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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Apr 01. 2021

이거 누구 목줄이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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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토요일 아침. 일찍 깼지만 눈을 감은 채 옆에 누운 남편을 등지고 창가를 향해 돌아 눕는다. 눈꺼풀 위로 햇볕이 따스하게 닿는다. 이 방에서 남편과 이런 아침을 맞은 것도 벌써 이 년이 넘었건만, 이상하게 눈을 뜰 때면 이 창으로 드는 온기와 남편의 조용한 숨소리가 너무 낯설다. 시간이 해결 못 하는 낯가림도 있는 건가. 깨지 않고 월요일까지 계속 잤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눈을 꾸욱 감는다. 이 방이 만약 승우 방이었다면 이렇게 일찍 깰 리도 없었을 텐데.



보들한 모달 파자마 속으로 작고 투박한 남편의 손이 들어와 내 가슴을 주무르고 꺼끌한 손가락이 젖꼭지를 잡는다. 남편은 자세를 바꿔 옆으로 누운 나를 뒤에서 감싸 안는다. 남편의 빳빳하고 더운 몸이 내 등과 엉덩이에 닿는다. 남편의 손은 점차 내려와 내 팬티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토요일 아침의 조용한 내 사색을 기어이 깨고 들어오는 남편의 투박하고 거친 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내 삶에 어느 날 불쑥 촌스럽게 등장해 나를 이상한 곳으로 끌고가던 날들처럼 무례하다. 하지만 내 몸은 이 년 넘게 반복 훈련을 거듭해서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이런 반사 작용처럼 이 년을 살아왔구나. 체념적인 마음으로 나는 돌아누워 남편의 신호에 응한다. 빳빳한 남편의 성기가 아랫배에 닿는다. 우리는 오래 간 연습한 듀엣 무용수가 정해진 순서로 춤을 추는 것마냥 평화로운 섹스로 각자의 본능을 달랜다. 뚫고 들어와 너무 가까이 닿아있는 남편의 몸이 무색하게 내 의식은 너무 먼 곳을 떠돌고 있다. 어쨌든 우리는 각자의 무대를 그럭저럭 즐기고, 짧은 탄식이 동반되는 남편의 사정으로 각자 다른 쪽으로 퇴장한다.



그리고 섹스보다 더 평화로운 각자의 토요일을 맞이한다.



남편은 토요일 아침이면 순돌이(순돌이는 우리 부부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시가에서 키우는 강아지다.)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와서 목욕을 하고 청소를 한다. 나는 그런 남편을 등지고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으로 쇼핑을 한다. 벚꽃이 만개하면 승우랑 오사카에 가기로 한 걸 생각하며, 레페토 공홈에서 청바지에 잘 어울릴 것 같은 하늘색 레더 플랫슈즈를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데


곧 꽃 피겠는데? 우리 언제 오사카 갈 거야?


승우의 카톡이다. 나는 혹시 남편이 뒤로 지나갈까봐 의자의 방향을 반대로 바꾸어 남편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앉아 답장을 보낸다.


어? 나도 그 생각 하면서 쇼핑하고 있었는데! 이 플랫 어떼?


장바구니에 넣은 플랫슈즈 사진을 캡쳐해서 승우에게 보내준다.


엇. 미안. 나중에 톡하자. 플랫 이뻐. 너랑 찰떡.


응 나중에 편할 때 연락해.


나는 이해심 많은 쿨한 여자처럼 웃으며 답을 보낸다. 핸드폰을 내려 놓으니 눈 앞에 남편이 보인다. 남편은   자기 회사 이름이 크게 적힌 저지 소재의 티셔츠에 아줌마들이나 입을 법한 냉장고 바지를 입고 있다. 결혼 전에도 딱히 섹시한 타입은 아니었지만, 결혼 후엔 그나마 있었던 남성성조차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정기적으로 나와 섹스를 한다는 것 이외에 남편을 '남성'으로 느낄 일은 거의 없다. 공교롭게도 며칠 전에 딴에는 봄이 되었다며 멋을 부린다고 한 펌이 남편을 더 중성적으로 보이게 한다. 이런 나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청소기를 밀고 다니며  한참 분주한 아줌마 같은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조금 측은한 생각이 들면서 올해 둘째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미영이가 떠오른다.



미영이는 임신을 하는 바람에 졸업도 하기 전에 결혼을 해 버린 대학 동기다. 그녀는 학업에 굉장히 성실해서 대학 3학년 때까지 모쏠이었다. 어느 날 자기보다 학업에 더 성실한 법대생 선배와 사귀기 시작하더니, 선배의 마누라라도 된 양 성실하게 선배의 자취방을 들락거렸다. 졸업 사진을 찍을 무렵 갑작스레 청접장을 들이밀던 그녀는 그때 이미 임신 중이었다. 그녀는 결혼 전에도 그리 여성스러운 스타일은 아니었다. 좀 헐렁한 베이지색 면바지에 약간 바랜 듯한 체크무늬 셔츠. 더울 땐 그 안에 하얀 반팔티를 입고, 추울 땐 그 위에 지오다노나 유니클로 같은 유니섹스 브랜드의 박시한 패딩조끼를 입고 다녔다. 그런 식의 옷차림은 결혼 후에도 지속되었다. 게다가 둘째를 낳고 난 뒤 머리까지 커트로 자른 그녀의 뒷모습은 남학생 같았다. 그런 그녀가 매일 밤 눈가에 아이크림을 바르고, 살 찔까 무서워 일곱 시 이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는 말에 나는 깜짝 놀라서, 그런 거 말고 옷 입는 스타일이나 머리를 좀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며 충고해 주기도 했다. 미영이와 남편은 치장을 하는 것도 왠지 어디서 '멋내기 교본' 같은 촌스러운 책을 보고 따라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는 면에서 비슷했다.


"당신, 오늘 재익이네랑 성우네랑 저녁 먹기로 한거 알지?"


남편의 나긋한 목소리가 내 의식을 뚫고 들어온다. 그제서야 눈 앞에 남편의 동그란 얼굴이 보인다.


"응, 알아. 여섯 시라고 하지 않았어?"


라고 대답하며 짧게 마주친 남편의 눈이 너무 낯설다. 당신을 알아보지 못했던 연주의 피로연. 그날로부터 나는 당신을 얼마나 알게 됐을까. 당신은 무엇으로 나를 알아보고 내게 다가온 걸까.


남편이 내 주위를 맴돌기 시작할 즈음, 나는 좀 제정신이 아니었다.


당연히 평생 함께 할 거라 믿었던, 혈육같이 정이 든 오랜 연인과 헤어진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정원이 넌 다른 한국 여자들과 다르다'며, '꼭 자유분방한 유러피언 같다'며 내게 꽃을 자주 사줬었다. '넌 절대 아줌마가 돼도 속물로 안 변하게 내가 지켜주겠다'며 시키지도 않은 다짐을 그렇게나 해대던 그는 나와 전혀 다르게 생긴, 그것도 내가 잘 아는 여자와 결혼을 해 버렸다. 어느 쪽이든 한 쪽은 거짓일 것이 의심될 만큼 나와 그녀는 한 남자가 사랑한 여자들이라고 하기엔 공통점이 전혀 없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좀 다른 방법으로 남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칭찬해 마지 않던 '자유분방한 유러피언 같은 여자'를 지킬 여력이 없었다. 나는 위험하고 천진한 세계에서 미끄러져 평화로운 위선의 세계에 막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그 때 마침 남편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안전하게 사랑하고 싶었던 나에게, 남편은 썩 괜찮은 남자였다. 물론 그 이전이었다면 우리는 손 한 번 잡을 인연이 안 되는 사람들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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