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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Feb 29. 2020

사이비, 비슷한 듯 하나 절대로 아닌

내가 슈퍼 전파자가 될 수도 있었다.

31번 확진자는 고열에도 엄청난 동선을 휘저으며 온 대한민국을 패닉에 빠뜨린 신천지 신자이다. 31번 확진자를 진료했던 진료실의 간호사들도 격리가 되었다고 한다. 격리된 간호사의 남편이 인터뷰를 한 방송을 들었다. 31번 환자는 진료를 받으면서도 어딘가와 통화를 하며 누군가의 지시를 계속 받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10년간 사이비에 몸담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31번 환자의 입장이 눈에 선하다. 본인도 목숨이 위태로우나 본인의 안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조직에 누가 될까 전전긍긍하며 대처 방식을 기다렸을 것이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동선을 속여 왔고 거짓말이 탄로 나자 개인의 일탈로 죄를 혼자 뒤집어쓰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죄가 많아 죗값을 받는다며 회개나 탈퇴, 혹은 헌금을 강요당할지도 모른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신천지나 다른 사이비에 빠진 사람이 지능이 떨어지거나 사회 부적응자로 보일 것이다. 지금까지 보이는 신천지 연관 확진자들을 봐도 비상식적이어서 보통사람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의 목숨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이비에 빠진 사람을 판단할 때, 그 단체 우두머리와 개인은 달리 봐야 한다. 개인이 하는 행동은 개인의 판단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조정되고 있다. 사이비의 구조는 상위 1%가 전체 99%를 조작하는 시스템이다. 그곳에서 시키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은 위쪽의 관리자에 의해 비난이나 징계를 받는다. 조직을 운영하는 교주와 그 주변 몇몇은 권력과 돈에만 관심이 있는 사악한 무리이다. 하지만 따르는 개개인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세뇌 피해자들이다.


교주를 위시한 일부 지도자들이 시키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다. 개인적 인터뷰나 가족에게 연락을 하는 것도 강력히 규제를 할 것이다. 가령, 모임이 지속적으로 있다면 그것은 위에서 시킨 일이다. 모임이나 포교활동은 위에서 공지가 떠야 할 수 있고 개별적으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있던 사이비에서도 오늘 아침 확진자가 나왔다고 한다. 천안 거주자이고 지역 카페에 그 교회 위치와 문화선교(위장 선교를 자기네들이 일컫는 말)를 하는 모습이 공개가 되었다. 지난 수요일에 예배를 마치고 나와 증세가 있었다고 하는 걸 봐서, 그 와중에도 단체 예배가 있었나 보다. 사이비 교회의 위장 포교가 세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니 다행이긴 하다. 천안 40대 여자 확진자는 아마 조직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이다. 온갖 압박을 다 받으며 회개기도만 하고 있을 무기력한 사이비 신도를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다.


내가 있었던 곳은 신천지보다 규모가 작은 사이비였다. 하지만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성격 테스트나 인문학 강의로 젊은 사람을 미혹한다는 점에서 거의 같다. 누가 누구를 벤치마킹했는지는 몰라도,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다양한 문화 활동으로 사람들을 꼬인다. 처음에는 인간적인 신뢰를 쌓는데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그다음 성경 공부로 넘어가는 데,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잡고 사람을 미혹한다. 한 사람이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서너 명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사이비의 타깃이 되기 좋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위치가 있고 경제적으로도 번듯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도 뭔가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 허점을 파악해서 접근하다. 신천지에서도 '궁핍자'는 전도 기피 대상이었다고 한다. 사이비는 사람들이 의심과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니 포교가 힘들다. 그러니 사이비에 속해 있다는 걸 속이고 접근해 공들여 전도를 한다. 외모나 사회적 지위가 번듯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교한다. 전도된 후에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자기네 교회에 있다고 내세워 다음 선교를 한다.


내가 다니던 J*S는 외모와 경제력을 살펴 전도하라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전도 공적으로 연말에 시상식을 했는데, 전도된 사람에 따라 점수를 매겼다. 어리고 학력이 좋거나, 예쁜 사람을 전도하면 점수가 높았다. 나이 들고 경제력 없는 사람은 점수가 아예 없었다. 뽑혀서 전도된 사람은 평생에 받아 본 적 없는 환대와 관심을 받는다. 수십 명이 떠 받들어 주는 뽕에 취해서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한다. 나중에는 우쭐해하면서 함께 전도를 '하러' 나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이비에 포교되는 과정을 보면 왜 그토록 황당한 교리에도 못 빠져나오는지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전도될 때는 기본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관리한다. 제일 먼저 연결 한 사람이 있다. 주변의 친구나 가족을 본인이 속해 있는 부서의 관리자에게 연결을 시켜준다. 부서에 있는 부서장은, 신입생이 관심 있어하는 악기나 베이킹, 재즈댄스, 캘리그래피 등의 활동으로 연결시켜 지속적인 만남의 구실을 만든다. 이것을 문화 선교라고 부른다.  


전도 대상자의 성향에 따라 문화 선교를 하다가 슬쩍 인성 혹은 인문학 강좌에 연결시켜 준다. 그동안의 친분이 있으니 거절을 하기 힘들다. 관심을 보이면 멘토를 붙여 준다고 말한다. 그때 성경 공부를 시켜주는 강사가 붙는다.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쓰는 재정 후원자도 있다. 성경 공부를 시작하는 순간 온 교회의 재롱둥이 신입생이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신입생에게 온 교회 사람들이 붙어, 예쁘고 멋있다며 칭찬을 해 주고 밥과 선물을 준다. 행여 의심스러운 기색을 내 비치면 말발로 후리는 경력 있는 전도사가 집중 관리를 한다.


연결에서 성경공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진로나 가정사 상담을 해 주며 '친밀감'을 쌓는다. 교회 사람들로부터 전에 없던 '경청'과 '공감'을 경험하는 동안 신입생은 마음이 다 녹아진다. 이때부터는 슬슬 교주 우상화 작업에 들어간다. 어느 정도 교주 우상화에 빠지면 교주가 직접 설교를 하는 예배에 참석을 하게 된다. 교주의 설교가 발음을 알아듣기도 힘들거니와 수준도 떨어져 상당히 실망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의 믿음이 부족한가 싶어 자책을 한다. 그만큼 빠져 있는 것이다.


사람은 판단을 할 때 감정을 먼저 작동한다, 감정이 움직인 후에 논리적 사고를 한다. 우리가 사람을 판단할 때도 좋은 감정을 가졌던 기억이 먼저였으면 바꾸기 쉽지 않다. 좋은 사람이라 믿었던 사람의 인성이 안 좋다는 걸 알아도, 한 참 후에 뒤통수를 호되게 맞아야 생각을 바꾼다. 하물며 그 사람이 좋다고 여기저기 칭찬을 하며 다녔다고 생각해 보자. 내가 사람을 잘 못 봤다고 인정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이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치도 이와 비슷하다. 평생 동안 가족에게도 받아 본 적이 없는 '친밀감'을 사이비 신입생 때 받는다. 신입생 때의 좋은 감정은 나중의 어떤 비이성적인 교리에도 꼼짝을 못 하게 하는 올가미가 된다. 자기를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던 사람들에 대한 의리를 깨지 못하고 종으로 사는 것이다. 신입생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착하고 사랑이 많아서라기 보다는 자신의 실적을 위해 '감정 노동'을 하는 것이다. 신입생이 더 이상 교회에 다니기 싫다고 돌아서면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본성을 드러낸다.


사이비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동선을 숨기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비난을 한다. 나는 그 사람들이 밉기보다는 안쓰러운 맘이 더 크다. 온 국민의 미움과 저주는 교주를 비롯한 핵심 우두머리들에게 가야 마땅하다. 그들의 권력과 물질에 대한 탐욕이 조직이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법이 세상에 드러날까 두려워 신도들에게 거짓말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직도 J*S에 있었다면 나도 31번 확진자처럼 행동했을지 모른다. 천안의 슈퍼 전파자를 보니 뒷목이 서늘해지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 교단으로부터 엄청난 질책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자기의 회복에 신경 쓸 틈도 없이 조직에 불명예를 준 자기를 탓하고 있을 것이다.  그 환자의 입장이 '나' 였을 수도 있었던 것에 아찔하다.


사이비가 근절되기 위해서는, 친구나 가족에게 사이비에서 주는 것보다 강하고 지속적인 '경청'과 '공감'을 주는 밖에는 없다. 현재 내 남편이 나에게 3년간 그렇게 해 주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공감'과 '환대'를 해 주고 싶다. 남편이 나에게 내가 다니던 사이비를 욕한 적도 없고 이상하다고 한 적도 없다. 오직 내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해 준 것이 다 인데도 사이비의 모순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얼토당토않은 사이비 수렁에서 나올 손을 잡아당겨 주면 나올 있다. 내가 그렇게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고 싶어 글을 쓴다. 고소가 들어 각오를 하고. 이미 안티 J*S 카페 활동으로 몇 번의 협박을 받았다. 그 속에 있는 내 동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안타까워 글 쓰는 걸 멈출 수 없다.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사이비가 바이러스와 함께 소독이 되길.  image from pinterest


https://brunch.co.kr/@red7h2k/29

https://brunch.co.kr/@red7h2k/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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