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녕 Dec 04. 2019

이혼하면 꼭 원수처럼 지내야 하나?

아이들을 함께  양육하는 협력자로 지낼 순 없을까?

캐나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나는 친정 근처로 이사를 했다.  이혼 후 같은 동네에 살 때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마치고 내가 퇴근을 하기 전까지 전남편과 할머니가 돌봐주어서 큰 혼란은 없었다. 내가 3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상황이 좀 달라졌다. 사실 거리로 보면 큰 차이는 없어야 마땅한데 전남편의 마음에 있어서 진짜 이혼이 시작된 것이다.


 학원과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경제적 자립이 어느 정도 되었고 살 집도 구했다. 아이들을 데려 오겠다고 전남편과 무수히 싸웠다. 주말마다 나는 학교 앞으로 가서 애들을 데려왔고 일요일 저녁이면 전남편 집으로 데려다주는 생활을 2년이나 했다. 아이들이 학교도 가기 전에 이혼을 해서 큰 애가 5학년이 되어 있었다.


전남편은 자기 부모와 살았고, 거기서  딸아이는 할머니의 차별을 듬뿍 받았다. 내가 딸을 데려 올 수 있었던 것도 살짝 남의 식구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아들도 같이 데려오고 싶었지만 반대가 엄청났다. 할머니의 목숨을 건 반대에 나는 좌절하고 말았다. 아들을 데려 왔다가는 전남편도 같이 따라 올 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들은 아빠가, 딸은 내가 키우는 모양이 되었다. 딸애는 학교를 옮겼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 다. 주말이면 아들이 오기도 하고 딸이 아빠에게 가기도 하는 생활이었다. 애들을 태우고 이쪽저쪽 이동하는 일은 전남편이 했고, 아이들의 운동회나 선생님 상담은 내가 갔다.


아이들은 언제나 할머니와 아빠가 하는 엄마 흉을 들어야 했고 딸은 엄마 편을 들다가 혼이 났다. 아들은 엄마가 안 보고 싶다고 해야 할머니와 아빠 칭찬을 들으니 엄마를 싫어하는 척을 해야 했다. 이 대목만 나오면 나는 전남편을 격하게 씹는다. 세상에 엄마를 싫어하고 안 보고 싶어 하는 아이는 없다.  엄마가 안 보고 싶다는  말을 하면 그 아이는 차근차근 상담을 받아야 한다. 근데 전남편은 천지도 모르고 지가 듣고 싶은 말을 한다고 아이를  기특하다 했으니 정상인 어른이냔 말이다.


 아이들이 주말을 나와 보내고 할머니 집으로 갈 때는 항상 뭐라도 하나 사서 손에 들려 보냈다. 게장이나 도넛이나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뭐라도. 한 번은 내가 조기를 사서 들려 보냈더니 전남편이 그걸 바로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고 한다. 그런 소갈딱지니 내가 이혼을 했지 싶었다.


전남편은 딸을 이뻐하긴 했지만 아들과는 좀 다른 '이쁨'이었다. 아들은 자기의 분신이라면 딸은 자기의 기쁨 거리였다. 나는 딸이 화장을 하기 시작할 때, 교복을 줄여 입을 때 혼을 냈지만 전남편은 의외로 관대해서 놀랐다. 그렇게 보수적인데 왜 딸에게는 너그럽지? 했다. 그건 약간의 거리감이 만들 수 있는 너그러움이었다. 조카가 하는 화장은 귀여울 수 있어도 딸이 화장을 하면 화가 나는 마음과 같았다.


전남편은 딸에게 휴대폰을 사 줄 테니 아빠에게 와라, 네가 원하던, 머리에 매직을 해 줄 테니 와라 하면서 애를 꼬셨다. 그때마다 나는 애들 아빠와 전화통을 붙잡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전남편이 전화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걸 꾹 참고 끝날 때까지 들어줬다. 물론 전화기를 떼고 안 듣다가, 가끔 응, 응, 하면서 듣는 척을 해 준 것이다. 그랬더니 화가 좀 풀어졌는지 "이제 좀 순해졌네. 예전 같으면 땡벌같이 달려들 텐데."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이혼하고 5년 만에 들은 전남편으로 부터의 칭찬이었다.


애들을 키우는 데 있어서 합의가 잘 이루어지는 사람이라면 이혼을 할 일도 없었겠지만, 전남편은 해도 너무했다. 아이들에게 엄마흉을 끊임없이 보면서 엄마와 사이좋은 걸 시샘했다. 지금도 딸이 나랑 찍은 사진을 프사로 하면 난리가 난다.


딸이 6학년 쯤이었을 것이다. 아빠에게 있다가 와서 얘기했다.

"엄마, 아빠가 우리 돌 때 받은 금반지들 어디 숨겨놨는지 찾았어. 그거 훔쳐올까?"


맘 같아 가져오라 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되어서 도둑질을 시킬 순 없지 않은가?


"아빠가 그건 너네 위해서 쓰겠지. 놔둬."

했다. 솔직히 말만 들어도 고마웠다. 엄마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얼마 전 아들에게 문자를 했다.

"아들아 날 춥지?"


"피는 못 속입니다. 어머니. 바람피우고 있어요."


"이누무 시키, 유전자 핑계 대지 말고, 여친이 싫으면 그냥 헤어지고 딴 애를 만나. 왜 바람을 피워."


"엄마 사랑을 못 받아서 그래."


"내 이 놈을 그냥...."


이혼자체 받은 상처보다는 이혼 후에 오는 많은 미성숙한 대처로 오는 상처가 훨씬 큰 것 같다. 부부가 밉더라도 미운 마음은 잠시 보류하고 좀 냉정하게 양육은 할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들은 지 아빠 비슷하게 자란 것 같다. 지 아빠보다는 조금 진화된 남자인것 같아 다행이다.  지 밥벌이는 하고, 제법 어려운 책도 읽으며 깔롱을 부리는 게 기특하다. 최소한, 아빠처럼 했다가는 이혼당한다는 걸 생생하게 배웠으니 섣불리 허튼 짓은 못할 거라 믿는다.



 I LOVE YOU AND LOVE ME TOO.



https://brunch.co.kr/@red7h2k/1

https://brunch.co.kr/@red7h2k/8


작가의 이전글 애들 때문에 참는단 말이 아팠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