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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Nov 19. 2019

비오는 날 우산 대신 양산을 준 엄마

아이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려면.


어느 날 딸애가 말했다. 자기 친구 엄마는 항상 예쁜 앞치마를 입고 친구가 공부를 하고 있으면 간식을 들고 온다고. 그 친구가 너무 부럽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그 친구 아빠는 뭐하셔?" 치과의사라 했다. 나는 다시 목소리 톤을 높여 말했다. "넌 그 친구가 부럽지? 엄마는 그 친구 엄마가 진짜 부럽다. 좋겠다, 그 엄마는. 그치?" 했더니, 딸은 무슨 엄마가 이렇냐고, 엄마라면 미안하다며 위로하고 따뜻한 말을 해 줘야 하지 않냐고 했다.


나는 항상 주어진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려고 애를 썼다. 나부터 심각하지 않고 가볍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아이들도 열등감을 키우지 않는 길이라 여겼다. 그래서 늘 애들이 나에게, 엄마는 좀 특이하다고, 다른 엄마처럼 좀 해 보라는 말을 하곤 했다.


일단 요리부터 좀 다르게 했다. 실험정신으로 요리를 창작해 내면, 아들이 묻는다. "엄마, 이런 요리 있어? 엄마가 지어낸 거야?" "그냥 좀 먹어봐, 더 달라고 할 걸." 그러면 서로 먼저 먹어 보라고 미룬다. 가끔은 성공을 하고, 대부분은 아이들은 안 먹고 내 혼자 다 먹어야 했다.


요리는 아이들과 쉽게 할 수 있는 창의적 놀이였다. 된장찌게에 브로콜리를 넣는다거나 고구마를 넣는건 먹을만 함.  쌀가루로 찜기에  쪄서 떡 간식을 자주 만들었다. 설탕을 쓰기 싫어 바나나를 넣은건 실패. 어찌나 미끄덩거리던지. 김치에 설탕대신 홍시를 넣은 건 아이들이 그래도 참을만 하다고 해줌. 아이들과 요리를 발명하는 건 창의성 교육을 위한 깊은 뜻이 있었건만 아이들은 엄마의 요리는 이상하다고 잔을 주었다. 지금은 아이들 둘다 네이버에 검색을해서 요리를 한다. 시집보낸 엄마에게 김치라도 담아 줄 손맛을 낸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그림과 글쓰기를 좋아했다. 글쓰기는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면서도 아이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아들 페북을 들락거렸다. 글이 어찌나 오글거리는지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느 날은 페북에  사진을 하나 올렸다. 담배를 끊는다고 사탕을 잔뜩 먹고는 사탕 봉지가 독서실 책상 모퉁이에 수북한 사진이었다.


 나는, 그 사탕봉지 수북한  사진과 담배를 끊겠다고 호기롭게 쓴 글이 귀여웠다. 전남편은 아들이 담배를 핀다는 걸 수능이 끝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아들이 수능 끝났다고 기고만장해서는 아빠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켰단다. "아빠, 들어올 때 담배 좀 사 와."


딸이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이다. 비가 오는 날 아침, 우산을 찾아보니 하나는 양산, 하나는 우산이었다. 아들에게 우산을 들려 보내고 딸에게 꽃무늬 양산을 들려 보냈다. 딸애는 양산을 어떻게 쓰냐고 싫다는 걸 달래서 그냥 보냈다. 비가 좀 줄어들 줄 알았는데 빗발이 거세져서 학교에 도착할 때쯤엔 흠뻑 젖었다고 한다. 딸애는 그 얘길 두고두고 하면서 한 맺혀했다. 엄마는 엄마답지 않다고.


급기야 딸애는 그 한을 노래로 만들어 풀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곡이 <우산 대신 양산>이다. 딸애가 취미로 노래를 만들고 녹음을 한다. 친구들한테 들려주기도 하지만 언제나 엄마인 나에게 먼저 보낸다. 엄마만이 노래를 자세히 듣고 피드백을 주니까. 두고두고 아껴 듣는다. 가끔은 가내 수공업으로 뮤비를 만들어 유튜브에 저장을 해 놓는다.


이곡을 친구들에게 들려준 적이 있다. 한 친구가 어떡하면 딸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엄마가 되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 딸내미 여섯 살에 이혼을 하고, 우산을 사 주지 말아야 돼." 그 친구 왈, "에이, 너무 늦었다."


며칠 전 새벽까지 딸과 옛날 얘기를 했다. 웃다가 울다가 아주 목이 쉴 지경이었다. 딸이  그랬다. 엄마가 이혼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아서, 자기도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면서 남 눈치를 봤는데 지금은 그런 게 완전히 없어졌다고. 지금 딸이 그때의 내 나이가 거의 다 되었다. 딸은 나에게 그 세월을 어떻게 지나왔나 싶어, 엄마가 눈물겹다는 대목에서 또 붙잡고 울었다.




우산 대신 양산-by 률 (내가 딸 자작곡 저장용으로 대충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 거라 소리나 편집이 초딩보다 못 함)

https://youtu.be/eMaChVG8eYA



https://brunch.co.kr/@red7h2k/16

https://brunch.co.kr/@red7h2k/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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