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사람만 부모가 되는 건 아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 학년 때 학교 숙제로 한국전쟁에 대해 글을 써야 했다. 북한을 나쁜 편으로 설정하고 남한을 좋은 편이라 말하는 극단적인 방식이 아니라, 사실 중심으로 남북의 상황을 설명해 보려 했다. 그 시대 상황이 혼란스럽고 복잡한 가운데 강대국의 이권과 권력을 가지고 싶어 하는 지도층의 욕심이 결탁하여 결국은 많은 국민의 목숨을 잃는 무력 전쟁까지 갔다고 설명을 하고 싶었다.
아이가 질문을 해 오는 것은, "그럼 남한 사람이 나쁜 거야?"라는 질문이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 설명을 해도 아이는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를 결정해 달라고 보채는 것이다. 결국 실패하고 북한을 나쁘다고 단순하게 설명해 줬다. 아이는 안심을 하며 북한을 미워하는 논조로 글을 써 갔다.
아이에게 이혼을 설명할 때 상대 배우자를 '북한'으로 몰아붙이지 않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이혼을 하는 이유가 단순히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경우는 잘 없을 것이다. 많은 감정과 현실적인 상황들이 얽히고설켜 나온 결과인데 아이에게 설명을 하자면 너무 복잡해진다. 그러니 배우자의 나쁜 점만 꼬집어 아이에게 흉을 보면 아이는 듣기 싫어진다. 지나가는 정치인 흉도 길게 반복해서 보면 듣기가 괴로운데 하물며 내가 사랑하는 엄마나 아빠를 흉보는 말은 얼마나 괴롭겠냐는 말이다.
전남편이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반복 한, "네 엄마는 너희를 버리고 자기 인생만 중요하다고 나간 거야."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세상의 엄마들은 자식을 무조건 사랑한다는데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아서 같이 안 사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이었다.
아들이 어렸을 때 자주 한 말이 "엄마, 사랑해라고 해 줘야지. 웃으면서, 안아주면서."라는 말이었다. 집요하게 엄마가 사랑한다는 증거를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전남편의 온갖 억지를 다 받아줘야 하는데 그걸 참아주지 않은 나를 미워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그런데 그 미움을 같이 공유하자고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아빠는 어른이 아닌 것이다. 내 감정의 앙금을 풀기 위해, 자식의 보드라운 마음에 독한 컵라면 찌꺼기에 담뱃재까지 섞어 붓는 행동이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유기 불안을 느끼는 모습이 나오니 나도 전남편에게 화가 많이 났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아빠 흉을 같이 볼 수가 없었다. 나만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억울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엄마 아빠가 따로 살지만 너희를 사랑하는 마음은 둘 다 똑같다는 추상적인 얘기로 아이들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배우자가 미워도 그 분노를 같이 나누자고 아이들까지 끌어들이지는 말아야 한다. 말로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엄마의 태도에서, 아빠와 통화를 하는 목소리에서 이미 다 느끼고 있으니 굳이 디테일까지 설명하는 것은 조금 미뤄도 된다.
외가 쪽 친척으로 엄마의 남동생이 한분 있었다. 엄마는, 아버지 쪽은 성격이 강했지만 자신의 형제들은 성격이 유순하다고 하며, 늘 자랑스럽게 여기던 남동생이었다. 남동생 댁이 이혼을 할 거라는 전화를 받은 후, 엄마는 마음고생으로 앓아누우셨다. 외숙모의 성격이 들은 바로는 보통이 아니어서 유순한 외갓집 식구들이 모두 눈치를 본다고 했다. 외할머니와 외삼촌 흉을 한 보따리 풀어놓으며 엄마에게 더 이상은 이 집안에서 못살겠다고 했다. 외숙모의 말을 고스란히 듣기만 하고 달래주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속병이 났다.
이혼이 얘기가 오가던 중, 외삼촌이 사고로 돌아가셨다. 엄마는 외숙모에 대한 분노가 가슴에 맺혀 어디다 말로 표현도 못하고 혼자서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걸레질을 하면서도 나물을 씻으면서도 남동생의 마음고생을 안타까워하며 외숙모 흉을 보는 것이었다.
한참 후, 엄마 쪽 친척 결혼식에 갈 일이 있어 엄마를 모시고 갔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외숙모를 만났다. 외삼촌의 사고사 후 외숙모는 집안 행사에 잘 안 보이다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같이 앉아 식사를 하는데, 외숙모는 외삼촌이 자기를 얼마나 공주 대접을 해줬는지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외삼촌은 이미 다른 영웅이 되어 있었다. 외숙모의 얘기를 듣던 엄마와 이모들은 어리둥절하게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외숙모는 자신의 생존 전략을 바꾼 것이다. 이혼을 할 거라고 남편과 시가 흉을 보다가, 남편이 사망을 한 것이다. 시가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살면서 자식들에게 아빠에 대한 새로운 위인전을 쓴 것이다. 초등과 중학생이던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엄마의 입장에서, 아빠에 대해 나쁜 기억을 지우고 좋은 기억만을 주입시킨 것이었다. 외숙모의 얘기만 들은 아이들은 자신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아빠는 엄마를 엄청나게 사랑해준 자상한 '위인'이 된 것이다.
엄마 쪽 형제자매들이 일 년에 한두 번씩 모여 밥을 먹곤 한다. 그 모임에서 외숙모를 만난 적이 있었다. 자녀들도 이미 결혼을 시켰으니 외숙모는 사별 후 자기의 할 일을 잘 마친 셈이다. 그 당시 나는 이혼을 한 상태였으니 외숙모가 보기에는 내가 안쓰러웠을 것이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두 아들을 키워낸 얘기를 극적으로 풀어내셨다. 내가 외숙모의 이혼 직전 스토리를 모른다고 생각하셨는지 외삼촌을 아예 다른 가상의 인물로 그려내는 것이었다.
그 당시 이혼을 한 후, 전남편에 대한 분노를 안고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외숙모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외숙모의 전략이 괜찮아 보였다. 이혼을 한 경우와 사별을 한 경우는 많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어차피 기억은 왜곡된다. 엄마의 입장에서 굳이 아빠의 단점을 아이들에게 들춰내서 학습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저 내 마음에서 남편을 죽은 사람이라 치고 아이에게는 좋은 기억만 주입하는 것이다. 남편 흉은 다른 곳에서 보기 위해 좀 아껴 두면 된다.
이혼을 하면서 아이에게 지나친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남보기에 완전한 형태의 가정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을 하며 아이들에게 미안해한다. 자신의 죄책감을 가볍게 하기 위해 배우자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행동은 자살골과 같다.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 자신의 분노를 섞지 말고 분리를 해야 한다.
좀 부족해도 부모 노릇은 할 수 있다. 생각해 보자. 나는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풍족하게 사랑을 받으며 자랐는지. 그렇지 않았다고 해서 부모를 미워하지 않는다. 자라는 동안 부모를 미워하기도 하고 원망도 하고 부끄러워한 적도 있다. 나이가 들고 나도 부모가 되어보니, 고단하고 힘든 세월을 살아낸 부모님이 대단해 보이고 이해가 되었다.
'나'밖의 '나'를 인정하는 과정을 겪는다.
배우자의 흉을 아이에게 보는 것은, 자기의 일부를 미워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미워해서 한 집에 살 수 없지만 따로 살면서 평화롭게 사랑을 주면 된다. 부족하지만 겁도 없이 덜컥 부모가 되었다. 아이도 나도 초인의 힘이 필요한 때이다. 아이에게 상처가 될 거라 생각해서 지나치게 보호하려 한다면 그 마음은 내가 상처 받을까 두려워하는 게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두려운 내 마음을 아이에게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아이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에게 혹은 배우자에게 생긴 분노를 아이에게 쏟아내는 것일 수 있다. 분노를 다른 곳에 풀고 아이에게는 새로운 '위인전'을 써야 할 시기인 것이다.
한국전쟁을 아이에게 이해시킬 수 없어 나쁜 놈, 좋은 놈으로 가르쳤다. 하지만 부부의 전쟁은 그렇게 가르쳐선 안된다. 잠정적인 휴전이라 가르쳐주고 계속 평화와 사랑을 줄 것이라 안심을 시켜줘야 한다. 그러려면 부모가 먼저 슈퍼맨 같은 초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심장도 떼어 줄 수 있다고 자신을 단련시켜왔다. 심장을 떼어 주는 일은 없을 테니 심장을 떼어 주는 공을 들여 아이들에게 '안심'을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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