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바람을 핀 그녀, 즉 상간녀 머리채는커녕, 전화 한 번 하는 것도 내가 덜덜 떨며 했으니 자다가도 찬물을 들이켜야 할 정도로 화가 쌓여갔다. 상간녀 주변의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편지를 썼고 결국 고소를 당했다.
그 자극적인 천박함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창의적이고 시사성 있는 비유에 스스로 감탄했다. 그 글을 보고, 나 대신 그여자의 남편, 시댁 식구들, 주변 지인들이 머리채를 잡아주길 바랬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할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고소까지야 하겠어, 싶었다. 글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이전 글을 보시길.
전남편에게로 전화가 와서 나 좀 말리라고 했나 보다. 전남편에게 비밀로 하고 한 일이라 좀 부끄러웠지만 한 편으론 통쾌했다. 내가 준 고통이 아프다는 반응이니 말이다. 그녀의 동네에서 그치지 않고 그여자 남편 고향 동네까지 애절한 편지를 보내니 이제 그 쪽도 빡침이 커졌나보다. 경찰서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으니 나를 조사해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전남편이 다니던 직장이 포항이었고, 포항에서 살다가 고향인 문경으로 왔으니 거리가 꽤나 멀었다. 그들은 포항에서 살고 있어 거기서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나보고 포항까지 오라고 했다. 나는 어린아이가 둘이라 움직이기 힘들다고 최대한 미뤘다. 미루고 미루다 보니 담당경찰이 바뀌기도 몇 번, 잊을만하면 한 번씩 조사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때마다 나는 이런 일을 겪게 만든 전남편이 너무 꼴뵈기 싫어 싸움이 일어났다.
새롭게 바뀐 담당 경찰이 전화를 했다. 소장을 문경으로 보낼 테니 문경에서 조사를 받을 거냐고 물었다. 생각해 보니 차라리 포항으로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동네이니 혹시 경찰서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까 걱정이 되었다. 포항으로 가는 날을 받아 놓고 전남편에게 얘기를 했다. 조사받으러 가는 데 같이 가자 하니 펄펄 뛰며 나에게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그래, 혼자 버스 타고 간다, 가.
포항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가는 것보다 더 싫은 것은 그 당시 한복집에서 바느질을 하고, 직업 훈련원에서 바느질을 가르치고 있었다. 거기에 뭔가 거짓말을 하거나,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게 싫었다. 한복집 선생님께는 사실을 얘기하고 훈련원에는 거짓말로 둘러 대었다.
담당 경찰관은 이건 별 사건도 아니니 두 부부를 경찰서로 부르겠다고 했다. 다시는 편지를 보내는 따위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라고 했다. 그러면 그 부부에게 고소를 취하하라고 자기가 설득하겠다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게 들렸다. 하지만 담당 경찰의 목소리에는 이 '사랑과 전쟁'을 직접 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 역력했다. 이해는 되었다. 나도 그랬을 테니까.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해 경찰서로 가는 데, 대체 뭘 입고 갈지가 고민이 되었다. 일단 경찰서 사람들이 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볼 것이다. 그럼 너무 화려하게 꾸민 티가 나면 안 된다. 싼 티가 날 테니. 너무 조신하게 입어도 안 될 일이다. 저러니 남편이 바람을 피우지,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상간녀와 그 남편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온 그 밤 이후로 처음 그들을 만나는 것이다. 너무 불쌍해 보이기도 싫었다. 대체 뭘 입지?
이 옷 저 옷을 입어보고 최종적으로 결론 낸 옷은 청바지에 심플한 면 티, 단정한 하늘색 쟈켓이었다. 심플한 티셔츠는 V넥으로 좀 깊게 파였다. 내 나름의 덜 조신해 보이기 위한 전략적 노출이었다. 경찰관 앞에서는 상당히 교양 있는 척을 하면서 세상 순진한 겁먹은 새댁 표정을 지어 주며 내 억울한 심정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눈물도 그렁그렁 해 주고. 드디어 그쪽 부부 등장. 그 남편만 경찰서로 오고 상간녀는 오지 않았다. 그것도 속 터지게 약 올랐다. 난 버스 타고 혼자 왔는데 그쪽은 와이프는 집에 두고 남편만 험악한 경찰서로 온 것이다.
상간녀 남편이 가고 담당 경찰이 나에게 물었다. 그 여자 예쁘냐고. 얼마나 대단하길래 나 같이 참한 와이프를 두고 바람을 피우냐고 했다. "아뇨, 안 예뻐요. 제 남편이 복을 까불었죠." 그랬더니 그 경찰관 아저씨, 그나저나 물어볼 게 있다면서 , 내가 쓴 그 '아나바다' 편지는 어디서 베낀 거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지어 낸 거라 했다 그 아저씨 감탄하며" 아이고야, 천채네 천재. 작가 해도 되겠어요." 했다. 그 덕담에 이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나 보다. 새벽부터 버스를 갈아타가며 와서 하루 종일 녹차 한 잔 마시고 있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밥이라도 사 먹으라며 돈까지 2만 원을 넣어 주었다.
기분 좋게 집에 와서 하루 종일 애들 돌보며 쫄아 있는 남편에게, 오버해서 짜증을 내며 피해자 노릇을 했다. 염치는 있는지 끽소리도 못하고 애들한테 뭐 먹였네, 어쨌네 주워섬기는 전남편이 더 한심하고 미웠다. 그 뒤로 법원에가서 재판까지 받는 고초를 겪은 후에야 소송취하가 되었다. 전과자는 면하였다.
남을 한 대 때리려면 내가 두대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설령 내가 옳아도, 억울함이 다 이해가 되어도 남을 힘들게 하는 만큼 나도 힘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화를 어느 정도는 풀어야 다음 삶을 살 수가 있는 거 같다. 복수도 내 체력과 정신력이 있어야 하니 내 안에 힘을 길러야 한다. 내가 힘을 내야 엄마로 한 인간으로 홀로 설 수 있다.
힘을 내기 위해 마음을 먹는다.
그여자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복수를 했다. 이제 남편차례다. 나를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분노를 풀 방법을 지어내야 한다. 다음편엔 바람 핀 남편에게 소소한 복수를 하며 버틴 간증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