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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일러권 Jan 20. 2022

재활용품 선별장을 가다

전국의 쓰레기들을 한 곳에서 마주하다

모니터를 보며 회사 자료들을 보고 있었다. 외국계 기업이라 대부분의 자료들은 영어다. 그래도 부지런한 사수님께서 꼭 필요한 자료들은 한글로 번역을 해두셨기에 나름 편하게 자료를 보고 있었다.


테일러 과장, 내일은 재활용품 선별장을 갈 거니까 청바지에 옷 편하게 입고와

드디어 나에게도 현장을 방문해볼 기회가 온 것이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 현장에서 입을 옷을 골랐다. 청바지는 입고 싶지 않았지만 콕 집어서 말씀하셨는데 안 입고 가면 뭐라 하실까 봐 입었다.

쌓여 있는 플라스틱들, 업계에서는 깍두기라 표현한다 <사진출처 : 경북일보>

 

현장에 들어서니 티비에서 보던 '쓰레기산'이 보였다. 해당 업체는 플라스틱을 주로 선별하는 업체라고 하였고 회사 앞에 서있는 벤츠 S350이 회사 사장님의 재력을 간접적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압축된 사각형 형태의 플라스틱 덩어리를, 업계에서는 깍두기라고 불렀다. 네모 모양으로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운송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후 선별업체에서 해당 깍두기를 해체하고 플라스틱 종류별로 선별을 진행한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생수병으로 많이 쓰이는 PET병이고 이후 PE(샴푸통), PP(음식 포장용기), PS(요구르트병) 순서로 선별한다. PET병이 가장 많이 나오고 또 PET병을 투명 한색, 유색으로 나눠서 판매한다고 한다. 투명한 PET병을 재활용할 때 유색 PET병이 들어가면 플라스틱 재활용 순도가 떨어지고, 이는 곧 판매 가격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경비아저씨가 투명 PET병을 따로 분리하라는 말씀이 바로 이 때문이었구나...).


업계 돌아가는 얘기, 대기업의 재활용 업계 침투 등 사장님의 말씀을 30여분 듣고 본격적으로 선별라인 탐방에 들어갔다. 입구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분들이 분주하게 플라스틱 깍두기를 운반하고 있었다. 라인 입구와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뭔가 쿰쿰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악취는 아니었다. 뭔가 수건을 삶으면 나오는 냄새 같았다. 아 이게 쓰레기장 냄새구나, 이 정도면 참을만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들은 사실이나 내가 다녀온 선별장은 청결도 상위급에 속하는 선별장이었다고 한다..)


수십 개의 선별 장비들과 컨베이어 소리에 많은 소음과 분진들이 날아다녔다. 처음 접하는 환경이라 먼지들이 내 옷에 달라붙는다고 생각하니 현장에 대한 거부반응이 생겼다. 이 옷을 입고 내 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니.. 마치 전국 각지에서 모인 쓰레기가 나를 감싸는 것만 같았다. 사수분은 이런 나의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이리저리 라인 구석구석을 살펴 주셨고 호흡이 답답하셨는지 마스크까지 벗어던진 체 공정을 설명해 주셨다. 참고로 우리 사수님은 어느 순간부터 선별장의 냄새를 못 맡는다고 하셨다.


그렇게 선별장 투어는 끝이 났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스타일러에 옷을 걸고 화장실로 직행, 샤워를 했다. 눈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딸은 화장실 벽을 두드리며 고단했던 나의 하루를 물었다. 오랜만에 월급 값 하고 온것 같다고 대답해 주었다.


냄새는 적응될 것이고 현장갈때는 작업복에 마스크 잘 쓰면된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수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이다. 적응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더 자주다녀서 빨리 현장감을 익히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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