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빨간 쿼카의 병가일지

EP.15- 즉흥적이지만 완벽하게

by 볼 빨간 쿼카

오늘은 친구 E와 F를 만나는 날이다. 친구 E와 F는 현재 근무하고 있는 근무지에서 만난 동료이자 친구이다. 친구 E는 전근을 가서 1년 근무하고 아가가 생겨 휴직 중이다. 친구 F는 현근무지에 소속되어 있지만 2학기부터 휴직하여 내가 병가 전일 때도 직장에서는 만나지 못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이유는 친구 F의 청첩장을 받기 위해서다. F는 가끔 내 문자를 읽씹해서 내가 일방적으로 짜증을 내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F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E와 나에게 청첩장을 주고 싶다고 했다. 모두 휴직 아니면 병가상태이기 때문에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처음에는 브런치집에 가기로 했는데 그곳에 당일에 F가 확인해보니 클래스를 운영하느라 2시에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도음식 전문점으로 오라고 F에게 연락받았다. 어떤 클래스길래 브런치 집에서 브런치 시간대를 포기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어볼 순 없으니 생각을 멈췄다.

남도음식전문점에는 다양한 메뉴가 있었는데 F가 여기는 꼬막이 맛있다고 하여 ‘간장 꼬막 정식’을 먹기로 했다. ‘남도음식전문’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반찬이 엄청 많이 나왔고, 맛없는 반찬이 하나도 없었다. 요즘 잡채가 먹고 싶었는데 해먹을 부지런함은 없었는데 반찬으로 나와서 행복했다. 꼬막도 맛있고 매생이전도 맛있고 꼬막무침도 맛있고 다 다 정말 맛있었다. 들어보니 체인점이라고 하는데 처음 와봤다. 한식이 먹고 싶을 때 자주 들러야겠다. 우리 모두 배부른데 계속 먹게 되는 마법에 걸렸다. E가 일주일에 400g 이상 체중이 늘어나면 안 된다는 의사 선생님 말을 떠올리며 계속 먹게 되는 것을 걱정했는데 F와 나는 점심을 많이 먹고 저녁을 조금 먹으면 되지! 라며 걱정 말고 먹으라고 했다. (산부인과 관련한 의학적 지식은 없는데… 이렇게 말해도 되었던 거겠지…?) 양껏 먹은 우리는 다음 장소를 고민했다. 내가 물었다.

“근처 카페를 갈까, 드라이브해서 뷰 좋은 카페를 갈까?”

“뷰 좋은 카페 가는 것도 좋겠다! 모든 좋아!”

“그럼 @@ 저수지 근처 카페나 ##호수 근처 카페면 어때?”

“그럼 ##호수 근처 카페 가자”

“좋아! “

이래저래 대화하면서 우리의 공통 취향인 곳을 발견하여 우리는 ##호수 근처 카페로 가기로 했다. 고층에 있는 그 카페는 ##호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이 멋진 카페다. 뷰 좋은 카페는 사람들이 많을 만도 한데 다른 층에 한 카페가 더 생겨서 그런지 한적하면서 뷰도 좋은 카페였다.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는 배경음악이 해외로 여행 갔을 때 마사지샵에서 많이 듣던 노래가 흘러나오는 데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카페가 크게 시끄러워지지 않는다. 자리를 잡고 주문한 뒤 사진을 찍는 컴퓨터도 있어서 사진도 찍고 카페의 뷰를 만끽했다. 창문 가까이 가면 조금 무섭기도 한데 자리에 앉아 평온한 배경음악을 들으며 호수를 바라보면 편안하다.

주문한 음료와 크로플이 나왔다. 나는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탠저린블랙을 시켜보았다. 에스프레소에 물 대신 100% 오렌지 과즙을 넣은 음료인듯했다.(가게의 설명에 따르면 물도 들어갔을 수도 있는데 내가 맛본 느낌은 그랬다.) 상큼한 맛과 커피의 씁쓸한 맛의 조화가 생각보다 좋았다. F가 정말 탠저린블랙을 시킬 거냐며 걱정했는데, 성공적인 도전이었다.(나는 맛보지 못한 메뉴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크로플도 바삭바삭하고 크림과 무화과, 아이스크림의 조화가 잘 어우러졌다. 행복하다.

꼬막 정식에 크로플과 음료까지 배가 부른 우리는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한 바퀴는 정말 길어 보여서 잘 도전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먹은 만큼 움직이려면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에 서로 동의했다. 날씨도 생각보다 따뜻하고 호수를 걷기에 좋았다. 혼자 돌 때는 물론, 다른 친구들과도 엄두를 못 내 본 일이었는데 오늘 많이 먹은 덕분에(?) 도전할 수 있었다.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서로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호수를 도니 한 바퀴를 도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한 바퀴 돌고 우리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호수 한 바퀴면 만 보정도는 거뜬히 넘길 줄 알았는데 5~6000보 정도였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면 돌 수 있었다. 돌기전엔 거대해 보였던 호수공원이 생각보단 작구나(생각보다 작은 것이지 그래도 크긴 하다.)라고 느꼈다. 우리 모두 호수공원 한 바퀴를 정복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오늘 우리의 모임은 점심 장소도 즉흥적으로 바뀌었고, 카페도 산책도 그전 장소에서 즉흥적으로 의견을 모아 결정되었지만, 정말 완벽한 하루였다. 즉흥적이고 완벽한 것 짜릿하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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