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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Nov 25. 2019

자발적 독신자를 위한 5계, 그런대로의 위안

자발적 독신이지만 왠지 타의에 의한 독신인 듯한 억울함이 생길 때.

결혼을 하지 않거나, 이혼으로 인한 자발적 독신자를 타인들은 실패자로 본다. 그 시선에 번번이 발끈하기도 힘들다. 사회 부적응자로 보는 연민의 눈은 피로하고, 자기의 남편을 넘보는 잠정적 상간녀로 보는 것은 빡치게 만든다. 그래서 만들었다. 좀 더 살만한 자발적 독신자 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5 계명 같은 것이다.


1. 경제

나 하나 밥 먹고 살 힘을 기른다는 것은 숭고한 일이라고 본다. 누구에 의존하지 않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나라에 세금도 내는 뿌듯한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식을 부양할 능력까지 갖춘다는 것은 자랑스러워할 일이다. 내가 번 돈은 나의 일기이고, 나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내 자식에게 원하던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 주는 것도, 부모님 생신 때 당당하게 밥 값을 계산하는 것도 기특한 일이다.


2. 자유연애

내가 경제적으로 자유로우면 생계형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큰 무기를 갖게 된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있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선택의 범위가 좁아지고 만날 기회조차 줄어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즐거운 건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게 절체절명의 과제도 아니, 가벼이 여길 수 있다. 단지 함께 웃을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잠깐의 연애를 해도 사랑에 목숨 거는 20대와는 다르게, 설렘 정도로도 상당한 활력을 준다는 걸 느낀다. 많은 결혼한 친구들이 부러워하면서도 경계하는 이유이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최대한 누리면 된다.


3. 절제

혼자인 생활이 길어지면 가끔 무질서한 생활패턴을 가지기 쉽다. 내가 현재는 재혼을 해서 남편이 옆에 있지만, 거의 독신자의 마인드로 산다. 가끔 드라마 마라톤을 시작하면 밤을 꼬박 새우는 경우가 있다. <나의 아저씨>를 저녁 늦게 시작했다가 날이 훤해질 때까지 멈출 수가 없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몸살이 나서 1주일간 고생을 했다. 예전과 달리 하룻밤을 새면 후유증이 일주일은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밤에 뭔가를 먹고 싶을 때, 혼자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신라면을 끊여 먹고 끅끅 거릴 때가 있다. 남편이 옆에서 왜 몸을 스스로 고문하냐고 한다. 절제가 필요하다. 자발적 독신자 생활이 생각보다 길 수도 있고 뜻 밖에 금방 끝날 수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절제는 필요하다.


4. 관용

자발적 독신자를 부러워하는 순간이 있다. 불쑥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뭔가를 배우러 좀  먼 거리로도 공부를 다닐 수 있다는 것. 많은 좋은 점이 있으니 남들의 입방아는 너그러이 관용을 베푸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명절에 가기 싫은 시월드로 파견근무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친정의 제사음식도 준비를 해야 해서 꼭 편하지만은 못했다. 명절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혼녀만 같아라' 해줘야 하는 이치인데 말이다. 전남편 집이 종갓집이었고 그 집 며느리 7년을 하고 나니, 제사 음식은 눈 감고도 할 경지가 되었다. 그 경력으로 친정 제사 음식도 뚝딱뚝딱 잘했다. 배워서 남 주는 데 잘 써먹었다.


시댁 제사에 음식을 하는 건 노예의 마인드라 화가 났는데, 친정 제사는 주인 정신이 생겨 그리 힘이 안 들었다. 남의 눈에 좀 덜 신경 쓰고 내 인생에 주인정신이 생기면 너그러워진다는 걸 배웠다. 심지어 전 남편집 제사는 남편 카드로 장을 봤고, 친정집 제사는 내 카드로 장을 봤는데도 그리 억울하지 않았다. 그것은  주인정신 덕분인 것 같았다.


5. 연대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연대의 정신을 실천하고 싶어서이다. 독신자에는 두 유형이 있다. 가끔 자신의 입장이 마치 타의에 의한 강제적 독신 인양 억울해하는 유형, 자신의 독신이 전염병이라도 되는 듯이 숨기며 은둔 모드로 들어가는 유형이 있다. 그러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이혼을 하고 애들을 키우며, 아픈 엄마를 돌보는 생활을 7년간 했다. 그 생활 동안 많은 미혼인 후배들과 친구가 되었다. 이런저런 어려움을 얘기하는 후배에게, 내 얘기를 하면 대부분은 자기 걱정은 사치라는 걸 금방 수긍한다. 그리고 약기운에 한 달은 버틴다고 했다. 한 달쯤 지나면 전화가 온다. 약기운이 떨어져서 다시 나랑 밥을 먹으며 힘을 좀 받아야 한다고.


다른 독신자들과의 연대는 내 어려움은 별거 아니라는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중 내가 젤 힘들다고 느껴지면 나는 생각했다. 내가 제일 훌륭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큰 파도 뒤에는 큰 선물이 올 거니까.


이혼으로 자발적 독신자 생활을 14년간 하게 되었고, 그 기간은 아이들을 키우는 줄 알았는데 나를 키우는 시간이었다. 나는 지금도 열라 독립적이고 웃음이 많다. 아이들의 19금 연애 상담도, 진로 상담도 해 줄 수 있는 분별력이 생겼다. 현 남편이 나를 선택한 건 독립적이고 웃겨서라고 했기 때문에, 현 남편의 사랑을 받으려면 난 계속 나답게 내 색깔을 유지해야 한다. 나를 계속 나로 살게 하는 훈련은 내 자발적 독신 기간에 배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고 나를 웃게 하는 잡기술을 연마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내 글이 조금의 달달한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



https://brunch.co.kr/@red7h2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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