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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Nov 07. 2019

글쓰기가 내 위자료에 끼친영향

유시민 작가에게 항소문이, 내겐  이혼소송서가 있었다.

동네 마트에서 외상을 기록해 놓고 월 말이나 보름 쯤에 외상값을 청구하듯이, 외상장부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외상 장부 용도가 아니었다. 나의 대나무 숲이었다. 사건은 없고, 푸념 위주였다. 전남편이 내 일기장을 발견해서 난리가 났다. 보는 앞에서 갈기 갈기 찢어 쓰레기 통에 넣는 분서갱유를 당했다.


일기가 점점 일지가 되어 간 것은, 남편 말대로 내가 유별난 건지, 진짜 억울 할만 한 건지 분별이 안 되어서였다. 아내의 도리, 엄마의 숭고함을 들먹이며 나를 비난할 땐 다 맞는 말 같은데 혼자생각하면 계속 분했다. 그래서 세세하게 기록을 한 것이다. 언젠가 누구에게 재판을 좀 받고 싶은 맘, 영원히 아무도 안 보길 바라는 맘이 반반이었다.


내 인내심의 한도가 차는 날, 일시불로 청구 할 계획도 있었지만, 내 맘이 풀어져 외상값 장부를 스스로 소각하길 바라는 맘도 컸다.


이혼 소송을 하기 전 마지막 명절을 생생히 기억한다. 종가집이라 제사가 열 세번, 명절 제사에 밥을 먹는 사람이 50명이 넘었다. 설 명절 준비를 하면서 이게 다 무슨 짓인가 싶었다. 그자리에서 결심했다. 이 집 에서 전 부치는 일은 이게 마지막이라고.


2000년 새 밀레니엄을 축하 할 때 나는 나만의 새 밀레니엄을 준비했다. 집으로 돌아와 일기를 정리했다. 남편의 죄상에 맞는 자료들을 시간 순서대로 서류화 시켰다. 그동안 남편이 바가지라도 하나 던지면 사진을 다 찍어놓았었다. 전남편이 밥을 먹다가 젓가락을 식탁에 확 내려 친적이 있었다. 젓가락 하나가 튕겨 올라와 내 쇄골뼈에 맞았다. 옆으로도 아니고 화살처럼 내려 꽂혀서 흉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날 바로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끊었다.아쉽게도 2주 였다. 아이들 감기 봐주시는 동네 의사선생님이셨으니 진짜 부끄러웠지만 솔직히 말했다. 이혼 소송자료에 쓰일지 모른다고 하니, 몸을 사렸다. 진단서는 끊어 주지만 남편의 폭력때문인지 혼자 넘어진 외상인지에 대한 증언은 못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는 조금 미안했나보다. 훈훈한 위로로 마무리 했고, 그 후  동네에서 몇 번 마주치면 '이제 괜찮죠? 웬만하면 이해하며 사세요', 덕담도 해 주었다.


후로도 진단서가 몇장 더 있었고,그때마다 받아 놓은 남편의 각서도 있었다. 태초의 그날밤 상간녀 남편이 야구방망이로 처참하게 부순 우리집 거실의 사진부터, 순차적인 사건 기록, 기록과 딱 맞는 진단서, 사진들. 누가봐도 다큐였다. 이해하기 좋도록 커버에 요약본을 한페이지로 정리해서 첨부하고 세부사항은 뒤로 보내는 디테일이란.


위자료 청구를 위해서 남편명의로 된 부동산의 등기부, 재산세 납부기록을 모두 준비했다. 위자료 청구액이 높을수록 법원에서 판매하는 우표같이 생긴 인지대금이 높아진다. 재산 분할을 위해서 남편이 맘대로 재산 처분을 못하도록 가압류도 해야했다. (와 이런 법률 용어를 내 혼자 도서관에 다니며 습득했으니, 나를 키운 8할은 전남편. 탱큐.) 인지비용 낼  돈도 알뜰 살뜰 모았다. 모든 무기가 준비 된 것이다. 그래도 떨렸다.


모든 것이

참으로 섬세하고 시의적절했다.


혹시나 시내에서 남편에게 걸릴까 싶어 택시를 타고 지역 법원으로 갔다. 법원 근처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간판을 둘러본 후, 변호사 이름이 촌스런운 곳으로 들어  갔다. 연세가 있으면 이해도 더 잘 해주고 비용에 바가지를 씌우진 않을것 같아서였다.


바짝 쫄은 채 변호사 사무실로 꾸역 꾸역 들어가 서류 뭉태기를 내 놓았다. 생각보다 젊은 변호사 였고, 나를 불쌍히 혹은 한심하게 보는 눈빛이 역력했다. 서류를 몇 페이지 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나를 마주보았다. 눈물 없이 못 볼 대하드라마 "토지"급이니.유시민 작가의 항소이유서 만큼이나 기특하다고 본다. 억압을 피해 자유독립을 위 혼자 비밀리에 했으니까.


"아주머니, 변호사 필요없네. 바로 법원가서 인지 사서 붙이고 제출하이소. 근데 위자료 이마이 못 받습니데이. 혼인 기간도 짧고 재산에 기여 한 것도 없고." 했다.  근속 년수 7년 퇴직금이라 생각하고 청구한 위자료가 7천만원 이었다. 1년에 천만원 가치는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것도 어림없다고 변호사는 비웃었다.


그렇게 변호사 비용없이 내 힘으로 소송서를 만들어 법원에 제출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와 태연히 저녁을 지었다. 한 달은 걸려야 본인에게 연락이 간다고 했다.  한  달동안 머리에 꽃 달고 나가기 직전 상태로 살았다.3년 준비했는데 한달 못기다리랴.


하~~이혼하기 힘들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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