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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Nov 26. 2019

내가 먼저 이혼, 재혼을 말하는 이유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사만다가 연설 도중 가발을 벗어던진 이유와 같음

섹스 앤 더 시티에는 구구 절절 명대사가 많다. 볼 때마다 엉뚱한 포인트에 눈물을 흘려 현 남편은 옆에서 놀린다. 시즌 6에서 사만다는 유방암에 걸린다. 사만다는 자신의 문란한 성생활이 암을 초래한 건 아닌가 죄책감을 느낀다. 유명한 암 전문의를 찾아가 예약을 펑크 낸 빈자리를 기다리며 옆에 앉은 수녀님과 얘기를 나눈다. 수녀님은 성 경험이 한 번도 없다는 걸 알고, 암이 자신의 성생활 때문이 아니라고 안심을 한다. 독립적이고 자기 주도적 연애를 하는 사만다의 귀여운 모습이었다.


사만다의 연하 연인 스미스는, 항암 치료를 받느라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는 사만다를 보게 된다. 사만다는 목욕탕에서 머리를 밀다가 갑자기 들어온 스미스를 보고 깜짝 놀란다. 스미스는 사만다의 면도기를 뺏아 자기 머리를 밀어 버리는 명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린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귀에 '함께 맞는 비'라는 구절이 있다. 우산을 씌워 주는 게 위안이 아니라, 비를 함께 맞아 주는 것이 위로라는 의미. 스미스는 머리를 미는 연인에게, 자기의 머리도 미는 방법으로 함께 비를 맞아 준 것이다.




from pinterest



사만다가 항암 치료를 받고 머리가 다 빠져 가발을 쓰는 생활을 한다. 가발을 쓰고 모자를 쓰면 자연스럽기 때문에 더위를 감수하고 가발에 모자까지 쓴다. 사만다는 유방암 환자를 위한 후원금 파티에서 연설을 하게 된다. 연설문을 쓴 후, 문구를 스미스에게 괜찮냐고 물어본다. 너무나 모범생적인 연설문에 스미스는 평소의 너 답지 않다는 평을 해 준다.


연설을 하는 날, 단상에 선 사만다는 조명과 가발의 열기에 땀을 줄줄 흘린다. 자기가 쓴 자기 답지 않은 연설문을 읽는데, 청중은 지루해하며 공감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 열기를 못 참은 사만다는 가발을 벗어던지며, "퍼킨 핫" 하고는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사만다가 가발을 벗어던지자 청중석의 암환자들이 하나 둘 가발을 벗어던지기 시작한다. 가발을 벗어던진 암 환자들과 연인 스미스의 기립 박수를 받는다. 이 장면에서 나는 펑펑 운다. 사만다의, 자기 다운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는 메시지가 좋고, 가발을 벗어던지며 함께 공감하고 연대하는 모습이 매번 나를 울린다.


" fuckin' hot " samantha said.-from pinterest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내가 먼저 이혼과 재혼을 얘기한다. 현 남편이 외국인이고 고향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으니 궁금증을 많이 가진다. 빨리 내 입으로 얘기해야 다음 질문을 막아 버린다. 더 깊은 뜻은 이혼에 대해 좀 가볍게 여기자는 것이다. 무슨 큰 병이라도 걸린 양, 혹은 전과자라도 된 양 포장을 할 필요가 없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사만다가 가발을 벗어던진 것처럼 나를 내 생긴 대로 보여주고, 내 모습대로 인정받고 싶은 맘이다. 영화에서 사만다의 모습을 본 청중은 같이 가발을 벗어던졌다. 하지만 현실에선 반대가 많다. 내가 이혼과 재혼을 까면 상대방은 나를 위로하며 자신이 더 낫다고 나에게 인지 시키려 한다. 그런 속마음도 다 보여서 구엽게 봐줄 수 있는 베짱이 생긴 나를 기특해한다.


내가 앞서서 가발을 벗고 민머리를 내 보이는 걸 안쓰러워하다가, 나중에 살짝 위안이 되었다고 나에게 고백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내가 이혼 얘기를 하는 걸 조심스럽게 본다. 그리고 내가 받는 대접을 살핀다. 아직 먼저 찬비를 맞는 내 모습이 좋아 보이진 않나보다. 누군가는 불편해 하고 누군가는 응원한다. 속으로 만.나는 어떤 모임에서 나를 포장하면 집에 와서 혼자 속상해한다.  대단한 의협심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내 생긴 대로, 내 자존심대로 처신한다.


나를 보는, 주눅 든 싱글들은 마치 미어 캣 같다. 고개를 내밀고 분위기를 살피다, 안 되겠다 싶으면 다시 숨을 요량인 것이다. 그 마음도 충분히 헤아려진다.  다시 숨든 초원으로 나오든 본인 선택인데, 나는 먼저 나오고 싶었다. 내 딸은 남 눈치 보느라 동굴에 숨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더 신나게 푸른 초장에서 뛰어놀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다.

어디보자 이제 나가도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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