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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Nov 18. 2019

이혼가정 애는 티가 나나요?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아이 티가 나는군요, 라는 말의 함정.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한 번쯤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왜 저렇게 가난한데 아이는 줄줄 나아서 아이들 고생을 시킬까? 이런. 생각해 보면 자식에게 생명을 준다는 게, 생존을 위한 크나큰 숙제를 주는 건 아닌가 싶다. 내가, 가난한 나라의 엄마들을 보며 왜 저렇게 자식에게 무책임한 못할 짓을 할까 했다면, 나를 보고 누군가는, 결손 가정을 만들 거면서  애는 둘이나 낳았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딸애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이다. 학교에서 크리스마스라고 담임 선생님이 과자 선물을 주셨다고 한다. 아이들은 모두 신이 났겠지.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 애와 다른 두 명을 앞으로 불렀고 아주 큰 과자 상자를 선물로 주셨다고 한다. 그 세 아이는 모두 이혼 가정 아이들.


남들보다 큰 과자 상자를 선물로 받았으니 기뻐해야 하고, 다른 다이들은 부러워해야 하는 데 아무도 부러워한 아이도 없었다고 한다. 딸애는 그 '특별한 선물'을 받은 걸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할머니 집 장롱에 넣어 두었다고 한다.


아이 친구 중에 아주 명랑하고 싹싹한 애가 있다. 어른에게도 참 싹싹해서 이쁨을 받는 아이이다. 그 아이는 새엄마있어서 늘 새엄마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고 한다. 그 아이가 자기의 가정환경을 얘기하면 모두 놀란단다. 놀라면서 하는 말이 "사랑을 아주 많이 받고 자란 아이 같았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는 자라면서 엄마의 사랑이 냉랭해질세라, 늘 밝게, 싹싹하게 재롱을 떠는 게 몸에 배었다고 한다. 어린아이의 사랑에 대한 눈물겨운 갈구가 지금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티'로 보인다는 게 아이러니인 것이다.


딸아이는 사춘기를 아주 지독하게 겪었다. 딸아이가 교복을 숨도 못 쉬게 줄여 입고 가방엔 화장품 파우치만 넣고 다닐 때, 내 심정은 이혼할 때 보다 더 막막했다. 이혼하면 우리 아이들이 늦게까지 일하는 엄마를 위해 간식을 준비하고 숙제를 하면서 엄마를 기다리는 그런 풍경을 만들 줄 알았다. 아들이나 딸이나 사춘기 때는 호르몬이 시키는 대로 몬스터 짓을 했다.


딸애는 수업시간에 늘 엎드려 자는 아이였지만, 딸에게 너는 특별한 아이라고 말 했었다. 어떤 날라리 아이가 책을 읽고 일기를 쓰겠냐? 독서하고 일기를 매일 쓰는 날라리, 그런 아이는 너밖에 없다고 항상 말해 주었었다. 딸애가 대학을 가서 한 얘기가 있다.


 "엄마, 엄마가 맨날 나에게 특별하다고 해서 진짜 특별한 줄 알았어. 근데 특별하지 않은 걸 발견하면 어, 나 우리 엄마가 특별하다고 했는데 왜 난 이런 것도 못하지? 이래." 그러면서 잠깐 낙심을 했다가 금방 마음에 새 힘이 솟는다고 한다. 그 누가 옆에서 비난이나 불쌍한 취급을 하며 끌어내리려 해도, 마음 탄성이 좋아 금방 올라 붙는 걸 느낀단다.


딸아이 중학교 때 일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좀 우울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사연인즉슨, 친구  한 명의 부모님이 이혼을 할 것 같다고 걱정을 하더란다. 그랬더니 다른 아이들이 그 친구를 위로하며 하는 말이,

"ㅇㅇ야 괜찮아. 률(우리딸)이를 봐. 부모님이 이혼했어도 명랑하잖아.률이를 보면 부모님이 이혼했다고 누가 알겠어." 하더란다.


딸아이는, 누군가의 위로에서 자기가 비교대상이 되었다는 게 놀라웠다고 한다. 자기의 부모님이 이혼을 했음에도, 명랑한 아이, 티가 안나는 아이라는 평을 듣고 좋아야 할지 우울해야 할지 묘하더란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엄마, 웃긴 얘기 해주까? 부모님이 이혼할 거 같다는 친구 있지? 걔네 아빠 직업이 돈 빌려주고 이자받는 일 이래. 그 사무실 이름이 뭔지 알아? '베르사채'."

우리 둘은 심각하게 이혼 얘기를 하다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는 뭐가 고민인지도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혼한 부모는 늘 생각한다. 자식에게 미안하다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주지 못해 죄인이라고. 그러면 부모가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내가 성장기엔 부모를 미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한 인간으로 그 삶을 이해하게 되었듯이  우리 아이들도 그 과정을 거치는 듯하다.


온전히 성숙하지 못한  20대 초, 중반에 겁 없이 부모가 되었다. 저절로 모성애도 생기고 인내심도 생겨서 부모 노릇이 되는 줄 알았다. 노력과 상관없이 상처를 받기도 하고, 의도 없이 주기도 하면서 아이와 함께 성장해왔다.


이혼한 가정의 티가 나든, 사랑을 듬뿍 받은 티든,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을 것이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을까? 주어지는 상처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그 사람의 방식이고 성향이고 팔자일 것이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삶의 파도를 넘으며 오는, 크고 작은 상처들은  지나면 반드시 상이 기다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큰 파도를 넘으면 더 큰 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명심하면 지금의 파도가 좀 덜 힘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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