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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Nov 01. 2019

이혼 상세 계획안 "넌 다 계획이 있구나"

이혼 전에 고려해야 할 것들

남자는 직장을 잡으면 결혼을 계획하지만 여자는 직장이 싫어지면 결혼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혼을 망설이게 하고 쓸데없이 신중해지는 이유가 어쩌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건 아닐까?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동네 떠들썩하게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었고 시댁 근처로 이사를 와 한복 바느질을 하며 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다. 누구 맘 편히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일기를 썼다. 숨죽여 일기를 쓰고 나조차 그 일기가 아파서 보기 싫었다.숨겨 놓은 일기장을 전남편에게 들켜 일기를 분서갱유당한 적도 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청소기를 밀면서 이혼해야지 하다가, 아이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하나 그냥 이러고 살아야지. 이 짓을 날마다 도돌이.


여성학자였던 오숙희 님의 책을 읽었다. 이혼을 하려면 세 가지 독립을 해야 한다는 구절을 발견.

1. 경제적 독립

2. 정서적 독립

3. 인간관계의 독립


경제적 독립을 위해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미싱을 밟았다. 미싱을 어찌나 밟아 댔는지 운전학원을 갔더니 어디서 운전 배우다 왔냐고 하는 소릴 들을 만큼 매끄럽게 잘 밟았다. 정서적 독립은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는 마음, 남편 없이 친정이나 친구 모임에서 기죽지 않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독립은 남편 위주의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내 인간관계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 세 가지를 3년 6개월 동안 눈물겹게 실천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에도 여자에게 필요한 건 자기만의 방과 돈이라고 했다. 내 영역과 돈은 내 자주성을 허락해 주는 것이다. 전남편이 역사에 대한 지식으로 잘난 척을 하길래 <조선왕조실록>을 사다가 도표를 그려가며 외웠다. 한자성어로 훈계하려 할 때는 <논어>를 정식으로 읽었다. 유명한 구절 몇 개를 외워, 읽은 척하며 돌려막기 잘난 척이 아니라 정독을 했다. 그 뒤로 전 남편의 탄압은 책을 못 읽게 하는 우민화 정책으로 바뀌었다.


김신명숙 작가의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라는 책과 배금자 변호사의 <이의 있습니다>라는 책이 책상 위에 얹혀 있는 걸 보더니 완전 발끈했다. 그리고는 책 뒤의 가격표를 본다. 외도를 들켜 자기 딴에는 계면쩍게 눈치를 보던 차에 저런 책을 읽으니 무섭기도 했을 것 같다. 전남편 왈, "이제 이런 책 좀 그만 읽지." 하는 것이다. 나는 " 내가 나를 위해 쓰는 돈은 우유 받아먹는 거 3만 원 정도, 책값 3만 원 정도가 다인데, 내가 우유를 끊을 테니 책값에 대해서 말하지 마." 했더니, 그게 아니고... 하면서 말을 얼버무렸다.


이 정도가 이혼사유가 될까를 고민한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좀 쉽다.


내가 겪는 일을 내 딸이 겪고 있다면 나는 참으라고 할 것인가? 내 아들이 내 남편을 학습하고 있다면 나는 미래 내 아들의 짝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러면 금방 답이 나왔다.


또한 가지 방법은, 내가 안정된 직장을 가진, 가령 교사나 변호사라 해보자. 그래도 이 남자랑 살까? 내가 현재 통장에 20억 정도가 있어도 이 사람하고 계속 살까? 이런 생각을 해보니 내가 참고 있는 원인이 뭔지가 나왔다. 아이 때문에, 정 때문에,부모님 때문에, 등등의 이유가 사실은 내 두려움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니 지나친 인내심이 부끄러워졌다.


내 선택이니 만족해야하는데, 자꾸 불행하고 내가 못나 보이고, 어딘가에서 나의 근황을 포장하고 연기하는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이혼을 해야 하는 게 답이다. 나의 우울은 아이에게 짜증이나, 이유 없는 폭발로 드러나는 걸 발견했다. 끊임없이 나의 인내심이 부족한 건 아닐까? 아이들에게 못할 짓을 하는 나쁜 엄마가 아닐까를 반성하다가,내 딸이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을 하고 엄마한테 말도 못 하고 일기만 쓰고 있다면, 나중에 그걸 알게 되었다면, 나는 엄마인 내가 너무 미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가 스무 살이 넘어 아빠에게 물어봤다고 한다."아빠는 내가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하면 좋아?" 했더니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펄쩍 뛰며, "그건 안되지." 했단다. 다행한 일이다.


이혼은 때 되면 할 수 있다. 준비해서 차근 차근하자.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렇게 해보자. 내가 현재 이혼을 했다고 하면 나는 오늘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아마 직장을 구하러 다니고 아이를 돌볼 사람을 구하고, 알뜰히 돈을 모으고, 운동도 하고 외모도 가꿀 것이다. 그 걸 지금부터 하면 된다. 남편은 없다고 생각하고 그의 카드는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어떻게 든지 그의 자산으로 내 독립 준비를 해서 이혼 소송을 하든 합의 이혼 얘기를 꺼내야 한다.


재산 분할이니, 위자료니 그것도 내 돈과 체력이 있어야 하고, 양육비를 받으려면 강제성이 없어 그것도 쉽지 않다. 세상의 변호사, 판사, 조정위원 거의다 남자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들에게 내 편을 들어 달라기엔 너무 불리하다. 나 스스로 나를 변호하고 세울 힘을 키워야 한다.


이혼을 부모님께 말하는 건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이혼하는 고통이 큰가? 남들의 시선이 두려운가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엄마는 동네에서 남 흉도 없고 베풀며 사는 세상 착한 여인이었지만 이혼소송을 냈다는 딸을 품어 주기보다는 동네 창피해서 어떡하냐는 본인 걱정을 먼저 했다. 남의 시선에 대한 염려를 걷어내면 내가 겪는 일들이 그리 큰 고통은 아닐지 모른다.


이혼을 한 후 내 인간관계는 옥석이 가려지는 느낌이었다. 그냥 아는 관계, 진심이 없는 관계는 서리에 무너지는 풀처럼 싹 걷혔다. 가족, 친척들도 옥석이 가려져서 계속 관계를 유지할지 조금 거리를 둘지가 알아서 정리가 되었다.


결혼은 돈을 들여 여러 사람이 보는 데서 하지만 이혼은 딱 둘이 법원 사무실에서, 다른 이혼 신고서를 들고 있는 대기자들과  하는 것이더라. 마치 교무실에 반성문을 들고 가 검사를 받는 학생처럼. 이제 혼자 밥벌이를 하고, 진심으로 염려해 주는 이와 연대하고, 아이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 이혼은 진짜 어른이 하는 결정인 것이다.


'엄마'들은  날개가 있는데, '여자'들은 날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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