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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Apr 10. 2020

이혼소송을  할 만하게 해주는 세 가지

딸이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아이가 하나 있다. 학교생활과 가족들 근황까지 들어와서, 한 번도 못 만났지만 이미 오래 만난 듯한 느낌이 드는 친구이다. 대학을 가면서 언니들과 서울에서 살게 되었다는 말 들었다. 친구의 큰 언니가 결혼을 한다는 말을 들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혼하게 되었다는 말을 최근에 들었다.


딸이 친구에게 고민 얘기를 했더니 그 친구의 말은, ‘너네 엄마 브런치 글을 읽어라’이었다는 말을 듣고 한참 웃었다. 친구네 가족 모임에서 내 브런치 글을 돌려 읽고 친구 엄마의 한 줄 평은, “유리 아빠가 좀 너무했.”라고 했다.  


딸의 친구 큰언니, 은혜(가명)씨와 통화를 했다. 아이가 없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이혼을 결정한 사연이 궁금했다. 은혜 씨는 캠퍼스 커플로 남편을 만나 4년을 사귀고 결혼을 했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4년 동안 아기가 유산이 되었고 그때마다 위로가 아니라 비난과 폭언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아기가 없는 상태에서 이혼을 한다고 하면 누군가는 ‘아이가 없으니 쉽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혼 결정도 쉽지 않다. 아이가 없으면 성급한 결론이 아닌지, 아이가 생기면 달라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판단이 흐려진다. 아이가 어리면 어려서 힘들고 아이가 크면 내 나이가 들어 힘들고, 이래 저래 쉬운 이혼은 없다.


은혜 씨는 이혼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단호했다고 한다. 아기가 유산이 되었을 때, 위로를 해 주지는 못 할 망정 아기도 못 낳느냐고 비난을 하는 사람과는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단다. 가장 먼저 의논을 한 사람은 엄마였고 엄마는 바로 딸 편이 되어주었다고 했다. 상황을 들어보니 아기가 안 생긴 게 천만다행인 경우였다. 아기가 생겼으면 그 인성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사람은 살면서 사람을 진 빠지게 하며 자존감을 갉아먹는 유형이다.

 

변호사 상담을 해서 재산 분할 신청을 하고 현재, 조정 후 재판을 기다리는 상태라고 한다. 혹시나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을까 싶어 글을 써 본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은 억울함이 쌓인다. 자꾸 비난을 받으면 그 말에 자신도 세뇌가 되어 자신이 그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사람으로 수긍을 하기 쉽다. 그렇게 자존감이 낮아지면 이혼을 하기가 힘들어지고 우울감이 늘어난다. 이때 반드시 속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내 행복을 질투 없이 지켜 봐 줄 한, 두 사람이 있어줘야 한다. 엄마나, 자매, 친구 중 찾아야 하는데 먼저는 엄마이다. 엄마가 딸의 행복보다 자신의 체면에 더 신경을 쓰면 진실한 의논 상대가 되어 줄 수 없다.


엄마가 딸의 말을 듣고 냉정하게 판단을 하고 대책을 세워 줘야 하는데, 본인이 먼저 털썩 주저앉으며 울고 불고 하면 더 이상 속 얘기를 꺼낼 수가 없다. 다행히 은혜 씨의 엄마는 딸의 얘기를 듣고 무엇이 더 행복한 선택인지에 대해 빠르게 판단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전해 들은 말에 의하면, 은혜 씨네 엄마 아빠는 한창 염소 값이 올랐을 때, 키우던 염소를 모두 팔아 부부 둘 만 유럽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그 부모님 인생 재미나게 사시네’ 했었다. 그랬더니, 역시나 판단력도 빨랐다.


변호사는 지역 맘 카페에 검색으로 찾았다고 했다. 가까운 위치에 있는 변호사 상담을 받아 보는 것은 아주 좋다.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봐주는 사람이 있어줘야 쓸데없는 인내심을 작동하지 않는다. 상담을 받는 것은 10만 원이고 선임을 결정하면 가격은 재산의 정도와 자녀의 유무 등 사유의 복잡성에 따라 달라진다.


이혼을 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나름 즐거울 수는 있다. 변호사와 상담을 하면서 내가 겪는 억울함이 합당하다는 공감을 얻으면 굉장히 힘이 난다. 또한 나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이없는 사연들을 알게 되면서 내 상황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도 생긴다. 친구나 가족과 마음을 나누는 일도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다. 내가 힘들 때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이혼 과정의 뜻밖의 선물이다.

 

누군가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먼저 누군가의 의논 상대가 되어 줘 보라고 권한다. 내가 겪은 힘든 것을 꽁꽁 숨기면서 속으로 병을 키우지 말고 서로 나누는 것이 ‘연대’이고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싱크대 구석에 곰팡이가 피면 활짝 열어젖히고 바람과 햇살을 쐬어 주면 살균이 된다. 우리 마음도 서로 열어서 눅눅한 곰팡이를 제거하면 그곳에서 산들바람이 오가는 것이다.

 

은혜 씨는 재산 분할 청구에, 결혼을 할 때 들어간 돈과 그동안 오른 집값에 대해서도 분할 청구를 했다고 한다. 남편과 시어머니에게서 온 반응은, ‘결혼으로 한몫 잡을 계획이냐'는 것이었다. 첫 번째 조정에서, 신청한 금액보다 2천만 원이 모자라는 금액으로 합의를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은혜 씨는 마음이 나약해져서 합의로 끝낼까도 싶었단다. 하지만 그동안 남편의 폭언을 생각하면 순순히 물러나기 싫었다고 한다.


 싸움을 하려면 힘은 든다. 하지만  힘든 것만 볼 것이 아니라 싸움을 하면서 치료의 효과가 있다는 것도 봐 줘야 한다. 내가 받은 억울함을 풀만큼 풀어야 미련도 없이 털어 낼 수 있다. 2천만 원이 , 소송을 길게 하면서 남편에게 들을 막말에 대한 값이라 생각하면 싸움이 조금은 덜 괴로울 수 있다. 2천만 원을 모으려고 하면 1년간 죽은 듯이 일만 하고 저축을 해도 될까 말까 한 돈이다. 그러니 싸움에 상처 받지 말고 연봉 인상이라 생각하고 즐겁게 싸워야 한다.


은혜 씨와 통화를 하고 격려와 덕담으로 마무리를 했다. 은혜 씨는 조심스레 물어 왔다. 다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요?라고. 어디에서 만나느냐고 물어왔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려면 교회에 가면 된다. 교회에는 나이 든 괜찮은 여자는 넘친다. 하지만 참한 교회 오빠는 아주 귀해서 경쟁이 치열하다. 여자가 남자를 만나려면 대학원이나 남자들이 하는 운동 동호회인 것 같다.


남편이 근처 직장인 농구 모임에 가고 싶다고 하여 검색을 해서 데려다준 적이 있다. 거기에 키 크고 에너지 넘치는 젊은이들이 밤늦게까지 농구를 하고 있어서 놀랐다. 남자를 만나려면 운동 모임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만히 있는데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전번을 묻는 일은 연예인 급 외모인 사람에게만 있다. 보통의 사람은 열심히 찾아다니며  좀 과한 리액션해주면서 만나 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정신은 ‘아님 말고’이다. 내 맘에 든다고 해서 상대도 나를 맘에 들어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 ‘아님 말고’ 정신으로 열심히 만나봐야 한다. 직장이나 운동, 취미 모임 어디서든 내 행복을 위한 일에는 뻔뻔해져야 한다. 이혼을 했다고 주눅이 들면 안 된다. So what? 하는 기세가 있어줘야 상대도 별거 아니구나 싶어 진다. 내가 이미 주눅 들어 있으면 남도 주눅들어야 마땅한 취급을 한다. 소소한 것에 확실한 행복도 있지만 so what? 정신에 행복이 몇 배나 있다. So what? 행 (소왓행)이다.


결론으로, 힘든 이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래도 할 만하게 만드는 세 가지 요소는

1, 의논 상대 –변호사와 질투 없는 친구

2. 싸움에 지치지 않고 희망을 보는 눈- 이혼 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어 놓자

3.  so what? 정신으로 so what? 행 찾기


이렇게 세 가지로 뽑았다. 부디 즐겁게 이혼을 해서 소왓행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https://brunch.co.kr/@red7h2k/19

https://brunch.co.kr/@red7h2k/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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