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통증을 다시 읽는 시간 # 4
산모의 진통은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깊어진다.
멈추지 않는 이 고통의 끝은 정말 존재할까.
끝이 있다는 걸 믿고 달려왔지만,
그 끝이 다가올수록,
참을 수 없는 통증과 함께
어쩌면 끝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
그것은 인간의 나약함일까, 아니면 간절함의 다른 얼굴일까.
세상이 너무 어두워졌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희망이 닿지 않을 만큼 깊은 밤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우리는 문득 바라게 된다.
누군가 이 어둠을 걷어내주길,
무언가 새로운 시작이 오길.
그러다 마침내—
그 순간이 찾아오면,
그동안의 고통은
언제 있었냐는 듯 조용히 물러난다.
마치 아기가 태어나는 그 찰나,
긴 고통의 시간이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지는 것처럼.
긴 시간의 진통은
그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를 알려주는 준비였는지도 모른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한 생명을 품게 하기 위해—
그 고통을 견딘 뒤에야 비로소
우리는 존재의 깊이와 사랑의 진심을 마주하게 된다.
사랑하게 될 무언가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그 고통을 지나온다.
그러니 고통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마주하느냐,
그 마음의 깊이에 따라
고통은 슬픔이 아니라 삶의 빛깔이 되기도 한다.
작년 여름 무렵, 진료실에 앉은 60대 후반의 여성분이
한숨을 섞어가며, 조금은 시니컬한 어조로 입을 여셨다.
“아휴, 저는 이 허리 아픈 것 때문에 인생 다 망했어요. 난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네. 다른 사람들은 일도 잘만 하고, 여행도 잘 다니던데…”
“주변 사람들은 다 괜찮은데, 나만 아프면 정말 속상하지요… 평소에 하고 싶은 일들이 있으셨어요?”
“안 그래도 잘하는 것도 없는데 아프기까지 하니, 난 뭐… 인생 끝났지.”
“그런 마음이 드셨군요. 아프기까지 하니까 더 서러우셨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병원에서는 어머님 나이면
아직도 한참이에요. 믿기 어려우시지요?” (웃음)
“나는 나름 지금까지는 건강했단 말이에요. 이제 늙어 죽을 때가 되었나 보다 해요”
“어머님,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이렇게 아프기 시작하셨다는 건요— 아직 건강하다는 신호예요.
지금도 충분히 잘 해내실 수 있다는 뜻이죠.”
“에이, 그래도 이제는 늦었어요. 어릴 때부터 배운 것도 없고요.”
“그렇지 않아요, 어머님. 지금이 어머님께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고 싶으셨던 일이 있으시다면, 치료받으시면서 하나씩 시작해 보세요.
어머님이라면, 분명 잘 해내실 거예요."
통증은 때때로 삶 전체를 회의하게 만들지만,
사실은 그 자리에 주저앉지 말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내가 쓸모 없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마음을 가로지르기 시작하면,
누구나 과거를 되짚게 된다.
‘왜 난 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나’,
‘왜 난 더 열심히 하지 않았나’.
자책과 허무, 그리고 소외감은 어느새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결국엔 불편했던 통증이 삶의 전면에 떠오른다.
고통은 ‘당당하게 짜증 낼 수 있는 이유’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살아갈 이유를 느끼고,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여겨지는 관계 안에 있을 때—
고통은 조금씩 그 자리를 잃는다.
내 삶이 머물 자리가 생기고,
마음을 기울일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신기하게도 통증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며칠 전, 그분이 다시 진료실을 찾아오셨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머님. 그동안 평안하셨어요?”
“네,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스트레칭도 많이 했어요.
“너무 잘하셨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요즘 의자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좀 불편하네요. 예방 차원에서 주사 한 대 놔주세요.
“아하, 요즘 앉을 일이 많으세요?”
“네, 저 이제 2학년 과정 시작했어요.”
(잠시 뜸을 들이며 웃더니 덧붙이셨다)
“초등학교요.”
말없이 웃는 얼굴에,
통증은 더 이상 절망이 아니었다.
스스로 있어야 할 곳을 찾았다는 사실,
그 한 걸음에서, 이미 회복은 시작되었으리라.
고통은 우리를 흔들고, 멈추게 하고, 결국은 되돌아보게 만든다.
몸서리치며 밀어내고 싶은 순간처럼 다가오지만,
그 밑바닥 어딘가에는 잊고 지냈던 삶의 진실이 숨어 있다.
당연했던 일상이 다시 소중해지고,
멈춰 선 그 자리에 문득 따뜻한 숨결이 스며든다.
고통은 가장 어두운 밤을 지나
희미하게 빛나는 새벽을 데려오는 길목일지도 모른다.
삶이 왜 귀한지,
무엇이 진짜 의미 있는 것인지,
고통은 때로 말없이 가르쳐 준다.
그것이 있기에 우리는 더 온전히 살아갈 수 있고,
오늘을 더욱 사랑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게 만드는 것—
그 또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일 아닐까.
고통은 우리를 조금 더 진심으로,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묵직하고 조용한 계기일지도 모른다.
「痛みは避けられない。 でも、苦しみは選べる。」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 Haruki Murakami,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할 수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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