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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Nov 29. 2019

이혼하면 급 친해오는 사람들

교회 다니라고 전도하는 사람들.

내 상황이 변하면 내 주변 사람들도 달라져 있는 걸 깨닫는다. 이혼을 하면서 형식적인 관계는 모두 사라진다. 내가 맘을 터 놓고 싶은 사람, 살짝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 멀리 할 사람, 등 등 내 삶에서 둘 거리가 저절로 정해졌다.


이혼을 하고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주변 인간관계는 홀연히 달라지고 있던 중, 급 친해 오는 두 부류가 있었다. 하나는 보험 들라고 오는 사람들.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암 걸리면 어쩔 거냐며 보험을 들라고 했다. 보험회사 교육을 받아보라고, 참석만 해도 선물과 현금을 준다는 말을 무수히 들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했고,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 와도 얼마를 준다 하니 혹 다. 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또 한 부류는 교회에서 오는 사람들이다. 다정하게 말을 받아주고 가끔은 밥을 사 주고 선물도 준다. 그리고 절대적 신의 권위를 내세워 내 모든 염려를 가져가 준다고 한다. 나약해진 이혼녀에겐 넘어가기 딱 좋은 사탕발림이다. 나에게도 그렇게 다가오는 가족이 있었다. 바로 내 여동생이었다.


여동생은 소위 '이단'이라 불리는 교회의 목사였다. 이단이란 말은 좀 권위 폭력적이라 생각을 했었다. 기존의 것과 좀 다르면 새로운 것은 이단이라 불리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나를 그곳으로 끌어들이기에 문턱을 낮춘 것이기도 했다. 물론, 더 큰 이유는 내가 아이들 둘을 키워야 하는 이혼한 상태라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평소에 연락도 잘 안 하던 동생이 급 친하게 다가왔다.  자매들이 거의 그렇듯이 동생과 나도 자랄 때는 친했다. 하지만 나는 결혼을 했고, 동생은 '이단'(이란 말도 과찬인 사이비) 교회에 시간을 쓰니 만날 일이 잘 없었다. 그랬던 동생이 이혼 후 자주 와서 애들과 놀아 주었다.


동생은 멀리 살았기에, 동생과 같은 교회 소속인 지인을 내 옆으로 보냈다. 얼결에 내 주변은 그 교회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고, 나는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 10년의 사이비 흑역사 기간이 시작된 것이다.


'사고'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내 잘못은 없다. 그것은 운이 안 좋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기'는 내 어리석음과 허영심, 다급함이 개입이 된 문제라 수치심을 남긴다. 누구에게 말하기도 힘든 게 '너는 어쩜 그런 황당한 말을 믿었냐?'라는 비난을 받기 일쑤이다.


나의 절박하고 두려운 상태를 이용한 종교 영업은 절묘하게 먹혔다. 친절하고 명랑하게 다가오는 사람, 선하게 살려고 애쓰는 모습들은 나의 두려움을 잠시 잊게 해 줬다. 하지만 사이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보통의 교리와 같다면 굳이 사이비라는 편견과 싸우며 그곳에 붙잡아 둘 수가 없다.


사이비 교회는 일반 교회보다 더 강력한 규칙을 지키게 한다. 가령, 세속의 문화에 관심을 끊으라며 매체를 멀리하게 한다. 또는, 남녀의 사랑은 저속한 것이고, 오로지 신과의 영적인 사랑만 고결하다고 가르친다. 이 시스템은 그 조직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다.


신도들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 바보 만든다. 조직에 순응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남녀의 연애를 막는 것은 그 조직의 이탈을 막는다. 자유연애를 하면 행복을 찾게 되고, 행복한 사람은 교회에 머무르기  쉽지 않. 종교 비즈니스에는, 연애를 더러운 것으로 치부해야 효율적이다.


기형적인 교회 규칙들을 강요하는 것은, 신도들에게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게 한다. 보통 사람보다 자기는 더 선하고 고결하다고 믿는다. 또한 그 규칙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죄책감을 안겨준다. 이렇게 사이비 종교는 우월감이라는 당근과 죄책감이라는 째찍을 번갈아 쓰며 영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거기 딱 걸렸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상식에 어긋난 얘기를 하는 곳은 없다. 대부분 자기 계발서에 나올 법한 힘이 되는 얘기를 한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감동을 하면 본색을 드러낸다. 어떤 이는 약을 팔고, 어떤 이는 옥장판을 판다. 또 어떤 이는 계약서를 주며 투자를 받것이다.


 사이비 종교에서는 헌금이나 헌금을 낼 사람을 전도해 오라고 부추긴다. 다단계나 사이비나 비슷한 시스템이다.


그 교회(라기보단 사이비 집단)에 들어가 처음에는 많은 위안을 받았다. 헌금 강요나 이치에 맞지 않는 선 문답 같은 교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이비는 성경의 애매함 보다는 자기 계발서를  짜깁기한 구체적인 메세지를 전달한다. 세월이 지나니, 교주 우상화, 헌금 강요, 전도 실적 비교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빠져나오기 좀 힘들어진다.  주변의 인간관계가 교회 위주의 사람이고, 내가 인정했던 것을 부정하고, 속았다는 걸 시인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그 교회(조직)를 나온 후  몇 년 동안 나를 자책했다. 여동생과도 절연하고, 겉도는 인사 외에는 안 한다. 아이들에게 그 교회 교리를 강요했던 날들에 대해 사죄했다. 지금도 한 번씩 그때 얘기가 나오면 나는 매번 사과를 한다. 엄마가 어리석었다고, 내 두려움에 얼토당토 않은 것에 속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한다.


지금 어디선가 빚으로, 이혼으로, 혹은 병이나 사기로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종교는 잠깐 위안이 되기는 하지만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힘을 줄 수는 있겠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하나하나 풀어가야 한다. 누가 갑자기 나타나서 전지전능하게 풀어 줄 수 없다.


뜨개질을 하다 실수로 코를 빠뜨리거나 잘못된 곳에 걸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빨리 풀어서 다시 시작하는 게 최선이다. 시간이 좀 걸린다 뿐이지 못 할 건 없는 것이다.


 속 터진다고 가위로 뭉텅 잘라 낼 수 없고, 갖다 버리고 새로 시작 할 수도 없는 한 번 밖에 없는 삶이다. 차근차근 풀어 한 코씩 뜨다 보면 힘도 생기고 희망도 보일 것이다.


딸아이와 나는 그시절 얘기를 하며, 그래도 장점이 있지 않을까 애써 찾아보는  장점찾기 놀이를 한다.  교회를 다는 동안 헌금 낸 아깝고,친구들에게 교리로 잘난척 한 것 부끄럽다. 그래도 굳이 장점을 찾아야 덜 억울하니까 찾은 것이, 사이비 교회에 다녔으니 지금 엄청 겸손해 졌다는 것.


어디가서 잘난척을 할 수가 없는 것이, 이혼해서 본의 아니게 겸손해 졌는데, 사이비에 빠졌던 사람이라 또, 강제로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딸아이는 힘든 일이 생기면 '그때 그 사이비를 못 나왔다면 내 인생은 어떨까?' 이런 맘을 먹는 단다. 그럼 정신이 번쩍나고, 지금부터 내 삶은 선물이지 싶으면서, 못할 게 없겠다는 힘이 난다고 한다. 다 억지로 찾은 정신승리를 위한 비상알약이다.


다급한 사람에게 접근해서 가짜약을 파는 사람은 사기꾼이다. 아무리 황당한 얘기여도 절박한 사람은 믿고 싶어진다. 그 마음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사악한 사람들인것이다.


불행을 기회로 삼아 옳다구나 들어오는 공포 마케팅에 속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오래된 인간관계라고 옳은 관계는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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