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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Feb 21. 2020

이혼을 결심하니 이혼이 막아졌다

다 죽어가던 결혼 살려내기

행복한 결혼의 조건은 단순하고 누구에게나 비슷하다. 하지만 불행한 결혼의 사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흔히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불행의 가짓수는 사람 수만큼 다양할 것이다. 건강, 경제적 여유, 배려심, 문화적 공감대 같은 조건을 갖추면 누구나 행복하다.  하지만 어떤 것 하나도 안 맞으면 살아내기가 힘이 든다. 현실적인 상황으로 바꾸어 말하면, 나에게 이상적인 남자는 모두에게 이상적일 가능성이 많다.  


한 번의 결혼에서 딱 맞는 사람을 만나려면 억세게 운이 좋아야 한다. 아니면, 종교의 힘에 가까운 초인의 능력으로 이해를 하며 사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한 결혼 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름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남편의 경제적 능력이나 시댁으로부터의 독립은 최우선 조건이다.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조건은  듣든한 친정이다.


'든든한' 친정은 꼭 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친정의 가족 분위기가 단단하게 밀착된 분위기를 의미한다. 친정 부모님과 신뢰와 사랑이 충만하면 시가의 주도적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는다. 시가에서 받는 소외감이 있어도 친정 가족들과 연대하면서 풀 수가 있다. 친정 가족연대가 강하면 남편이나 시부모도 아내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집에서 이뻐하는 강아지는 남도 예쁘게 봐주는 것과 같다.


몇 년 전에 한 대학교 평생 교육원에서 아동 미술 영어 강좌를 한 학기 동안 공부했다. 그 수업에서 만난 한 선생님이 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와서 외항사 승무원을 했던 은지(가명) 선생님이다. 은지 선생님은 결혼과 함께 전업 주부가 되어 지방 소도시에서 살게 되었다. 동네 애기 엄마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새로운 걸 찾던 중에, 아이들에게 영어로 미술 활동 수업을 하는 강의를 듣게 된 것이었다.


세 살 된 아들을 남편과 시어머니께 번갈아 맡기며 매주 서울로 수업을 들으러 다녔으니 열정도 대단했다. 강의를 수료한 후 문화센터에서 강좌를 오픈해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모습이 참 기특하고 이뻤다. 은지 선생님의 남편은 보편적인 한국의 착한 아들이었고 시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시골 어머니셨다. 그 속에서 경력단절 애기 엄마 노릇도 힘들어했고, 한국 동네 엄마들의 어울림에도 적응이 안된다고 했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 연락을 했더니, 친정에서 약간의 별거 기간을 갖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남편의 진심 어린 사과로 다시 집으로 들어온 후, 만나서 사연을 듣게 되었다. 사소한 부부싸움이 별거로 까지 이어진 것은 남편이 부부싸움의 내용을 시어머니에게 얘기를 한 것이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은지 샘에게 연락을 해서 그냥 나무라는 정도가 아니라 욕설에 가까운 모욕을 주었다고 했다. 참지 못한 은지 샘은 시어머니에게 맞받아치게 되었고 결국은 친정으로 가는 사태까지 되었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아들의 성실함을 자랑하며, 지금이라도 처녀와 새장가를 갈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시어머니들은 아들이 밥벌이만 하면 그 외에 것은 다 통과될 거라고 생각하는 구조인 것 같다.  은지 샘은 그 전에도 경제적 자립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던 바였는데, 잠깐의 별거는 더욱 강렬히 노력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 달 후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이 궁금했다. 불과 한 달 만에 연락을 했건만, 은지 샘은 바닷가에 카페를 오픈하여 인테리어 공사 중이라고 했다. 오월 초에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부부 고민을 털어놓던 자그마한 새댁이, 4주 후에 바닷가 창고를 카페로 개조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니 놀라웠다.


인테리어 업자와 계약을 했지만 공사가 지연이 되어 계약을 취소해 버리고 직접 바닥과 벽 처리를 했다고 한다. 공사를 하던 중에도 날씨가 더워지니 커피를 사러 손님들이 온다는 것이다. 6월에 오픈을 예정했으나 인테리어 공사를 하다가 커피를 만들고, 다시 공사를 하니 한 달이 연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물이나 보트를 보관하던 창고가, 바다를 가득 담은 카페로 거듭난 것을 보니 감격스러웠다. 은지 샘의 발은 새카맣게 타서 샌들 자국이 선명했고 바닷가에는 아들이 놀다가 던져둔 장난감들이 흩어져 있었다. 두 모자의 건강함과 씩씩함이 나에게도 힘을 주었다.  


주말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은지 샘의 카페는 명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주말에는 남편과 시어머니가 아들을 돌봐주고 주중에는 카페에 데리고 나와 바닷가에서 놀게 한다는 것이다. 은지 샘 얼핏 보면 순둥 순둥 해서 자기 밥도 못 챙겨 먹을 모습이다. 하지만 부당한 일에 맞닥뜨렸을 때 일을 처리하는 모습은 참 당차다.


건축 업자와의 계약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손님이 있는 가게에 와서 소리를 지르는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고 한다. 젊은 여자가 주인으로 있으니 그런 위협도 쉽게 하는 듯하다. 결국 은지 샘은 내용증명을 보내고 법적인 대응을 하니 잠잠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혼자서 처리해 내는 모습이  멋있고, 내가 다 자랑스러웠다.


은지 샘이 별거를 하는 동안, 부부의 문제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싸움으로 커졌다고 했다. 정말 돌이키기 힘들어질 뻔한 것이다. 다행히 그 사건 이후 남편과 시어머니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며느리의 눈치를 보는 시어머니가 되었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눈치가 아니라 '존중'이다. 어떻게 사람에게 자기 기분대로 말을 할 수가 있는가 말이다. 조금 걸러서 얘기하는 것은 당연한 배려이지 며느리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다. 남편도 어머니 보다는 아내의 편이 되어 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많은 며느리들은 왜 그리 시어머니에게 이쁨을 받고 싶어 할까? 그것은 남편이 부모로부터 독립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남편이 중요하게 여기는 시부모에게 인정받는 것이 곧 남편의 사랑을 잃지 않는 방법이라 여기는 것이라 여긴다. 아들들은 자기가 평생을 함께 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해서 줄을 잘 서야 한다.


며느리의 위치에 대해서 공감을 못하는 남편에게 끊임없이 가르쳐줘야 한다. 남편이 귀한 아들이듯이 딸도 귀한 자식이라는 것을 아내들과 친정 부모들이 가르쳐 줘야 한다. 인성이 나빠서 생각을 못한다기보다는,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다소 '게으런 이기심'인 것이다.


친정 부모님이 딸에게, 인내로 결혼을 유지하는 것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자기 행복과 자기 존중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혼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불행한 결혼을 억지로 유지하는 것이 두려워할 일이라고 가르쳐야 옳다.


은지 샘이 기를 쓰고 이혼을 하려 했더니 오히려 은지 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조금씩 태도를 바꾸었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에게 의견을 얘기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길 바란다. 시어머니도 며느리의 말이 말대꾸가 아니라 의사표현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다. 그런 시대를 살아 보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 의견을 얘기해서 처음에 다소 어색한 관계가 되어도, 그 방법이 길게 봤을 때 나은 길이다. 나쁜 며느리라는 말을 듣는 것에 미리 겁을 먹지 말고, 싹싹한 며느리 허상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은지 샘의 고민을 들어주고 격려를 해 줬다고 은지 샘이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더 힘을 받는다. 엄마나 아내로의 정체성에 만족하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감과 유능감을 찾는 모습이 기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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