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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Mar 03. 2020

바느질 용어로 마음 읽기

옷도 짓고, 밥도 짓고, 죄도 짓고 약도 짓는다.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 학교를 가지 않았다. 요즘 말로 하면 재량 휴일이고, 그때 말로는 가정실습의 날이었다. 초여름 평일 낮에, 나는 마루에서 졸다가 깨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엄마는 마당 있는 장독대에서 된장, 간장을 옮겨 담느라 분주해 보였다. 절에서 한 스님이 시주를 받으러 왔다.  병든 닭처럼 졸고 있는 나를 보더니 아픈 아이인 줄 알고 안쓰러워하며 마루에 걸터앉았다.  


스님은 나에게 몇 마디를 물었고 내 대답을 듣더니 장독대에 있는 엄마에게, 아이가 똑똑하다며 사주를 봐준다고 했다. 스님은 손가락 마디를 엄지로 번갈아 짚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나에게 알록달록한 뭔가를 만지며 산다고 했다. 얇고 알록달록한데 분명히 돈은 아니라고 했다. 돈 만지는 일은 나에게 영 맞지 않는다고 했다.


스님의 말은 꼭 맞았다. 백만 원을 손으로 세면, 한 번은 98만 원이 되고 한 번은 102만 원이 되니 돈을 만지는 일은 확실히 내 길이 아니다. 알록달록한 원단을 보면 가슴이 뛰고, 여행을 가서도 원단 시장을 찾아가 옷감을 사 온다. 그리고 옷을 지어 입으며 여행을 기념한다.


글감, 옷감 그리고 영감

글을 쓰려면 글감을 찾아야 한다. 누구나 비슷한 삶을 살지만 그 속에서  글감을 찾아내는 것은 작가가 되는 첫걸음이다. 글감 찾기는 글쓰기의 시작이고 거의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옷감을 사 오면 눈에 잘 띄는 곳에 한참을 펴 둔다. 원단을 볼 때마다 어떤 옷을 만들지 '영감'을 받으려 애를 쓴다. 영감을 받기 위해 검색을 하기도 하고 고전 영화를 보기도 한다. 가끔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로 엉뚱한 옷을 만들기도 한다. 나 혼자만 재미있어하고 남들은 이해를 못하는 농담 같은 옷을 만들며 즐거워 한다.


글감은 엉뚱한 눈이 있어야 잘 찾아낸다. 옷감도 그렇다. 옷감을 펴놓고 새로운 용도를 찾아보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는 소재를 조합해 보는 것은 신선하다. 청바지 천으로 저고리를 만들기도 하고 삼베와 데님을 섞어 조끼를 만들어 입기도 했다. 글감을 찾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면 그저 보이던 야채가게 아줌마도, 길가에 핀 제비꽃도 다르게 보인다는 걸 경험하게 된다. 사물을 자세히 보는 습관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데 아주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옷감을 보는 눈도 그렇다. 글감과 옷감은 나에게 영감을 준다. 영감을 찾아내는 노력이 즐겁고 글로, 옷으로 만들어 내는 일은 신난다.


데님 저고리와 아사면 치마


강다녕 지음

이오덕 선생님은, 글은 쓰는 것이지 짓는 게 아니라고 했다. '짓는' 것은 없는 것에서 만들어 낼 때 '짓는다'는 표현을 한다는 것이다. 글은 마음에 '있는' 것을 적어 내는 용도로, 성찰과 치료의 작업이라는 게 이오덕 선생님의 이론이다. 반면, 집을 짓거나 옷을 짓는 일은 평면에서 입체의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일이니 '짓'는게 분명하다.


물건을 사는 일도, 없던 것을 내 집으로 가져온다는 측면에서 비슷한데, 왜 '짓' 기쁨에 못 미칠까에 대해 생각을 해 봤다. 옷이나 가구를 만들지 못하니,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물건을 산다. 그러면 내가 직접 만든 가구나, 내 돈으로 산 가구나 기쁨이 같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케아에서 거의 완성된 탁자를 사서 20% 정도만 내 손으로 조립을 해도 그 물건에 대한 만족도와 애착은 훨씬 높다고 한다.


식물이나 동물도 아기 때부터 키우면 남다른 애정을 느낀다. 내 손으로 원단을 잘라 만든 옷이나, 드릴로 조립을 해서 만든 탁자에서는 생명력을 느낀다. 어린 화분을 키워 꽃을 피우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하는 것이다. 어린 줄기에서 새잎이 나는 과정을 보면 신기하고, 햇볕을 받아 연둣빛이 짙어지는 걸 보면 힘이 생긴다. 마음으로 애를 쓰고 시간을 쓰면 나도 더 튼튼해지겠다는 교훈을 식물에게서 배운다. 아무것도 아니던 평면의 천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을 지어 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나'도 뭔가 쓸모 있는 '나'로 지어 낼 수 있겠다는 희망마저 느낀다. 나는 '가능성'을 느끼기 위해 사는 것보다는 '짓'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맘껏 누비며 살기

누에고치에서 나오는 아주 고운 명주 실로 천을 짜면 실크가 된다. 얇은 명주에 솜을 대어 씨실을 따라 똑바로 홈질을 한 겨울 옷을 '누비'옷이라고 한다. 씨실은 세로로 고정된 실이고 날실은 씨실을 넘나들며 직물이 되도록 하는 가로 실이다. 세로로 된 씨실대로 누비는 일은 반복적이고 단순하다. 아무런 기교 없이 똑바로 만 가면 되는데 한참 홈질을 해서 전체를 보면 삑 돌아 가 있다. 그러니 절에서 '침선'이라는 이름을 로 수양을 할 때 '누비'옷을 만든다. 똑바로 바느질을 하는 것이 어렵듯이 똑바로 산다는 것도 어다.


미싱으로 누비면 똑바른데 왜 굳이 손누비를 좋아할까? 제아무리 기계로 완벽하게 누벼도, 어설프게 사람 손으로 누빈 아름다움과 정겨움을 이길 수가 없다. 우리 삶도 기계처럼 똑바르지 않아도 나름의 색깔대로 '누비'며 살아간다. 그 한 땀 한 땀이 문양을 이루고, 이야기를 하며, 감동을 주는 것이다.


꿰고 매다

바느질은 바늘에 실을 꿰어 천 조각을 붙이는 일이다. 실을 꿰고 매어서, 떨어진 걸 묶어 놓는 일이 꿰매는 일이고 바늘로 하니 바느질이다. 망치로 하는 일은 망치질이라 하고 '갑'이 되어 남을 때리는 일은 '갑'질이라고 한다. 생산적인 -질은 도마질, 담금질, 낚시질이 있다. 부정적인 도둑질, 이간질도 있다.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바느질과 도마질은 열심히 하고, 실없는 삽질을 해도 '그럴 수 있지' 하면서 살야겠다.


바느질을 하고 매듭을 잘 지어야 애써 박음질을 한 것이 후루룩 풀리지 않는다. 일의 끝도 매듭을 잘 지어야 하고, 사람의 관계도 매듭을 잘 지어야 오래 유지된다. 사람과 인연을 맺고 매듭을 짓는다는 것은 참 중대한 일이다. 한 번 맺힌 매듭은 풀기도 힘들고 애써 풀어도 자국이 남는다. 이제 새로운 인연을 맺는 것도 신중히 한다. 오래된 관계라도 나에게 해로우면 내 인생에서 쓱 밀어내는 지혜도 생겼다.


 영어에서 'Tie the knot'(매듭을 묶다)이 결혼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바느질 용어가 이렇게 다양하게 쓰인 걸 보면 바느질이 사람들의 생활에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중요한 일을 '내가' 한다는 자부심으로 글을 매듭짓는다.


초등학교 때 만난 스님의 말대로 돈은 못 만지고 산다. 하지만, 알록달록한 원단과 물감을 만지며 나름의 행복을 '짓'는다.




감물 염색을 한 모시와 거즈 원단.



바느질은 나의 삶을 달콤하게 해 주는 디저트 " SEW SWEET"

https://brunch.co.kr/@red7h2k/52

https://brunch.co.kr/@red7h2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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