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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Apr 06. 2021

이거 누구 목줄이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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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주 신랑의 친구인 남편은 연주 결혼식에서 나를 봤다며 연락을 해 왔다. 나는 그 때 남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너무 무난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남편의 외모와, 너무 소심해서 눈에 잘 띄고 싶지 않아 하는 남편의 성격 때문이다. 인연이 아닌 남녀가 오로지 '타이밍' 때문에 부부가 될 수도 있다는 황당한 진실을, 마치 만들어낸 이야기처럼 잘 보여주는 게 바로 남편과 나의 결혼 과정이다.



"좀 재미가 없어서 그렇지, 정훈이 오빠가 얼마나 실속있는지 아니? 부모님이 여유가 없진 않으셔서 결혼하면 아파트 하나는 해주실걸? 그리고 그 오빠 진짜 알뜰하고 성실해서 혼자서도 결혼 거뜬히 할 만큼 돈도 모아놨다더라구. 그리고 이건 니가 젤 좋아할 만한 건데, 정훈이 오빠는 결혼하면 와이프 일 안해도 된대. 야 요즘 그런 남자 없다 너? 너 일 관두고 싶다며. 울 오빠 말론, 그 오빠가 여자한테 그렇게 적극적인 적이 없었대. 너 꼭 만나 봐."


계모임에 나와 침까지 튀기며 홍보를 자처하는 연주의 부추김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감 물색의 초창기라, 나는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세 번째 만남 쯤이었다. 남편은 y시의 유명한 포구에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주말에 조심스레 내 손을 잡으며 고백을 해 왔다. 남편이 잡은 그 손은 그날 점심 때는 준웅 오빠의 큼직한 손을 잡았었고, 그 전날 밤엔 나보다 세 살 어린 현수의 볼을 감쌌었다. 떠오르는 손의 영상들에 혼자 민망해진 나는 손을 빼려다가, 혹시라도 만에 하나 내 남편이 될지도 모르는 이 사람과의 처음을 머쓱하게 만들긴 싫어 가만히 두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지금 바로 대답 해야 ? 우리 만난   달도  됐는데?"


라고 말하며 남편의 꿈뻑거리는 기대로부터 일단 도망쳐 버렸다. 신중하고 싶었던 나는 이후 서너 달 동안 계속해서 남편과 준웅 오빠와 현수를 번갈아 만났다. 그러는 중에도 소개팅과 선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한껏 치장을 하고 나가, 연애 초창기에 걸맞은 다소 잘 차려진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가방과 겉옷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침대에 누워 쳐다봤던 작고 하얀 천장이 생각난다. 살면서 그렇게까지 많은 남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또 그때만큼 쓸쓸했던 적도 없었다. 준웅 오빠는 남편보다 말이 잘 통하고 로맨틱한 구석이 있었지만, 간섭이 심한 권위적인 성격이 피곤했다. 현수는 그 때 만난 남자 중 내 이상형에 제일 가까웠지만, 번듯한 남편이 되려면 오 년은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남편은 대단한 장점도 없고 특별한 흠점도 없었다. 나에게 적극적이라는 동력이 있었기에 만남을 계속했고, 특별히 그만 만나야 할 이유가 생기지 않아 만남은 지속되었다.  




혼자 누워 바라보는 하얀 천장이 지겨워질 즈음,  유러피언 같다며 나를 추켜세우던 그의 인스타 피드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임신한 아내와 유럽 여행 중인  같았다. 유럽에서 진짜 유러피언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해맑게 웃고 있는 그는  출산을 장려하는 공익 광고에 나오는 배우 같았다. 그는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예전에 나에게 연기를 했던 걸까. 갑작스럽게 사는 방식을 바꾸는 사람들을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타인의 행동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 내가 약한 존재라 생각해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같다. 사람을 만나는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을 만큼 나는 상처를 받았고, 이상한 방법으로 그런 상처에서 도망치고자 한다는 . 방어를 하며 사람을 만나  적이 없는 나는 방어하는 방법을 몰랐다. 누군가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꽃가루에 눈이 빨개지고 재채기를  대는 알러지 환자처럼, 나는 부자연스럽고 과민했다. 이런 생각이 머릿 속에서 정연해질 무렵, 안타깝게도 나는 이미 남편의 아내가 되어있었다.




똑같은 악몽을 종종 꾼다. 사람이 많은 결혼식장. 연주 결혼식장인지 내 결혼식장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는 공간. 웃으며 떠드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남편을 찾고 있다. '빨리 남편을 찾아야 식당으로 갈 수 있는데.' 라고 생각하며. 깨어나 생각해 보면 그깟 식당이 뭐라고 그랬나 싶지만, 이상하게 꿈 속에선 식당으로 안 가면 큰일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늘 초조하다. 남편을 찾으려 주위를 둘러 보면 남편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누가 남편인지 찾을 수가 없다. 표정까지 똑같아서 섬뜩하다. 혹시 남편인가 해서 그 중 한 남자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보면, 그 남자는 나를 못 보고 지나가 버린다.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남편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많은 남자들 중 단 한 명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은 다들 식당으로 가고 있고, 이러다간 나 혼자 여기 남는 게 아닐까 발을 동동 굴리다가 깨는 꿈.




작년 여름, 순돌이를 병원에 데려갔던 그 날도 나는 낮잠 속에서 남편을 찾고 있었다.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악몽을 깨운 건 고맙게도 시어머니였다.


"정원아 안 바쁘면 내려와서 점심 먹어."

"뭐 맛있는 거 하셨나봐요?"


시어머니가 불러서 밥을 먹으라 할 땐, 아닌 경우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때가 많다. 나는 남편에게 느끼는 거리감과는 별개로 시어머니를 특별히 불편해하진 않는다. 그녀도 그러신건지 그 날은 좀 무리한 부탁을 해 오셨다. 강아지를 병원에 데려가서 중성화 수술을 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어머니, 짝짓기도 못하고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너무 불쌍해요. 좀 더 생각해 보시면 안돼요?"

"느이 시아버지랑 정훈이랑도 얘기 다 끝났어. 요즘은 그거 안하는 개 없대. 그걸 해야 건강하게 오래 산대."


시어머니는 은근히 고집이 센 편이라 나는 금방 설득을 포기했다. 수술했다고 거짓말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내 강아지도 아닌 순돌이를 위해 그렇게까지 부담을 떠안긴 싫었다. 불쌍한 순돌이를 차에 태우고 g해수욕장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백사장에 앉아 시간을 끌 대로 끌다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동물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는 수술이 교양있는 반려인의 당연한 의례인 양 장려하고 또 장려했다. 하지만 그런 전문가의 확신이 내 언짢은 기분을 달래주지 못했다. 순돌이를 기다리며 병원 건물 1층 편의점에서 블랑을 한 캔 사서 벤치에 앉아 홀짝이고 있을 때였다. 벤치가 하나여서인지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넥카라를 한 말티즈를 안고 좀 옆으로 땡겨 달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 봤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살짝 웃었는데, 쌍꺼풀 없는 긴 눈가에 자연스럽게 주름이 만들어졌다. 예뻤다.


승우와 순심이를 그렇게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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