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녕 Nov 21. 2019

내가 젊은 너를 흥분시킨다고?

이거슨 100퍼 실화.

동양 여자가 서양에서 살면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 나이를 굉장히 어리게 본다는 것과 웬만하면 날씬이 그룹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30대 초반에 아이 둘을 떼어 놓고 간 캐나다. 결혼 생활 7년 동안 혼자 지하철을 타 본 적도 없고, 은행 업무를 처리해 본 적도 없는 바보였다. 그런 아줌마가 어학원을 다니며 영어 공부를 했다.


어학원에서 레벨이 낮으면, 한국이나 일본 아이들과 한 반이 된다. 가끔 남미나 유럽 친구가 섞인다. 내 옆에 앉던 스위스에서 온 남학생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나는 책 사이에 끼워 다니던 딸 사진을 보여 줬다. 7살 때 어린이 집에서 찍은, 한복을 입고 다도체험을 하는 사진이었다.


그 스위스 친구는 딸 사진이 아니라, 내 어릴 때 사진이 아니냐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스위스에서 아이가 둘이면 대부분 2XL 사이즈가 된다고 했다. 한동안 믿지 않다가, 다른 한국 유학생을 통해 내 나이를 알게 되었나 보다. 그 이후로 내 옆에 앉지도 않았고, 인사도 잘 안 받아줬다.


홈스테이 할머니와 케네디언 교회를 다녔다. 할머니는 내 사정을 알고 있어서 친구처럼 나를 데리고 다녔다. 내가 아이를 떼어 놓고 왔다는 말을 들은 다른 교회 할머니들이 말했다. 캐나다에서 좋은 남자를 만나라고. 그러자 홈스테이 할머니가 말했다. 세상에 좋은 남자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고. 그 할머니도 고양이와 둘이 산 지가 오래되었고, 70이 다 되도록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좋은 남자는 경쟁이 치열하다는 걸 배웠다.


아침마다 같은 버스를 타고 어학원을 다니다 보니 늘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키가 크고 건강해 보이는 백인 청년이 있었다. 그 친구는 오후에도 같은 버스를 탔다. 어느 날 그 청년이, 버스에서 내릴 때쯤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버스에서 내려서 커피를 한잔 하자는 것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카페에서 각자 커피를 한잔씩 들고 바닷가 벤치에 앉았다. 바다를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아침저녁으로 나를 봐왔었고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나를 볼 때마다 자기는 horny 해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horny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내가 무슨 뜻이냐고 다시 물으니, 사전을 찾아보라고 했다. 나는 가방에 있던 전자사전을 꺼내 두드려 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성적으로 발기된'.

 허-걱.


나는 너무 당황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고, 당황을 넘어서 공포스러웠다. 몇 살이냐고 물으니 23살이라 했다. 당시 서른세 살 아줌마는 들고 있던 커피를 덜덜 떨며 내려놨다.  일어나며 집으로 가야겠다고 했다. 벤치에서 일어서는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넘어질 뻔했다.


놀라는 나를 본 그 친구는 나보다 더 당황해서 나를 부축 해 주려 했다. 나는 손을 뿌리치며 집으로 도망치듯 달렸다. 앞으로 horny 해 지면 , 축구나 줄넘기를 해 보라는 성교육 상담 교사나 할 법한 충고를 얼결에 남겨 주었다. 뒤에서, "ARE YOU OK?" 하며 묻는 데, 대답도 못하고 냅다 뛰었다.


전남편의 외도는 나에게, 여자로서의 매력에 대한 큰 자상을 입혔다. 전업으로 늘어진 티셔츠만 입던 나에게는, 결혼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잃게 했다. 여자로서 삶은 더 이상 없나 보다 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그 사건은 상당히 기분 좋은 자극이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충격이었고, 거의 성추행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지나고 보니 그 청년이 고맙기까지 했다. 아직 나 괜찮구나. 20대 초반의 남자애가 나를 보고 horny 해 졌다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That's flattering. but no thank you." 할 일을 그렇게 겁까지 먹을 거 까지야, 싶다. 간 크게 애들을 떼어 놓고 연수를 갔지만, 적잖게 보수적인 "유교걸" 이었던게다.


한비야 씨가 그녀의 여행기에 쓴, 오지에서 만난 남자와의 러브스토리가 픽션이네 아니네 논란이 있었다. 이건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100퍼 실화다.


나는 나에 대해 많은 걸 발견하고 있었다. 낯선 환경에 적응을 잘하고,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여자로서도 아직 쓸만하다는 걸 발견한 것도 내간을 키우는 한몫을 했다.  위자료는 나를 위로하라고 받은 자금이니 그 본래의 목적대로 쓰이고 있었다.


홈스테이 할머니가 내 이름이 '다녕'이라고 하니, 대니얼(Daniel)과 소리가 비슷하다고 대니(dani)로 영어 이름을 하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대니가 되었고, 대니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내 안에서 발견했다.


이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감 잡았어-아재 감성 ^^;;




https://brunch.co.kr/@red7h2k/14

https://brunch.co.kr/@red7h2k/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