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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 빨간 쿼카 Jan 08. 2024

볼 빨간 쿼카의 병가일지

EP.25- 도돌이와 함께

어제 친구 H와 통화를 하다가 내일 집에 놀러 가고 싶어지면 놀러 가도 되는지 물어봤다. H는 흔쾌히 그러라고 답했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확정하여 연락하겠다고 했다. H는 현재 출산휴가 중이다. H의 뱃속에서 자라던 도돌이는 우연히도 H의 생일과 같은 날에 태어났다. H의 생일 선물을 직접 갖다 줄 일이 생겨서 집에 방문했을 때 채 20일도 되지 않은 도돌이를 만났었다. 그땐 정말 작아서 안는 것도 무서웠다. 신생아 때는 목을 특히나 못 가누니 목을 잘 바쳐주고 앉아야 하는데! 잘하고 있는 건지 혹시 내가 이 작은 몸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아기들의 모습은 봐도 봐도 신비하다.

이번주는 날이 갈수록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 오늘은 피아노 연습을 할 수 있는 날인데도 준비가 늦어져 가기 애매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H에게 연락했다

"H, 점심 몇 시에 먹어?"

"비밀이야."

"뭐? 나 운동하고 12시 30분에 병원 갔다가 집에 놀러 가도 돼?"

"뭐야 그럴 땐 ~시에 같이 점심 먹을래?라고 물어야지 바보야."

"아니, 점심 이미 먹었을 시간이면 후식 같이 먹으려고 했지."

"같이 점심 먹자. 그때 와-"

"응응, 병원 진료 끝나고 출발할 때 연락할게.

그렇게 오늘 오후일정은 H의 집에 놀러 가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다음 주에는 출산휴가가 끝나고 복귀하는 H이기에 그전에 얼굴을 보고 싶기도 했다.

아침 피아노 연습은 못 가고 오전 요가 후, 병원진료 전까지 피아노 연습을 30분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선생님하고 이번주의 긴장감과 분노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내가 참을성이 없어지는 걸까.. 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그것은 참을성의 문제가 아니라며 나에게 필요해서 화가 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잘 회복하고 있었는데 이번주는 좀 힘드셨겠다며 위로해주시기도 했다. 그래도 병가를 내고 몸이든 마음이든 건강하게 지내기 위해 노력해서 그런지, 어제 위원회에서 마주했을 때도 구토감이나 가슴 답답함의 반응까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그의 태도에 기가차고 화가 났을 뿐. 거짓말을 하면서 그것을 정말 사실이라고 믿는 것 같아 소름이 돋기도 했다. 조금 단단해지기는 했나 보다. 진료를 마치고 약을 받고 다음 예약을 잡는다.

H에게 이제 출발한다고, 30분 정도 걸릴 거라고 이야기한다. 몇 번 가본 H의 집이지만 아직도 가는 길은 좀 낯설다. 조금은 긴장된 상태로 H의 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휴, 아무 생각 없이 몸이 가는 대로 가서 H의 집을 호출한다.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음? 내가 호출한 H의 집이 없다. H의 집이 있어야 할 라인이 아니다. 뭐지…? 어떻게 호출이 된 걸까? 하며 내려와 다시 맞는 라인을 찾아간다. 나의 나사 빠진 행동에 다시 한번 헛웃음을 지으며 H의 집을 다시 한번 호출한다. 드디어 H의 집에 도착했다. H가 의아해하며 물어본다.

“아까 지하주차장에서 호출했지 않았어?”

“나 제대로 호출한 거 맞지? 근데 다른 라인에서 호출해서 거기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어.”

“으이그으-”

“나는 내가 다른 호수 누른 줄 알았는데, 다른 라인에서도 호출이 되는 거였다면 그래도 좀 다행이야.”

라며 뭐가 다행일지 모르는 말을 하며 H에 집에 앉는다. 아직 100일이 안 된 도돌이는 잠을 자고 있다. 20일도 안 됐을 때 만난 도돌이보다 엄청 성장했다.

“우와, 도돌이 못 본 사이에 엄청 컸네! 두 배는 큰 거 같아”

“우리가 봤을 때가 언제였지? 그때보다 두 배는 넘게 컸을걸? “

아기의 성장속도에 놀라워하며 도돌이가 자는 동안 우리는 H표 쌀국수를 점심으로 먹는다. 시켜 먹을까 했는데 H가 집에 유명한 쌀국수 라면이 한 박스 있다며 해 먹자고 제안했다. 나는 숙주 사가기 담당을 맡았다. 어떤 쌀국수길래 한 박스씩 쟁여두는 건가 했는데 그럴만한 맛이었다. 숙주에 우삼겹까지 얹어 먹으니 사 먹는 쌀국수와 다를 바가 없었다. 좋은 쌀국수라면 정보를 알게 되었다. 쌀국수를 맛있게 먹고 과자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4시쯤 됐을까 도돌이가 깼다. H가 도돌이 입가에 손대면 입을 그쪽으로 움직이는 걸로 봐서는 배가 고파 깬듯했다. H가 도돌이의 밥을 준비하는 동안은 쪽쪽이를 주었는데,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는데 진정되는 도돌이의 모습을 보니 왠지 웃겼다.  오랜만에 본 도돌이에게 밥도 먹여보았다. 열심히 먹는 도돌이의 모습에 바라보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반달 트레이너와 비슷하다. 귀여운 생명체들.ㅎ.ㅎ.

도돌이가 밥을 다 먹으니 어린이집에 갔던 도돌이 누나들이 온다. 도돌이를 안고 밥 먹이고 트림 시킬 때 정말 많이 컸다고 생각했는데, 누나들은 이제 스스로 옷정리를 하고 손을 씻는 등의 기초 습관이 형성되어 있다. 누나들도 도돌이 같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참 신비하다. H의 남편이 오기 전까지 머물러 있으며 첫째와 둘째끼리 소통하며 거실로 캠핑(H가 나중에 치우기 힘들지 않겠냐고 말하자, 첫째가 캠핑 나온 거라며 다 정리할 수 있다고 했다 ㅎㅎ)을 나와 노는 모습,  연말 공연을 집에서도 열심히 준비하는 첫째의 모습(처음에는 그냥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알라딘 공연을 연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H가 말하던 아이들 저녁먹이기 힘들다는 장면도 실제로 보며 육아하는 가족들의 대단함을 새삼 다시 한번 느꼈다. 나의 어릴 적은 어땠는지 생각해 보지만, 기억은 안 난다. 우리끼리만 놀 때면 아직 우리는 같이 입사했던 그때와 똑같은 것 같은데, 아이들과 함께 있는 H를 보면 또 새롭다. 같은 근무지에서 보던 모습도 보일 때도 있어 추억이 생각나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니 정신없이 하루가 지났다. H와 H가족들 덕분에 오늘도 힐링하는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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