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칫하는 마음을 떨쳐내려는 듯 다급함이 느껴지는 신발굽 소리가 적막한 마을에 울려 퍼지는 것을 잠결에 들었다. 아마 이때가 진짜 시작이었을 거다. 원인 모를 갑갑증에 시달리는 날들이 시작된 건.
그날, 문틈 사이를 새어 나오는 통화 내용을 내가 숨죽여 듣고 있었다는 걸 엄마는 아직도 모르신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그날의 이야기를 꺼낸 적이 한 번도 없으므로. 택시나 버스를 타야만 외식다운 외식을 할 수 있었던 동네였다. 엄마는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이런 이야기에 늘 등장하는 뻔한 짜장면은 아니었다. 우리는 경양식 돈가스를 먹었다. 식사 내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내게 왜 그러냐고 엄마는 물었지만, 엄마가 오늘 집 나가는 걸 알아서 그렇다고 말할 용기는 차마 없었다. 아니라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과, 우리를 버리는 것이 엄마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고 있어서였을 거다.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던 즈음에는 그 나이 또래의 여느 어린애들처럼 심각함을 금방 잊었던 것 같다. 평소처럼 동생들과 함께 잠에 들고, 다음날 엄마 어디 갔냐는 아빠의 고함 소리에 깨어났으니까. 심장은 요동쳤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며칠 뒤에 엄마가 교문 앞에 찾아와 동생들을 잘 부탁한다고 돈을 많이 벌어서 데리러 온다고 했을 때, 나는 울었다.
'어느 장소에 애들을 둘 테니 데려다 키워라.'는 말을 누구를 통해 어떻게 전했는지 아직도 의아하다. 우리는 불빛도 없는 캄캄한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울고 있었다. 흘러내린 눈물이 두 볼에 금세 얼룩지는 건조하고 추운 계절이었다. 애새끼들 셋은 엄마를 잡기 위해 아빠가 놓은 덫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엄마와 함께 가파른 경사를 위태하게 내달리고 있었고, 아빠는 무어라 외치며 우리 뒤를 쫓고 있었다. 숨 가쁘게 달려 대기하고 있었던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과거 저편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어 정리해보고 있는 지금, 덫을 놓고도 성공하지 못해 허탈했을 아빠를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난다. 일을 벌여놓고 항상 마무리가 되지 않는 아빠다운 결말이다.
아무튼 우리는 엄마가 일하고 계시던 직장의 당직실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날 새벽, 심장 저 깊은 곳에서 답답함과 간지러움이 가늠할 수 없이 빠른 간격으로 번갈아 반복되는 고통을 겪으며 잠에서 깼다. 이질적인 장소에서 느껴지는 두려움, 마치 지옥불처럼 절절 들끓던 방바닥의 열기, 타인보다 더 타인 같았던 낯선 얼굴의 엄마.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나를 짓눌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갑갑증에 잠 못 이루는 날을 겪곤 한다. 내가 찾은 유일한 해결 방법은 주먹을 꾹 쥐고 갑갑함을 쿵. 쿵. 힘껏 내리쳐 깨부수는 것이다. 며칠 뒤 퍼렇게 멍든 명치를 거울을 통해 확인하게 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몇 달간 혼자 지내면서도 결코 마음 편치 않았을 엄마는 갑작스레 처한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생지옥으로 돌아왔다. 미안하면서도 마냥 행복했던 것 같다. 다시 엄마와 살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헤아려보니 그 당시 엄마의 나이가 고작 서른다섯이다. 그 고운 나이의 창창한 인생을 다시금 꺾어 놓았으니, 나는 존재만으로도 이 얼마나 죄 많은 생인가. 평생을 살아내도 결코 갚지 못할 부채감이 나를 짓누른다.
아빠가 놓은 덫에 걸린 건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