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 카우르의 시를 읽습니다.
누군가 한마디 툭 던졌다. 그 말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혀버린다. 누군가 나를 떠났다. 배신에 치를 떨며 나는 일상을 이어 나갈 수조차 없다. 누군가 나를 때렸다. 숨이 막힐 듯 화가 나고, 폭력에 어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누구에게나 늘 있는 일이다. 누구에게는 참아 넘길 수 있는 일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나는 물리적으로 힘든 상황은 그런대로 잘 버티지만, 믿었던, 가까운 사람에게 들은 한마디 말에 무너져 버릴 듯 속이 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에게 ‘언어’란 그런 것이다. 내 귀를 통해 들어온 언어는 쪼개지고 확산되어 내 뇌를 순식간에 잠식해 버린다. 그 순간 나는 그 언어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그 상황을 잘 넘기는 편이다. 감정적인 상태 혹은 폭발적인 화로 빠지지 않는다. 나에게는 비밀 무기가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성경을 읽었다. 성경에는 지루하다 못해 졸음을 부르는 시구들이 있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한다느니, 너를 위해 죽었다느니, 지혜롭게 행동하려면 이러쿵 저러쿵.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우리 민족은 공자님께 많이 들었던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비법이다. 어려서부터 그 성경구절들을 읽고, 외우고, 베끼고 열심히 배운 나는, 어렵고 힘든 순간마다 그 문장들을 붙잡고 버텼다. 부모님이 내 속을 썩일 때도 그랬고, 성적이 떨어져서 속상할 때도 그랬다. 친구들이 나와 놀아주지 않을 때도 그랬고, 가고 싶은 학교를 못 가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결혼을 하고, 사회 생활을 하다 보니, 더 힘들고 이해 안되는 상황들이 닥쳐왔다. 여자로, 성인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더 다양한 고난종합선물세트 같았다. 잘해주는 남편이 가만가만 하는 이야기에도 절망에 빠지고, 아이들이 툭 내뱉는 말에도 상처를 받게 되었다. 희한하게도 나는 그 순간마다 시집을 집어 들었다. 평소에 아무 생각없이 읽던 시인데, 힘든 상황만 되면 그 시구가 떠오른다. 그렇게 책장에서 시집을 꺼낸다. 야외에 있는 순간에는 내 블로그에서 시들을 검색한다. 혹은 인터넷으로 기억나는 시인의 시구를 검색한다. 기억에 떠 오르던 시의 문장들은 그 문장을 눈으로 훑어 나가는 순간, 내 마음으로 들어온다. 단어 속에서 손 하나가 쑥 나오고 대번에 내 손을 덥석 잡는다. 그리고 시들은 말한다. 위로의 말을 건낸다. 지혜의 말들을 공감각적 언어로 풀어낸다. 잡은 손은 놓지 않고,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차분해 질때까지 기다려준다.
인생에서 사건사고가 터지면, 나는 위급한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평소에 쟁여 두었던, 내 집 책장에 있던 시집들은 나의 구급 상비약이 되어준다. 시집을 펼치고 눈으로 읽기만 해도 치유는 시작이 된다. 시는 짧고, 핵심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순식간에 몸과 정신을 순환한다. 기어코 시를 읽은 당사자를 소생시킨다. 시가 가치 있는 이유이다.
울적한 날이 있다. 다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욱하고 올라온다. 이게 다 뭐라고 이런 섭섭한 말을 들으면서 고생을 이어 나가고 있는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에 몸이 움츠러든다. 모든 것이 다 부질없어 보인다. 포기를 선택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다 인스타 지인의 조언으로 ‘달’ 사진을 출력했고, 그 사진을 예쁜 액자에 넣어 두었다. 비록 사진이지만, 며칠 전 밤에 보았던 보름달이 내 눈앞에 있으니 가슴이 벅차고, 기분이 짜릿했다. 그 찰나에 루피 카우르의 시 구절이 떠올랐다.
“일어나
달이 말했다. (중략)
삶은 누구를 위해서도 멈추지 않는다/(중략)
당신은 끝까지 해낼 것이다
계속해라
삶의 나머지 과정을 향해 문을 열어라”
(해와 그녀의 꽃들)
달은 늘 그대로, 보름달처럼 둥근 모습이다. 한번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 달을 지켜보는 나의 눈에 다르게 비쳐 보일 뿐이었다. 달이 변했다고 실망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살아가다보면, 나의 모습은 시시때때로 변하지만, 나의 마음은 존재를 그대로 대변한다. 나는 늘 완전한 나이다. 타인의 눈에 내 겉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신경쓸 필요는 없다. 내 마음이 좋아하는것, 기뻐하는것, 옳다고 여기는 것을 살아낼 수밖에 없다. 내가 아닌 것을 살아내느라 공들일 필요가 없다.
시는 가장 나답게 살아가라고, 조언한다. 내가 좋아하는 시들은 그랬다. 세상에 많은 시와 노래들이 있지만, 결국 내가 부르고, 눈여겨 보는 싯구절들이 내 안에서 생명력을 발휘한다. 절망하고, 죽고 싶고, 지겹고, 화가날 때마다 시가 떠오른다.
간밤에 나의 심장이 나를 깨워 울게 했다.
어떻게 하지.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심장이 말했다.
책을 쓰라.
루피 카우르의 시 (밀크 앤 허니)
그래, 실컷 울었으니 이제 눈물 닦고 써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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