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빨간 쿼카의 병가일지

EP.5- 지갑을 다시 채우는 일이란

by 볼 빨간 쿼카

‘아니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오늘 운전면허시험장에 들어가려고 첫 발을 내딛자마자 하게 된 생각이다. 운전면허시험장은 아주 컸고, 그 큰 공간을 사람들이 채우고 있었다. 놀라서 재빨리 뽑은 번호표에 대기인은 130명, 현재 민원처리하는 사람은 690번인데 나는 820번이다. 꺄. 물어보는 사람이 많은지 친절하게 대기시간도 쓰여있다. 대기인원 100명 당 예상대기시간 1시간. 아득한 시간에 주변을 좀 산책해 보기로 하고 다시 시험장을 나섰다.

내가 운전면허시험장에 방문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자면 7일 전,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대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날 하루에 만보를 채우지 못한 나는 집 앞 공원을 산책하려고 짐을 챙겼다. 날씨가 꽤 추워졌기에 경량패딩과 바람막이를 입고 주머니에 핸드폰과 지갑을 넣었다. 공원을 돌다 보니 생각보다 따뜻했고 바람막이를 벗어 팔에 건 채 산책을 했다. 그러다 허리에 매기도 했고 그게 불편하여 풀어 어깨에 걸치기도 했다. 그때였을까. 지갑이 떨어진 때가? 도통 기억을 꺼내봐도 그때 말고는 짐작되는 때가 없다. 지갑이 없다고 인지한 것은 다음날 10시, 동료의 결혼식에 가야 해서 가방을 챙기는데 아무리 봐도 지갑이 없다. 어제 입었던 바람막이 주머니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없다. 10여분을 더 찾아봐도 없다. 이러다 결혼식에 늦을 것 같다. 우선 다른 동료에게 축의금 인출을 부탁하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이후 여유시간에 내 지갑이 떨어져 있진 않을까 하며 다시 공원을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거닐었는데 두 바퀴를 돌아도 없었다. 다음날도 돌아봐도 없다. 집도 찾아봐도 없다. 길게 설명했지만, 간단하다. 지갑을 잃어버렸고, 그 안에 있던 운전면허증도 잃어버려서 재발급받으러 운전면허시험장에 왔다.

잠시 의식의 흐름에 따라 나는 왜 하루에 만보를 걷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싶다.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닌 이후로 점점 떨어지는 체력이 걱정되었던 나는 한의원도 가보고, 한약도 먹어보며 노력하고 있었다.(지금도 노력 중이다.) 사실 의사 선생님이 진작에 걷기 운동을 최소 30~40분은 하라고 이야기하셨지만, 만사가 귀찮았던 쿼카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한약으로 조금 보충되는 체력에 만족하며 상반기를 버텼다. 그런데 하반기가 되니 기존의 정신과약이 효과가 없고 두통과 구토감이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상반기보다 증상이 심해졌다. 이대로 가만히 두다간 우울감이 나를 잠식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수업이 없는 날(전담교사는 정해진 교과 시수만큼 수업하기 때문에 수업이 조정되면 가끔 그런 날이 생긴다.)에 교장선생님에게 요청하여 병가를 내고 템플스테이를 떠났다. 경북 예천에 있는 ‘용문사’, 그곳에서 나를 괴롭히던 것들에서 한 발 떨어져 자연을 느끼는 경험은 너무 황홀했다. 또한, 처음 해 본 108배는 내 머릿속을 깨끗이 비워주었다. 한 가지를 108번이나 되뇌면 말로 내뱉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나 보다. 그때 108배에서 되뇌었던 말은 ‘그에 대해 화가 나는 마음을 진정하게 해 달라.’였다. 108배의 효과가 한 일주일정도는 갔던 것 같다. 아닌가 그랑 마주칠 일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정말 하찮은 그가 이렇게 내 일상에 침투해 분노를 유발하는 것이 또 화나는 포인트다. 누군가는 뭐 그렇게 신경 쓰냐고 하지만, 내가 무시할 수 있었다면 무시했지 내 몸이 아픈 길을 택했을까?라고 되묻고 싶다.) 108배를 처음 해 본 이후, 몸을 움직이는 것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루 최소활동량을 정하기로 했다. 하루에 만보. 나갈 수 없어서 만 보를 채우지 못할 때는 108배하기. 이렇게 최소 활동량을 정해두고 움직이니 평소보다 좀 더 많이 움직이게 되었다. 그리고 EP.1에서도 나왔지만 요즘은 늘어지거나 분노, 우울감이 올라올 땐 산책이나 다른 몸을 쓰는 행동을 해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EP.1에서 분노가 올라와 바로 산책을 나가 전환시켰다.)

무튼, 왜 운전면허증을 재발급받으러 일주일에 왔냐면 ’세상은 아직 따뜻할거야.‘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의 지갑은 현금이 많지도(붕어빵을 좋아해서 혹시나 붕어빵노점을 발견하면 쓰려고 넣어놓은 작고 소중한 현금이 다다.ㅠㅜ), 그렇다고 다른 쓸모가 있거나 명품도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 우체통에 넣어주거나 공원 사무실이나 경비실에 맡겨주시지 않았을까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 내 우편함의 나의 지갑이 ’짠‘하고 들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카드도 분실신고만 해놓고 이번주를 기다려보았다. 매일 우편함을 확인했는데 아쉽게도 없었다. 계속 기다릴 순 없어서 카드들도 재발급 신청하고, 운전면허증을 재발급받으러 갔다. 다행히(?) 예전에 지나가던 소품샾에서 보고 반해 충동구매한 지갑을 아직 개시하지 않아 그 지갑이 새 지갑이 되었다. 지금은 빨리 나온 카드 하나, 운전면허증 하나가 들어있다.

병가 시작한 김에 새로 시작하라는 지갑의 배려였을까.(그런 배려 필요 없어….) 병가 5일 차인 나는 4일 동안 지갑 없이 지내다가 새로운 지갑을 사용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던 카페들의 쿠폰을, 제주도에서의 추억이 담긴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 아쉽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이김에 쓰던 카드 중 몇 개를 정리하고 다른 카드로 바꿔서 신청했다. 운전면허증도 국문면허만 있었는데 영문면허증도 뒷면에 추가했다. 지갑도, 지갑 안도 달라졌다. 지갑을 다시 채우는 일은 어렵다. 다시 시작하는 거라 잘 채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영향을 준다. 나의 병가도 그렇다. 병가기간은 좋은 것만 채워주고 싶다. 뭐 그럴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지금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알겠지만 말이다. 나는 깊이 생각하고 계획하기보단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이라 더 깊은 고민은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일단, 그냥 채워보자. 지갑도, 나의 시간도.


p.s 다 재발급받았지만 그래도 지갑이 돌아오면 좋겠다. 동백지갑, I mi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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