 주구장창 쓰였던 표현과 정확하게 대구를 이룬다. 그리고 이 사실은 그동안 앨범 커버가 독식하고 있던 ‘음악의 얼굴’이라는 역할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균열’이라고까지 표현한 이유는, 실제로 전반적인 음악 시장에서 앨범 커버의 위상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으며 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 것이 바로 플레이리스트 섬네일이기 때문이다.
음원 다운로드 시장의 활성화에 이어 스트리밍 방식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로 인해 음반이라는 매체가 물리적으로 묶어놓았던 앨범 단위의 소비 방식 대신 개별 곡 중심의 파편화된 소비가 일상적인 모습으로 정착한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시장 변화에 발맞춰 대다수의 음악가들은 10곡 이상의 정규 앨범 대신 1~3곡 정도로 구성된 싱글이나 EP를 빠른 주기로 발매한다. 청자들 또한 앨범을 앨범 단위로 감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게 ‘앨범’이라는 전통적인 단위는 점차 힘을 잃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많은 음악가들이 정규 앨범을 발표한다. 하지만 그 경우 적지 않은 확률로, ‘아무개 가수가 몇 년 만에 드디어 정규 앨범을 발표한다.’ 같은 기사가 따라붙곤 한다. 그만큼 앨범 발매는 이제 결코 일반적이고 보편적이지 않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이벤트가 되었다.
음악 시장에 ‘플레이리스트’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시장 변화의 반동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음악들이 앞다투어 신곡 차트를 갱신해가는 상황 속에서 길을 잃은 청자에게, 누군가가 엄선한 맞춤 목록은 마다할 이유가 없는 달콤한 제안과도 같았다. 이것은 비단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부분의 플랫폼이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하여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추천곡 자동 재생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플랫폼 고유의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서비스가 있지만 결국 공통점은 큐레이션을 통해 소비자가 느낄 ‘선택의 피로’를 지워주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청자의 능동적인 소비를 가로막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능동적인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개개인의 취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음악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선택’의 단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제 청자는 본인이 들을 음악을 고를 필요가 없어졌다. 다시 말해 이것은, 음악이 ‘얼굴’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의미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앨범 커버의 위상이 낮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결과는 다시 꼬리를 물고 ‘새로운 음악의 얼굴’이 탄생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했다. 파편화된 음악들 속에 파묻힌 청자를 겨냥하여 힘을 얻은 플레이리스트 방식은 유튜브라는 날개를 달고 있었다. 2013년에 구글코리아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가장 선호하는 동영상 사이트로 유튜브를 꼽았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즐겨보는 콘텐츠의 1위(58%)를 음악이라고 대답했다. 이렇듯 유튜브는 일찍이 음악 감상 플랫폼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었고 누구나 손쉽게 콘텐츠를 제작하여 업로드할 수 있다는 장점이 더해져 플레이리스트 방식이 확산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었다. 저마다의 안목을 가진 콘텐츠 제작자들은 파편화되었던 음악을 나름의 기준으로 다시 한번 몇 곡씩의 묶음으로 모아 단위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영상 기반의 파일이라는 점에서 각 플레이리스트를 대표하는 섬네일은 자연스럽게 지금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섬네일은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먼저, 무언가에 이미지를 부여한다는 행위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물론 이것은 모든 플레이리스트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목록에 포함된 전곡의 앨범 커버를 단순히 재생 순서에 맞게 나열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규모의 구독자 수를 자랑하는 대부분의 채널은 섬네일 선정에도 특별히 신경을 쓰곤 한다. 이 경우, 각각의 플레이리스트는 단순히 듣기 좋은 ‘여러 곡의 모음’을 넘어, 일관된 의도로 모은 ‘한 개의 플레이리스트’가 된다. 섬네일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대표 이미지가 아니다. 수록곡 전체가 하나의 독립된 묶음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공통된 컨셉과 주제가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서로 다른 음악가의 서로 다른 앨범에 수록된 서로 다른 곡들을 이미지 한 장으로 종합해내는 섬네일의 존재로 인해, 그것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유튜버 개인의 의도가 반영되었다는 사실이 전면에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훨씬 적극적으로 시각 요소에 개입하는 사례도 있다. 인디 음악 중심의 음원 유통을 비롯하여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포크라노스(poclanos)’는 자사의 유튜브 채널에서 ‘Poclanos Radio’라는 이름의 실시간 추천곡 재생 콘텐츠를 운영 중인데 이 영상의 섬네일과 반복 재생용 애니메이션을 위해 일러스트레이터 ‘리루(Riroo)’와의 협업을 진행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스트리밍 전문 플랫폼 ‘VIBE’ 또한 독자적으로 제공 중인 플레이리스트에 자체 제작한 섬네일을 적용하며 일반적인 플레이리스트들과 차별화시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또한 단순히 ‘이미지에 신경을 더 썼다’라는 표면적인 현상을 포함하여, 수록곡을 나열하는 과정에도 조금 더 적극적인 큐레이션이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음악가가 전통적인 의미의 앨범이라는 매체를 대하던 태도와 굉장히 흡사하다. 물론 플레이리스트는 이미 한 번 창작된 음악을 재조합하여 만든 2차 결과물이라는 점과 원곡이 품고 있는 메시지보다 사운드적인 분위기를 우선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곡들을 일관된 목적으로 꿰어 어떠한 단위로서 묶어낸다는 점은 플레이리스트와 앨범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 골격이다. 앨범이라는 단위가 유명무실해지면서 개별 곡 위주의 감상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청자들이 다시 한번 묶음 단위의 콘텐츠를 찾아 돌아오고 있는 셈이었다.
두 번째로, 섬네일이 실제로 기존의 앨범 커버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오프라인 매장의 진열대이든, 온라인 음원 사이트의 차트이든 간에 장소를 불문하고 음악에 대한 최초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앨범 커버였다. 그것은 가수가 누구이며 이번 앨범의 컨셉은 무엇이고 수록곡은 어떤 느낌일지를 추측할 수 있는 단서이자 이미지 자체로서 매력을 뿜어내며 소비자를 유혹한다. 섬네일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외에도 우리가 선택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영상의 제목, 채널명, 조회 수 등이 있으며, ‘들으면 내 심장 쿵쾅쿵쾅쾅쾅 와그작 와장창’처럼 직관적인 영상 제목을 통해 차별화를 두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동일한 키워드로 검색되는 수많은 영상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영상들의 섬네일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섬네일 이미지는 실제로 시청자 유입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친다. 매력적인 이미지로 눈길을 끄는 동시에, 안에 담긴 곡들이 모여 어떤 분위기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 홍보와 정보 전달이라는 앨범 커버의 역할을 그대로 닮아있다는 점에서 플레이리스트 섬네일은 그야말로 새로운 ‘음악의 얼굴’의 등장을 알렸다. 앞 단에서 “앨범 커버가 독식하고 있던 ‘음악의 얼굴’이라는 역할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 것이 바로 플레이리스트 섬네일”이라고 표현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섬네일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살펴보았다. 결국 플레이리스트 단위의 음악 감상 방식이 기존에 있던 기준들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대표하는 섬네일의 존재감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실제로 나 또한 자주 찾아 듣는 리스트를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섬네일은 소리소문없이 우리의 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섬네일은 이 기세를 몰아 ‘보편적인’ 음악의 얼굴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플레이리스트가 앞으로 일반적인 음악 감상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인지, 동시에, 지금껏 당연한 개념으로 인식되어온 ‘앨범’이라는 단위의 위상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먼저 내려야 한다.
앞 장에서 우리는 디지털 음원이 시장을 주도하게 되면서 음반이라는 매체가 빠르게 그 태생적 쓰임에서 멀어지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음반이 음악을 위한 물리적인 그릇의 역할을 잃어버리게 되는 과정은 앨범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의 그릇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이는 앨범 단위의 묶음 방식 자체가 음반의 용량적 한계로 인해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이렇게 불문율과도 같았던 10곡 내외의 트랙 수는 음반의 흥망성쇠와 그 궤를 같이하며 조금씩 명맥을 잃어가고 있었다.
참고로 이 앨범(Album)이라는 명칭은 20세기 초 SP를 주로 사용하던 시절, 제한된 용량을 극복하기 위해 몇 장의 음반을 사진 앨범과 비슷한 패키지로 묶어 발매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이후 이러한 패키징 방식이 대세가 되면서 앨범과 구분 짓기 위해 탄생한 개념이 바로 한 곡 단위의 ‘싱글’이다. 따라서, 요즘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싱글 앨범’이라는 단어는 엄밀히 말해 잘못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앨범’이 음악을 판매하는 대표적인 방식으로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인식되어온 탓에, ‘앨범’은 ‘어떤 형태로든 음악을 묶는 단위’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간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온 ‘앨범’이라는 명칭 또한 어느 순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음악은 원래부터 앨범으로 묶여있던 것이 아니다. 이처럼 어떠한 대상을 규정하는 방법은 기술과 매체의 발전에 따라, 그리고 사회 구성원의 인식에 따라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원래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언제까지나 그러할 것’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변화가 보여주는 참된 모습이다. 그렇게 변화는 꼭 어떤 것의 소멸 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몰락할 것이라 예상했던 아날로그 매체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앨범’ 또한 그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점이 곧, 전에 없던 새로운 모습을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특별한 이벤트가 되었을 정도로 드물어진 앨범 단위의 제작은 오히려 그 ‘특별함’을 무기 삼아 창작자의 자기표현 수단으로써 조금 더 적극적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물리 매체의 의미가 갈수록 상징적인 위치에 가까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앨범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동시에,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앨범의 위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리고 이 대답은 돌고 돌아 다시, 플레이리스트의 절대적 우위 또한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플레이리스트의 편의성으로 인해 섬네일이 우리 삶에 파고드는 속도가 더욱더 빨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음악 감상의 파편화로 잠시 느슨해진 것 같아 보였던 음악과 이미지 사이의 연결고리는 마치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라는 어느 만화의 명대사처럼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다시 한번 그 힘을 뽐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판매 방식의 굴레에서 벗어난 ‘앨범’ 또한 특별하고 상징적인 그것의 역할에 걸맞은, 조금 더 자유로운 표현이 곁들여진 앨범 커버의 다양화에 힘을 보탤 것이다. 그렇게 주류이든 비주류이든 ‘음악의 얼굴’로서의 다양한 이미지들이 양쪽 모두의 방향으로 영향력을 확장해나간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어느 시점의 현상을 ‘결과’가 아니라 여전히 서로 다른 방향과 속도로 흘러가고 있는 ‘과정’으로 바라볼 때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섬네일을 통해 궁극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무언가의 끝이 다른 어떤 것의 시작으로 이어지고 소멸과 탄생이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사람과 음악 사이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때마다 ‘음악의 얼굴’은 매번 그 표정을 달리하며 음악의 곁을 지켜왔다. 섬네일의 존재는 그 표정이 또 한 번 다채로워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앞으로 더욱더 다채로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새 시대의 얼굴이다.
글 월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