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녕 Nov 27. 2019

한부모 가정은 가족신문에 웁니다.

신학기마다 가족신문을 만들어 내라하니,

학년이 바뀌거나 학기가 바뀌면 한부모 가정에는 성가신 일이 많다. 학부모 상담을 가는 일과 가족신문이 그렇다. 가끔 아이가 학급 반장이라도 되면 더 성가시다. 다른 엄마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일에 적극적인 엄마들과 어울리기 힘든 싱글맘은 아이의 반장 당선도 불편하다. 이런 자잘한 일은 엄마도 아이도 은근  주눅들했다.


가족신문을 만들려면 가족 사진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7살, 6살때 이혼을 했던지라 사진이 나이에서 멈췄다. 그나마 있는 사진도 집에서 노는 장면이라 잠옷 바람인 아빠와 아기 모습이었다. 그걸 신학기 마다 꺼내서 오리고 붙여 가족신문만들었다.


학년이 높아지니, 아기때 사진가지고는 안되었다. 최근 사진이 필요했다. 전남편에게 가족사진을 위해 등산을 가자고 했다. 행복한 가정 연출을 해서, 자연스러운 사진을 잔뜩 찍어야 했다. 애들 아빠와 토요일에 만나 아이들과 근처 산으로 갔다. 가는 길에 전남편의 지인을 마주쳤다. 전남편은 굳이 차문 유리를 내려 인사를 했다. 전남편도 그 주변 사람에게 화목가정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등산을 하며 산의 초입부터 사진을 찍어대고, 정상에서는 단체사진도 잔뜩 찍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아주 신나했다. 그 때 찍은 사진으로 초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가족신문을 만들었다. 사진을 여러장 인화를 해서 아주 쟁여 놓고, 가족신문, 나중에는 독서 신문이라는 걸 만들기도 했는데,때마다 철마다 유용하게 잘 사용했다.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 근처 온천 목욕탕을 갔다. 전남편 가족이 온천을 좋아해서 자주 갔는데 딸은 늘 할머니와 목욕을 가는게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같이 온천으로 향했다. 커다란 온천 주차장에서 주차 할 곳을 찾다가 애들 삼촌 차를 발견. 삼촌이 애들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온천을 온 것이다. 나는 이혼한 전 시어머니와 목욕탕에서 마주치게 생긴 상황이다.


순간 망설였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 여겨, 들어가자고 했더니, 전남편이 싫다고 했다. 아마도 가족들이 재결합을 늘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 기대를 할까봐 싫다고 한 것 같았다.


 전남편과 나는 차로 30분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고, 주말이면 항상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번갈아가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애들 할머니 입장에서는 당신아들이 별거쯤 하는 걸로 여겼다. 며느리가 화가나서 잠시 당신아들에게 혼을 내고 있고, 당신아들은 반성을 충분히 했으니 이제 그만하고 애들아빠와 합쳐라. 이런 입장이었다.


전남편도 비슷했다. 내가 애들에게 거의 집착적인 모습을 보이니, 그걸 잘 이용하면 나를 다시 며느리로 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잠시 구석에서 손을 들고 벌을 서고 있지만 뭘 잘 못 한 줄도 모르는 아이의 입장이었다. 시간만 떼우면 손을 내리라 하고, 토닥토닥이라도 해 줄거라 믿는 눈치였다.


전남편은 가족의 기대는 알지만, 나의 태도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괜한 기대감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온천에서 나와 식당으로 갔다. 아이들에게 전남편은, 왜 온천에서 그냥 나왔는지를 주절 주절 설명을 했다. 식당에 앉아 밥을 기다는데 식당벽에 큰 서예작품 족자가 걸려 있었다. 한자로 잘난 척 하기 좋아하는 전남편은 서예작품 내용을 설명하면서 애들과 나에게 훈장질을 하기 시작했다. 식당 옆 테이블의 다른 손님도 들어 주길 바라면서, 그 쪽도 듣고 있는지 슬쩍 슬쩍 살피는게 보였다.


아이들도 명심보감 구절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아빠가 민망했나 보다. 아들이 내 눈치를 살피며, " 엄마, 아빠가 한자를 많이 알잖아. 엄마가 좀 참아." 이런다.


 나는 참고 들었어야 는데, 발끈해서 한마디 뱉었다. "아빠는 저렇게 좋은 문장을 해석은 할 줄 알아도 실천은 안해. 알면 뭐해? 그냥 아는 척 하는 용도인데." 했다.  


전남편 울그락 불그락. 아들이 옆에서 아빠를 위로한다. "아빠, 엄마가 좀 직설적으로 말해도 좀 참아. 엄마가 애들교육은 잘 시키잖아."


전남편은 아들의 엄마역성에 발끈. 엄마가 너희를 위해서 한게 뭐가 있냐며, 교육을 잘시킨게 뭐가 있냐고 난리 난리. 난 식당이라, 부끄러워 그냥 참고 넘겼다. 하지만 난 내 '승'이라고 뿌듯해 했다. 어린 아들 눈에도 아빠의 허세가 보였고, 엄마의 교육이 좀 다르다는 걸 알아줬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영리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비록 연출 된 행복사진으로 가족 신문을 만들지언정.




풀은 풀색, 진달래는 진달래 색, 너는 너의 색으로 맘껏 피어나렴.



https://brunch.co.kr/@red7h2k/16

https://brunch.co.kr/@red7h2k/7


작가의 이전글 내가 먼저 이혼, 재혼을 말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