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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우산 대신 양산을 준 엄마

아이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려면.

by 다녕


어느 날 딸애가 말했다. 자기 친구 엄마는 항상 예쁜 앞치마를 입고 친구가 공부를 하고 있으면 간식을 들고 온다고. 그 친구가 너무 부럽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그 친구 아빠는 뭐하셔?" 치과의사라 했다. 나는 다시 목소리 톤을 높여 말했다. "넌 그 친구가 부럽지? 엄마는 그 친구 엄마가 진짜 부럽다. 좋겠다, 그 엄마는. 그치?" 했더니, 딸은 무슨 엄마가 이렇냐고, 엄마라면 미안하다며 위로하고 따뜻한 말을 해 줘야 하지 않냐고 했다.


나는 항상 주어진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려고 애를 썼다. 나부터 심각하지 않고 가볍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아이들도 열등감을 키우지 않는 길이라 여겼다. 그래서 늘 애들이 나에게, 엄마는 좀 특이하다고, 다른 엄마처럼 좀 해 보라는 말을 하곤 했다.


일단 요리부터 좀 다르게 했다. 실험정신으로 요리를 창작해 내면, 아들이 묻는다. "엄마, 이런 요리 있어? 엄마가 지어낸 거야?" "그냥 좀 먹어봐, 더 달라고 할 걸." 그러면 서로 먼저 먹어 보라고 미룬다. 가끔은 성공을 하고, 대부분은 아이들은 안 먹고 내 혼자 다 먹어야 했다.


요리는 아이들과 쉽게 할 수 있는 창의적 놀이였다. 된장찌게에 브로콜리를 넣는다거나 고구마를 넣는건 먹을만 함. 쌀가루로 찜기에 쪄서 떡 간식을 자주 만들었다. 설탕을 쓰기 싫어 바나나를 넣은건 실패. 어찌나 미끄덩거리던지. 김치에 설탕대신 홍시를 넣은 건 아이들이 그래도 참을만 하다고 해줌. 아이들과 요리를 발명하는 건 창의성 교육을 위한 깊은 뜻이 있었건만 아이들은 엄마의 요리는 이상하다고 핀잔을 주었다. 지금은 아이들 둘다 네이버에 검색을해서 요리를 한다. 시집보낸 엄마에게 김치라도 담아 줄 손맛을 낸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그림과 글쓰기를 좋아했다. 글쓰기는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면서도 아이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아들 페북을 들락거렸다. 글이 어찌나 오글거리는지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느 날은 페북에 사진을 하나 올렸다. 담배를 끊는다고 사탕을 잔뜩 먹고는 사탕 봉지가 독서실 책상 모퉁이에 수북한 사진이었다.


나는, 사탕봉지 수북한 사진과 담배를 끊겠다고 호기롭게 쓴 글이 귀여웠다. 전남편은 아들이 담배를 핀다는 걸 수능이 끝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아들이 수능 끝났다고 기고만장해서는 아빠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켰단다. "아빠, 들어올 때 담배 좀 사 와."


딸이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이다. 비가 오는 날 아침, 우산을 찾아보니 하나는 양산, 하나는 우산이었다. 아들에게 우산을 들려 보내고 딸에게 꽃무늬 양산을 들려 보냈다. 딸애는 양산을 어떻게 쓰냐고 싫다는 걸 달래서 그냥 보냈다. 비가 좀 줄어들 줄 알았는데 빗발이 거세져서 학교에 도착할 때쯤엔 흠뻑 젖었다고 한다. 딸애는 그 얘길 두고두고 하면서 한 맺혀했다. 엄마는 엄마답지 않다고.


급기야 딸애는 그 한을 노래로 만들어 풀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곡이 <우산 대신 양산>이다. 딸애가 취미로 노래를 만들고 녹음을 한다. 친구들한테 들려주기도 하지만 언제나 엄마인 나에게 먼저 보낸다. 엄마만이 노래를 자세히 듣고 피드백을 주니까. 두고두고 아껴 듣는다. 가끔은 가내 수공업으로 뮤비를 만들어 유튜브에 저장을 해 놓는다.


이곡을 친구들에게 들려준 적이 있다. 한 친구가 어떡하면 딸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엄마가 되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 딸내미 여섯 살에 이혼을 하고, 우산을 사 주지 말아야 돼." 그 친구 왈, "에이, 너무 늦었다."


며칠 전 새벽까지 딸과 옛날 얘기를 했다. 웃다가 울다가 아주 목이 쉴 지경이었다. 딸이 그랬다. 엄마가 이혼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아서, 자기도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면서 남 눈치를 봤는데 지금은 그런 게 완전히 없어졌다고. 지금 딸이 그때의 내 나이가 거의 다 되었다. 딸은 나에게 그 세월을 어떻게 지나왔나 싶어, 엄마가 눈물겹다는 대목에서 또 붙잡고 울었다.




우산 대신 양산-by 률 (내가 딸 자작곡 저장용으로 대충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 거라 소리나 편집이 초딩보다 못 함)

https://youtu.be/eMaChVG8eYA



https://brunch.co.kr/@red7h2k/16

https://brunch.co.kr/@red7h2k/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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